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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한 아내를 찾으러

2017-03-22 기원 하 다:개풍망 Auteur:글/교택, 구술/주유운

양다향(杨茶香)과 손자

올해 57살인 주유운(周幼云)은 강서성 안의(安义)현 용진(龙津)진에 사는 평범한 농민이다. 아내 양다향과 슬하에 아들 둘과 딸을 두고 있다. 결혼 후 몇 십 년간 이들은 잉꼬 부부로 살아왔다. 주씨가 농사 짓고 일품을 파는 등 바깥일을 책임지고 아내가 집에서 손자를 키우고 가사일을 도맡았다. 주씨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아내가 반기며 맞아주고 더럽혀진 옷을 벗겨주며 더우면 더울세라 추우면 추울세라 살뜰히 보살피고 입맛에 맞는 음식에 술잔을 차려 올렸다. 생활이 크게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상황 돌변

그런데 이런 평범하고 행복한 생활이 2013년 여름에 들어 원래 궤도를 일탈하기 시작했다. 주씨는 그날 오후 기억이 생생하다. 하늘에 먹장 구름이 몰려오고 곧 풍우가 쏟아질 것 같아 하던 밭일을 멈추고 부랴부랴 집에 달려왔는데 아내가 언니 양다영(杨茶英)과 안방에서 무언가 신비스럽게 수군거리고 있었다. 주씨가 들어서자 언니 기색이 당황해서 글자 가득 씌어진 종이를 가방에 급히 집어넣고 훌쩍 자리를 떴다.

그 후, 아내의 외출이 잦아지고 처음엔 그래도 언니 집에 간다고 알렸는데 시간이 오래되면서 아예 그 말도 하지 않았다. 점점 수상하게 느껴져 어느 날 오후, 몰래 아내 뒤를 밟았는데 아내가 손자를 안고 현성의 모 주택 단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날 온 오후 주씨는 안절부절 못했다. 저녁 무렵에야 돌아온 아내가 또 언니 집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순간 주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아내가 자신을 배신한다는 의심 속에 홧김에 난생 처음으로 아내 뺨을 후려쳤다. 손자가 기겁해 울음을 터뜨리고, 그날 밤 그는 이리 저리 뒤척거리다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내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신”도(“神”途)에 진입

이튿날 주씨가 일어나니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에 주씨가 급기야 양다영과 동생 양다국(杨茶菊) 네를 찾아가 확인 결과 자매 셋이 동시에 실종되었던 것이다. 그들 자매들이 무슨 “여 그리스도”를 믿는 것 같은데 어디 갔는지 자신도 모른다고 양다영의 남편이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었다. “그 /‘여 그리스도/’가 도대체 누구인지? 아내에게 무슨 말을 했기에 아내가 독한 마음 먹고 집에 있는 현금과 4만원 들어있는 통장까지 갖고 달아났는지? 설마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한 살배기 손자는 어떻게 하고 아직 공부 중인 작은 아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

아내가 떠난 후, 가정의 크고 작은 중임이 주씨 어깨에 떨어졌다. 손자를 돌보느라 일품 팔러도 못 나가 가뜩이나 넉넉지 못한 살림이 더 어려워져 큰 아들과 딸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만 했고 안고 달래주는 할머니가 없다고 손자는 목청껏 울어댔다. 보채는 손자를 겨우 달래 잠을 재우고 나면 전에 다쳤던 허리 통증이 되살아나 꼼짝달싹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작은 아들은 엄마 생각에 공부할 생각 없이 엄마를 찾아 다니느라 자주 결석하고 안전 걱정에 학교에서는 애를 잠시 휴학시키고 집에 있게 했다. 주씨는 화나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멀쩡하던 가정이 이렇게 파탄되고 몇 십 년 간 서로 의지해 살던 아내가 종무소식이라 저도 모르게 시름에 겨워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들과 손자를 위해, 이 가정을 위해, 지난 생활을 되찾기 위해 이때부터 주씨는 60대 노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생을 마다하고 막연한 아내를 찾는 여정을 출발했다.

아내 가출 후 주유운이 침대 밑에서 찾아낸 사교 서적

애타게 찾다

어언간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막연한 아내 찾기 여정에서 주씨는 감격에 젖기도 했다. 의연하게 무조건 지지하는 딸과 사위가 고마웠다. 그들이 손자와 막내 아들을 돌보는 일을 전적으로 맡아줬기에 낡아 빠진 “영구(永久)” 자전거를 끌고 안의현 집집을 누비며 아내를 찾아 다닐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도둑놈 취급을 당하기가 일쑤고 냉소와 욕설, 지어 몇 차례 맞을 뻔도 했다. 돈 아끼느라 번마다 큰 콜라 병에 물을 넣고 찐 빵 몇 개, 그리고 아내를 그리는 마음을 안고 출발했다. 물병이 비면 길옆 도랑 물을 담아서 마시고 먹을 게 없으면 배를 굶고 정 견디기 어려우면 인근 집에 들어가 빌어 먹었다.

주씨는 영원히 그를 도와 준 착한 분들을 잊지 못한다. 어느 무더운 점심, 안의현 장균(长均)향 하라(下罗)촌에 왔을 때 허기와 갈증 그리고 더위에 자전거를 탈 맥이 없어 나무 밑에 풀썩 주저앉아 숨을 돌렸다. 그 시각 물 한 그릇이 얼마나 그리운지 몰랐다. 이때 지나가던 수박장사꾼이 남루한 옷차림에 초점 잃은 그를 보더니 더위 맞은 줄 알고 수박을 하나 짜개 넘겨줬다. “전능신” 사교에 심취된 아내를 찾아 떠난 자초지종을 들은 수박장사꾼은 굳이 50원을 넣어주며 꼭 아내를 찾으라고 격려했다. 자신의 아내도 전에 “전능신”의 피해를 입었는데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탈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푸근한 위로를 받은 주씨는 자신이 글을 몰라 집에 돌아가 딸에게 수박장사꾼의 주소와 이름을 꼭 적어놓으라 당부하고 아내를 찾는 그날에 온 가족을 데리고 찾아가 감사 드리겠다고 했다.

2015년 단오절, 이웃에서 제공한 단서를 확보하고 자전거로 50키로 거리인 의춘(宜春)시 정안(靖安)현 조두(璪都)진에 도착해 품에 넣은 아내의 사진을 꺼내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찾았다. 날이 어두워져도 발길이 내키지 않아 계속 찾으려 했지만 헛바퀴 도는 극도의 허탈감과 피로로 몸을 지탱할 수 없어 자전거와 함께 도로 옆 도랑으로 굴러 떨어졌는데 다행이 지나가던 마을사람에게 구조되었다.

사위가 집으로 모셔온 후 주씨는 젊은 시절에 현장 일을 하다 다친 요추가 너무 아파 침대에 누워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막내 아들이 집에 돌아왔다는 이모 양다영을 찾아가 면전에 무릎 꿇고 집에 한번 다녀오라는 기별을 엄마에게 전해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그들 부자가 고대 기다려 받은 소식이 “나를 다시는 찾지 말라, 난 다행스럽게 새로운 인생을 찾고 다시 시작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결국 멸망된다”는 말이었다. 이 소식에 주씨는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절망 끝에 그는 “신”의 방식으로만 “신”의 추종자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날 저녁 식사 후 딸이 음식을 먹여주다 놓고 간 사발을 벽에 내동댕이쳤다. 소리를 듣고 들어온 딸이 깨진 사발 파편으로 손목을 베려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달려들어 칼날 같은 사발 파편을 앗아내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고생스레 오래 동안 지탱해 온 낙관과 강인이 순간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부녀가 와락 붙안고 울었다.

자신의 아내를 속여 데려간 “전능신”을 규탄하는 주유운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

딸의 정성들인 보살핌으로 주씨의 건강이 어느 정도 호전되었지만 먼 거리를 헤치고 다닐 수 없게 됐다. 자식들이 그의 건강을 걱정해 포기하라고 권유하지만 그는 아내가 이 가정을 사랑하고 이 가정에 여주인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었다. 그는 한 가닥 희망에라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그 “영구”를 타고 다시 아내 찾는 길에 나섰다. 행여 그가 찾는 것이란 한낱 영원히 닿지 못할 꿈일지도 모른다.

후기:

주씨는 불행하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오던 아내가 “신”을 믿은 후 가정을 버리고 떠났다. 하지만 그는 다행스럽기도 하다, “신”을 믿지 않는 아들 딸이 시종 효성을 다해 그의 옆을 지켜주고 그로 하여금 절망 속에서 다시 생활에 대한 신심을 갖게 한다.

믿는 게 “신”인지 귀신인지 구태여 해명할 필요가 없다.

(책임편집: 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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