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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 때문에 남편의 죽음을 지켜보기만 했던 나(사진)

2016-08-10 기원 하 다:凯风网 Auteur:청스(구술) 루핑(정리)

나는 중수윈이라고 한다. 산동성 가오미시(山東省高密市)에 살고 있는 한 퇴직직원이다.

1998년 이전에 나는 평온한 삶을 살았다. 나와 남편은 모두 정규 직업이 있었다. 나는 한 국유기업에서 퇴직하고 남편은 공직간부로 퇴직했다. 월급이 높지 않지만 먹고 사는 걱정이 없었다. 딸 두명은 다 시집을 가서 신경 쓰일 일이 별로 없었다. 다만 아주 오래 전에 직장 다녔던 시절에 잦은 출장과 아이를 키우는 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위병, 허리병에 걸려서 장기간 내내 약을 먹고 몸이 많이 허약했다. 하도 아파서 잠을 못 이루는 밤도 있었다.

어느 날, 한 친척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아픈 나를 보면서 '파룬궁'을 배우라고 했다. 파룬궁을 배우면 주사를 안 맞고 약을 안 먹어도 병이 나아진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도 세상에 이런 '공'이 있다는 것을 안 믿었다. 그 후에 이 친척이 자주 우리 집에 찾아와서 '파룬궁'과 관련된 책과 테이프를 빌려주고 '파룬궁'이 얼마나 신기한지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그러다가1998년8월부터 한번 시도하는 마음으로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신기하 게도 몸이 좋아지는 느낌이 있었다. 나중에 이것이 다 규칙적인 운동과 심리적 작용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1999년 국가에서 법으로 '파룬궁'을 금지시킴에 따라 더 이상 '파룬궁'을 수련하지 못했지만 속으로 아직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후 나는 큰 병을 한 번 앓았다. 같이 '파룬궁'을 배우는 '동학'이 나에게 병에 걸린 것은 '파룬궁'에 벗어나고 '업력'이 늘어나서  '스승'이 주는 작은 징벌이고 오직 '파룬궁'을 다시 배워 계속 '샤오예(업력이 없어진다)'를 해야 고통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갈 수록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나는 가정에 대해 점점 관심이 없어졌다. 딸이 아이를 낳았는데도 나는 매일 침대에서 '안좌', '공'만 수련하고, 나가서 '동학'과 소감을 교류하고 이른 아침이나 밤에는 나가서 몰래 '파룬궁' 홍보만 할 뿐이었다. 회사 고위층, 가족들이 나보고 '파룬궁'을 그만하라고 몇 번 권유를 하고 남편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도 나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동안 나를 후회하게 만든 일이 2가지이었다. 2010년 7월의 하루였다. 나는 평소처럼 집에서 '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갑자기 남편이 어지럽다고 했다. 원래 남편이 고혈압과 심장병이 있기 때문에 나는 신경 안 썼다. 내가 '공'을 다 수련하고 나서 보니 남편은 이미 정신을 잃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만약에 그때 약을 주거나 엠블런스를 불러서 병원에 데려간다든지 조치를 취했으면 남편이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는 나 자신이 진짜 미친 사람같았다. 남편보고 같이 '파룬궁'을 수련하라고 해도 남편이 늘 거절하고 싸움만 일으키는 모습이 떠올라서 나는 남편이 징벌과 '샤오예'가 필요하다고 남편을 조용히 보내는 것이야말로 바로 '스승'이 말하는 '원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점점 싸늘해져가는 시체를 지켜보고만 있었. 나중에 딸이 집에 와서 급히 남편을 병원에 이송했지만 남편은 결국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그 때만 생각하면 내가 바로남편을 죽인 진범 많이 괴로웠다.

2012년 큰 딸은 자궁에 양성종양이 생겼다고 했다. 의사가 당장 수술을 안 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몸이 혹이 난 것은 몸에서 '업력'이 있다고 하고 내가 '스승'의 도움을 받아 딸대신 몸에 있는 '업력'이 다 없애겠다고 말했다. 큰 딸은 착하고 내 말을 잘 들으니까 수술을 계속 안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딸은 나에게 혹이 너무 커서 손으로 만질 수 있다고 했다. 의사가 더 이상 수술을 미루면 암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딸에게 수술을 받으면 나를 못 믿는 것이고 '스승'을 못 믿는 것이며 '파룬대법'을 못 믿는 것이라서 모녀관계를 끊자고 했다.  다행히 사위는 딸을 병원에 데려가서 수술을 하라고 몰아댔다. 그 때 혹 무게는 이미 1.5kg 이나 되었다. 딸은 수술을 하고 병원에 2달 넘게 입원해있었지만 나는 한번도 병문안을 가지 않았다. 지금 되돌아보면 자기가 얼마나 망령스러운지 몰랐다. 남편이 내 앞에서 죽었고 딸마저 죽일 뻔했다.

2014년부터 도시, 동네 지원자들은 나를 도와주기로 했다. 지원자들은 우리 집에 찾아와서 '파룬궁'과 관련된 책과 동영상을 보여주고 나는 애초부터 반항을 많이 했으나 나중에 자기의 잘못을 알게 되었다. 십년 넘어 꾸준히 배워 온 '대법'은 사실 '파룬궁'이라는 속임수이었다. 악몽에서 깨어나서 지난 일을 생각나면 차마 돌이켜 볼 수가 없었다.

1998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한 지 16년동안 나는 무지몽매 속에서 좋은 시절을 보냈다. '파룬궁'이라는 속임수 때문에 수십년을 함께 해 온 남편을 죽이고 친딸마저 죽일 뻔했다. 모든 것에 직면할 때 나는 매일 눈물나고 밥 생각이 없고 후회만 하고 있다. 지원자들은 심리전문가를 모시고 나와 소통시켜주고 딸들도 매일 집에 와서 위로해주고 나는 점점 살아갈 용기가 생겼다. 가족과 친구들의 지지 아래 나는 노인대학에 다니기 시작했다. 매일 서화도 배우고 친구들과 서화 지식도 나누고 즐겁게 지내고 있다. 밤마다 공원 광장에 가서 오랜 친구와 춤을 췄다. 몸이 건강해지고 정신문화생활도 많이 풍부해졌다. 나는 일정 기간의 간격으로 여행도 다니고 지금까지 가 본 도시가 10개 이상을 넘었다. 충실한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제 깨달았다. 올해는 71세이지만 '석양이 한없이 아름답다'라는 말처럼 잘 살고 멋진 황혼의 아름다움으로 내 인생을 위로할 것이다.

중수윈 근영

중수윈의 서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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