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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소업’ 경력

2016-06-28 기원 하 다:Kaiwind Auteur:저우춘왕

나의 이름은 저우춘왕(周春望)이며 카이펑망(凯风网)에 <탈변>이란 제목으로 나의 정황과 법륜공수련중 고통스러웠던 경력들을 발표했다. 법륜공에 심취됐던 지난 시기에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 볼때마다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다.

나는 1998년부터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초기 법륜공에 가담한 원인은 이홍지가 전에 “법륜공을 수련하는 사람은 약도 침도 필요없으며 그가 제자들의 신체를 청리해준다/…/…”말했기 때문이다. 천하에 어디 이렇게 좋은 일이 있고 이렇게 /‘자비로운/’ 좋은 사람이 있단 말인가? 아름다운 기대를 안고 나는 법륜공연공자의 대오에 가입했다. 법륜공조직에 가입한 후에야 나는 그들은 /‘연공/’이라 하지 않고 /‘수련/’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나는 초보로 소위 /‘법리/’에 대해 잘 몰랐다. 보도원은 처음부터 너무 /‘높이/’ 말해주지 않고 연공시간이 오라고 일정한 수준으로 제고된 다음에 /‘높은 층차/’의 법리를 나한테 이야기해준다 했다. 연공이 심입됨에 따라 나는 초보로 부터 /‘수련인/’으로 성장했다. 장기적으로 법륜공의 이론에 물젖으면서 /‘법리/’에 대한 인식도 애당초 /‘연공건신/’때보다 많이 제고됐다. /‘사부님/’경문의 지시대로 나는 여러번 북경에 가 /‘호법/’을 진행했고 /‘명리정/’을 버리고 부모와 대립하고 법륜공을 견지했다. 이때 나는 내가 정진할만큼 했으므로 사부님이 자연히 나를 소업시켜 주리라 믿었다.

어느날 나는 갑자기 손목과 겨드랑이가 가려워났다. 처음엔 손으로 몇번 긁으니 괜찮았다. /‘수련인/’의 각도에서 이것은 소업이고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 가려운 부위 면적이 확대됐다. 온몸 살이 겹치는 부위가 다 가려워났다. 손목부위도 내가 긁어 여러곳이나 터졌다. 이건 내가 법학습에 정진이 부족하고 호법에 기여가 적어 이런가 보다, 수련에만 노력하면 괜찮겠지, 업력이 나를 더는 교란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 나는 법학습과 연공소업에 더더욱 노력했다.

어머니는 가려움을 참지못하는 나를 보고 시립제1병원은 피부과가 유명하기로 소문난 병원이니 가 보라고 했다. 나는 “이건 보통인들이 생기는 병과 다릅니다. 이를 신체의 정화라 하며 소업이라고 합니다. 우리 수련인의 신체는 금강과 같습니다”라 대답했다. 당시 나는 나의 소양증은 확실히 보통이 아니라 생각했다. 유독 밤에만 발작하고 낮에는 아무일 없는듯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소업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바로 존경하는 /‘사부님/’이 나를 고험하고 계시며 나한테 층차를 제고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얼마간 지나 소양증은 점점 심해갔다. 인젠 살이 겹치는 부위뿐아니라 모든 부위가 다 가려워났다. 그러나 피부에는 두드러기나 구진이 나지 않고 다만 근질거려 견딜 수 가 없었다. 나는 더는 감히 마음대로 거리로 나가 다니지 못했다. 온몸에 수억개의 작은 소양증 가시지뢰가 매복돼 수시로 군데군데에서 동시에 폭발할지 모를 일이었다. 소양의 발작은 밤 뿐만 아니라 하루 24시간 수시로 발작했다. 매번 소양에 견딜수 없을때 마다 나는 침실로 뛰어들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바탕 마구 긁어 댔다. 좀 괜찮아졌다 생각할때는 손톱이 다 아파났다. 온몸은 손톱자국으로 성한데가 없었다. 옆에서 어머니가 나를 병원에 가보라 해도 나는 고집하고 가지 않았다. 나는 “이게 보통사람들이 걸리는 보통병이 아닙니다. 보세요. 온몸이 그렇게 가려워도 얼굴만은 가렵지 않거든요, 어떻게 보통 피부병일 수 있습니까? 이게 바로 소업입니다!”라 변명했다. 이토록 고집을 부리는 나 앞에서 어머니도 별 수가 없었다.

시간은 어느덧 흘러 정월부터 시작한 소양증은 여름방학때 까지 계속됐고 나의 소업도 이미 반년이 흘렀다. 매일 매일 고통스레 지탱해 온 나는 얇은 적삼마저도 입을 수 없게 됐다. 피부가 민감해져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도 견딜수가 없었다. 독서와 법학습은 커녕 밥도 제대로 넘길 수 없었다. 매일 잠을 잘 수 도 없었고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했다. 소양이 발작할때면 인젠 손으로 긁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머리를 벽에 박으며 고통을 완화시킬 수 밖게 없었다. 지어 정말 죽어버렸으면 얼마나 좋으랴, 고통을 모르게 라는 생각까지 다 들었다.

이때 가족들이 의학백과 사전을 뒤져 나한테 이것이 소업이 아니라 일종의 옴이라는 피부병이라 알려줬다. 이 병은 옴이 사람의 피부 겹친부위에 기생해서 생기는 병이며 저녁에 활약하고 보통은 사람의 목 부위 이하의 피부조직에 파고 들어가 기생하며 그 증상은 몹씨 가렵고 전염성이 강하다 했다.

옴이라는걸 안 온 가족들은 긴장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소업의 신념을 안고 절대로 병원에 가지 않는다 고집했다. 이때부터 집에서는 나를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자기 방에만 있게 했다. 식사때에도 전용의자에 고정위치를 정해놓고 화장실사용때에도 공용으로 사용하는 변기좌판을 사용못하게 했고 옷세탁도 별도로 하게 했다. 그들의 이런 요구는 나 대법제자의 존엄을 강하게 자극했다. 나는 결심을 내리고 병치료를 거절하며 마음속으로 /‘사부님/’이 사경에 빠진 나를 살려내 고질병이 치료를 받지 않고도 저절로 낫기를 바랬다.

최종 나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가족들의 권고로 병원에 가서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나한테 단 한가지 약, 하나당 인민폐로 1원짜리 황연고 열개를 떼주며 하루에 한번씩 온몸에 바르라 했다. 약을 사용한지 3일이 되니 가려움이 없어졌고 일주일만에 다 나았다.

비록 몇년전의 일이고 나도 언녕 죄악의 법륜공을 탈퇴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옴은 쉽게 치료됐지만 마음속의 통증은 어쩌면 한평생 잊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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