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두 딸은 /‘전능신(全能神)/’에 빠져 연락이 두절되었어요. 작은 딸은 작년 9월 이후 연락이 되지 않고, 큰 딸은 올해 1월 18일 집을 나간 후 지금까지 연락이 없고요.” 호씨 부부는 지금 카이윈드(kaiwind) 텔레콤과의 인터뷰를 하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비통해 하였지만, 딸을 찾는 데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호씨의 이름은 호옥정(胡玉庭)이고, 그의 아내는 임삼수(林三秀)이다. 복건성(福建省) 용암시(龍岩市) 상항현(上杭縣) 호양향(湖洋鄕) 원풍촌(元豊村) 출신이다. 부부는 착실하고 선량한 농민으로, 농사를 지으며 생활을 한다. 그들은 원래 단순하고 평범하지만 삶의 작은 행복을 잃지 않고 살았다. 그들 슬하에는 1남 2녀를 두고 있었는데 첫째가 아들이고, 큰 딸의 이름은 호몽연(胡夢燕)으로 올해 28살이고 어려서부터 착하고 일찍 철 들었으며, 얼굴도 예뻤다. 학력은 중등전문학교이다. 작은 딸의 이름은 호몽금(胡夢琴)으로 올해 26살이고, 무이산(武夷山)대학을 졸업하였다.
“저희는 아직도 농사를 지으면 살고 있지만 농사가 잘 되나 안 되나 똑같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지금 두 딸과 연락이 끊겨버려 마음이 너무나 아파요. 앉으나 서나 딸 생각 밖에 없어요. 딸아 너 지금 어디 있어? 엄마, 아빠는 너희가 너무 걱정된다. “ 호씨가 흐느끼며 말했다.
사건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들은 중등전문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담임 선생님이 기독교 신자였는데, 언제부터 인지 모르겠지만 그도 따라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 어느 날 아들이 집으로 돌아온 후 우리들 더러 기독교를 믿으라고 하였고, 우리는 믿지 않는다고 했는데 큰 딸은 그를 따라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 아들은 졸업 후에 절강성의 각 종 틀을 제작하는 회사에 취직하였고, 당시 여자친구(현재 아내)에게도 하문(厦門)에서 기독교를 믿게 하였다. 마침 큰 딸은 졸업 후에 하문에서 일하게 되었고, 작은 딸도 졸업 후에 언니를 따라 하문으로 가서 두 자매는 같이 살게 되었다. 나중에 며느리는 아들을 따라 절강성에 가서 일하게 되자, 우리 두 딸만 하문에 남게 되자 그 때부터 그들을 곁에서 보살펴 줄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2012년 아들과 며느리는 다시 하문으로 돌아와 일하게 되어, 두 딸과 함께 살았다. 한 번은 내가 딸들을 보러 하문에 갔는데, 큰 딸을 나를 큰 교회당에 데리고 갔다. 나중에 나는 큰 딸이 말한 동료와 그녀가 하는 말을 들었다. “우리 교회에 가지 말고 가족집회를 하자.”또 한번 나는 집 주인이 며느리에게 저녁에 “전능신”집회에 같이 가자고 하는 말과 큰 딸은 이어서 “전능신”을 믿으면 돈, 부모님, 아이들 모두다 문제 없고 옥상에서 뛰어내려도 죽지 않을 거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말을 하나도 믿지 않았고, 며느리에게도 믿지 말라고 하였다.
2013년 6월 16일 큰 딸은 나에게 문자 한 통 보냈다. “사랑하는 아빠 저는 다 컸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 번호는 제 것이 아니라 회사동료 것이에요.”
2013년 음력 7월 14일(농촌절), 큰 딸이 집에 다 전화를 한 것을 끝으로 연락이 끊겨 버렸다. 우리 부부는 이 일로 자주 밤마다 잠을 설치게 되었고, 머리 속에는 온통 연락이 끊긴 딸 뿐이어서, 무엇을 하든지 재미 없었다. 우리는 딸이 안전한지 너무 걱정이 되었다. 어느 날 하문 부두에 있는 창고에 어떤 여자 시체가 있다고 들어서 나는 혹시 우리 딸이 뜻 밖의 일을 당하지 않았을까 생각하여 재빨리 달려 갔었다.
“작은 딸은 큰 딸의 영향을 받아 /‘전능신/’에 빠지게 되었어요. 작년 9월, 갑자기 작은 딸과 연락이 되지 않아, 우리는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하였는데, 그도 딸이 전화번호를 바꾸어서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어요. 그리고 작년 11월 우리는 두 딸이 사는 곳도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어떻게 찾을 방법이 없게 되었어요.”임삼수가 탄식하며 말했다.
걱정하는 중에 뜻밖의 일이 찾아왔다. 올해 1월 3일 큰 딸은 오토바이를 타고 용암으로 돌아왔었는데, 그녀는 엄마 보러 돌아온 김에 호적부를 가지고, 홍콩·마카오로 여행 간다고 하였다. 그렇게 말한 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가려 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밥은 먹었니?”라고 물었고, 그녀는 “먹었어요, 제가 직접 만든 만두요.”나는 그녀가 가방에 우산과 만두 하나를 집어 넣는 것을 보았다. "나랑 돌아가자”라고 그녀에게 말하니, 그녀는 거절하지 않고, 순순히 나를 따랐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났다. “내가 2년 동안 얘기했는데 너는 어째서 집에다 연락 한 번 하지 않느냐, 내가 하는 말 다 듣지도 않고, 모른다고만 하니?”라고 나는 말했다. 며칠 후 1월 8일 아들이 하문으로 돌아가 일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큰 딸은 자기도 하문에 가야 한다고 고집 피웠다. 우리가 계속 만류하자 그녀는 1월 15일 후에 가겠다고 하였다. 나는“딸아 너 하문에 가지 마라. 하문에 가는 것이 너 자신이랑 우리 집안에 좋을 게 머가 있냐? 너도 지금 니 모습 한 번 봐라 얼마나 말랐는지. 니가 원하는 거 엄마, 아빠가 다 들어 줄게, 먹을 것, 입을 것 집에 모든 게 다 있잖아. “라며 딸을 설득했다.
그녀는 “제가 원하는 몸이 바로 지금의 몸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어떤 말도 듣지 않았다. 그녀는 또 “엄마, 아빠가 중요시 하는 것은 돈이지만 “전능신”은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아요.” 라고 하면서 음력 1월 18일 끝내 하문으로 가버렸다. 집을 떠날 때 나는 그녀에게 차표를 사주고, 300위안도 따로 챙겨 주면서, “이 돈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고, 동생이랑 같이 써라”고 얘기 하였다. 그녀는 하문에 도착하면 휴대폰을 사서 집으로 연락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도착한 당일 집에 전화를 한 그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딸들아 일도 하지 않아, 수입도 없는데, 어떻게 사나! 딸들아, 우리가 너희들이 빨리 돌아오기를 얼마나 바라고 있는지 아니? 딸들아, 어서 돌아오려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