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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한 ‘천국’, 풍비박살 난 가정

2016-01-05 기원 하 다:개풍망 Auteur:저자: 린푸창(구술) 타린푸(정리)

하루 아침 수렁에 빠져,황당한 길 몇 년 걸었구나. 용케 매혹의 벽을 뚫고 백발에 신생 찾았네. 벽에 붙여 놓은 자작 /‘타유시/’를 보며 썰렁한 오두막 방에서 차마 돌이킬 수 없는 지난날을 회상하노라니 가슴이 저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내립니다. 저의 이름은 린푸창(蔺福仓)입니다. 올해 67세, 초중 졸업, 너이멍구(内蒙古) 커유중치(科右中旗)에 살고 있는데 자식들의 효도를 받으며 편안히 만년을 즐겨야 할 나이에 문도회(门徒会) 수렁에 빠져 아들의 행복과 전도를 다 망치고 온 가정 생활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신/’을 경건하게 지킨 결과 가정 파탄과 처참한 만년을 맞이했습니다.

친구를 잘못 사귀어 /‘삼속(三赎)그리스도/’와 인연을 가져

아들 린창쟝(蔺长江)이 9살 되던 해 마누라가 병으로 세상 뜨고 저 혼자서 고생 속에서 아들을 키우며 가정을 지탱해 왔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들은 초등 중학교을 졸업하자 중퇴하고 집에서 농사일을 도왔습니다. 근년에 농촌발전을 지지하는 정부의 혜택에 힘 입어 가정형편이 차츰 펴지고 1996년에 대출로 작은 트럭 한 대를 구입해 아들 며느리가 농한기에 운수업을 해 해마다 7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렸습니다. 1998년 아들이 촌 주임으로 당선되고 며느리가 농자재상점을 차려 장사가 잘되고, 더더욱 손자 녀석이 태어난 후 집안에 웃음소리가 그칠 줄 몰랐습니다. 부지런히 노력하여 부자가 되려는 강한 의욕으로 충만한 우리가정은 마을에서 /‘오붓한 가정 본보기/’로 꼽혔습니다.

바로 그 해 여름, 향에서 열린 장날에 장시차이(张喜才)라는 지린(吉林) 사람을 알게 되었고 저보다 한 살 아래인 그는 농업기술지도소에 근무하다 퇴직한 사람인데 혼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비슷한 경력으로 우리는 각별히 친숙해지고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의기가 투합했습니다. 점심 시간이 되자 장씨는 열정적으로 저를 식당에 데리고 들어가 한턱 쏘고 주흥이 한창 무르익자 메고 온 가방에서 작은 책자 두 개를 꺼내며 저에게 귀속말로 속삭였습니다. “형, 우리가 인연이 있으니 책 두 권을 드리는데 돌아가 잘 보세요”, 받아보니 한 권은 <칠보영정(七步灵程)>이고 다른 한 권은 <한중천국몽(汉中天国梦)>이기에 “자네 신선 되려나”고 농담을 건넸더니 장씨가 기뻐하며 말을 이었습니다. “형, 형 말을 들으니 형이 신과 인연이 있어 보이는데 내가 신을 믿고 있으니 형도 가입해 보구려.” 그때 그가 말하는 /‘삼속그리스도/’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즉석에서 대답은 안 했지만 장씨와  /‘절친한 친구로/’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그는 시간만 나면 저의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저를 나쁜 길로 이끄는 주도자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기도에 심취되어 열광적인 파멸의 길을 선택

제가 낚시를 좋아한다는 걸 안 장씨는 차를 몰고 저를 저수지로 데리고 가 매일 저와 함께 낚시를 하고 아들 며느리는 제가 /‘절친한 친구/’ 사귀었다 좋아했습니다. 장씨는 열성적이고 아는 사람이 많고 빽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들의 운수업 일거리가 줄자 주동적으로 외지 길닦이 공사를 연락해주고 며느리가 경영하는 농자재 상점의 화학비료가 잘 팔리지 않자 지린으로 달려가 외상으로 깔아놓았다가 년 말 전에 외상값을 전부 회수해 왔습니다. 우리 일가는 장씨를 천하제일의 대단한 능력자로 보고 그의 말이라면 곧이 곧대로 잘 들었습니다. 2000년 여름부터 장씨는 갑자기 저를 입교하라고 요구하고 제가 망설이자 “형, 내가 형 일가를 도와 적잖은 어려움을 해결했는데 그게 다 나 개인 능력이 아니라 신의 힘인데 신을 믿으면 천국에 들어가고 재난을 피하고 영생할 수 있고 좋은 일만 있지 나쁜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숱한 /‘견증(见证)/’자료를 저한테 보이기에 좋은 친구 사이에 속일 리가 없을 것이고 또 입교해봤자 다른 일에 지장 받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동의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십자기(十字旗)/’를 정당에 걸어놓고 한 걸음 한 걸음 심연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장씨 요구대로 집에 걸었던 모든 세화, 마누라 사진, 아들 결혼사진까지 다 내렸습니다. 이런 사진이나 그림을 걸면 사악한 영혼이 그 속에 숨어 재앙을 불러오기 때문이었습니다. 입교 후 매일 9시에 장씨가 임대한 방에 가서 집단 기도를 하고 /‘영가/’를 부르고 /‘천당/’무를 추는 것이 매일 꼭 해야 할 필수과목이었습니다. 아들은 처음부터 저의 입교를 반대했는데 차츰 제가 매일 제 정신이 아니고 이상해 보여 여러 번 수련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장기적으로 고기잡이를 한 탓에 풍습성 관절염을 앓는 저는 흐린 날씨면 뼈 속까지 파고드는 통증을 느꼈는데 교를 믿은 후부터 관절통이 많이 나아지고 또 장씨가 기회를 놓칠세라 저에게 신을 믿는 장점을 선전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삼속그리스도/’를 깊이 믿고 장씨에게 수련 결심을 표시하고 평시에 복용하던 한약 한 박스를 버렸습니다.

가정에 해를 끼치고 침통한 대가를 치름

2009년 7월 어느 하루, 장시차이가 찾아와 /‘상급/’에서 /‘복음촌/’을 만들어 더 많은 신도들을 가입시키라는 지시가 내렸다고 했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몇 년 동안 촌 간부를 맡은 바 있고 가족 내에서 항렬이 높아 위망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저는 장씨의 말을 즉각 행동으로 옮겨 오토바이를 타고 집집에 다니며 사람을 끌어들였는데 짦은 2개월 사이에 30여명을 입교시켜/‘업무/’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분회의 /‘집사/’로 임명됐습니다. 인근 마을을 다니며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해 저는 아들에게 차를 사달라 졸라도 아들이 절대 동의하지 않더니 제가 하도 갖은 수단으로 귀찮게 굴어 4만원 주고 중고 봉고차를 사줬습니다. 제가 전문 기사를 한 사람 고용했는데 후에 기사가 제가 하는 일을 알고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거절해 할 수 없이 초급 중학교 다니는 손자더러 차를 몰라고 했습니다. 원래 공부하기 싫어하는 애라 용돈까지 준다니 얼씨구 좋다고 제 뒤를 따라다녔고 저는 차라리 가족들 몰래 손자 휴학수속을 끝냈습니다. 후에 며느리가 알고 저와 한바탕 다투고 분가해 나가고 손자는 /‘꼬마신도/’가 되어 저의 집에 남았습니다. 장씨는 또 사람만 끌어들여서는 안되고 반드시 신에게 /‘자혜금(慈惠钱)/’을 바쳐 신국(神国)의 /‘만사부흥(万事复兴)/’을 도와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모았던 돈을 다 까먹어 할 수 없이 갖가지 구실로 아들과 며느리한테서 돈을 받아내 선후로 무려 3만원이나 헌금했는데도 헌금액수가 날로 줄자 장씨가 계속 독촉해대는 통에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해 겨울, 인근 향에 복음을 전달하러 가는 길에 교통경찰의 검사가 들이닥치자 면허증이 없는데다 길이 익숙하지 않아 긴장 끝에 차를 큰 구덩이에 빠뜨렸는데 다행이 손자가 경상만 입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는 독실하지 못해 /‘신/’이 성나 질책하는 것이라며 향후 더 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장씨가 으름장을 놓아 저는 식은 땀을 흘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집을 팔고도 모자라 가족들을 속이고 4만원 사채를 빌렸는데 제때에 갚지 못해 빚쟁이들에게 이틀 동안 갇혀 아들에게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아 돈이 없는 아들이 차를 헐값에 팔아 빚을 갚아서야 제가 풀려나올 수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화 김에 친정으로 가고 아들이 수차 저에게 무릎까지 꿇으며 더는 교를 믿지말라 빌었지만 당시 저는 천국을 지향하고 신만 추앙할 뿐 아들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자혜금/’을 기부하기 위해 저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미쳐 날뛰다시피 했습니다. 아들 몰래 외지에 가서 아들 공사비를 받고 후에는 며느리 상점의 차용증서를 훔쳐내 물건대금을 받아다 11만원을 전부 조직에 헌금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며느리가 즉석에서 졸도해 넘어가고 사흘 후 이혼수속을 마쳤습니다. 그 충격에 종일 술만 마시던 아들은 나중에 심한 알코올 중독증을 앓고 젓가락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할 정도로 손을 떨고 멀쩡한 가정이 이렇게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불현듯 깨닫고 만년에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

2011년 장씨가 /‘복음을 전달하다/’ 공안국에 붙잡혔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향 반(反)사교자원봉사자들이 수차 집을 찾아와 저에게 사실에 근거하여 도리를 설명해 저는 차츰 /‘삼속 기독교/’란 철두철미한 사교이고 잔혹하고 탐욕스러운 악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후회해도 늦었습니다. 며느리는 벌써 외지로 이사해 다시 새 가정을 일궜고 아들은 창춘에서 반년간 치료를 받다 알콜 중독증상이 완화되어 돌아와 저와 함께 20제곱 미터도 안 되는 헐어빠진 오두막 같은 임대 방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생활상 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손자는 학교를 그만둔 후 신쟝(新疆)으로 일자리 찾아 멀리 떠났는데 아직까지 종무소식입니다. 당초 우리 일가 네 식구가 오손도손 서로 아끼며 즐겁게 살던 행복한 나날을 돌이키며 저는 너무 고통스러워 울고 싶지만 눈물조차 없어 나오지 않습니다. 그나마 기쁘고 위안이 되는 것은 봉사자들이 향 정부를 찾아가 기초생활수급 수속을 해주고 학교 경비 일자리를 찾아줘 저에게 다시 삶의 희망을 안겨줬습니다. 저는 신을 믿어봤자 천국에 보내주기는 고사하고 영원한 인간지옥으로 떨어뜨린다는 도리를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이 골수를 파고드는 깨달음은 이토록 침통한 대가를 치르고서야 얻은 것입니다.

(책임편집: 창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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