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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대법제자의 ‘3포기’ (포토)

2015-12-07 기원 하 다:개풍망 Auteur:잔스첸(구술) 쿠어부(정리)

올해 66세인 잔스첸(詹石前)이라고 합니다. 고향이 쟝수(江苏) 루가우(如皋)인데 1965년 난징대학(南京大学)에 입학하고 졸업 후 난징에 남아 전기기계연구소에서 엔지니어로 일했습니다. 1972년 결혼 후 딸 둘을 낳고 어머니를 지방에서 난징으로 모셔와 화목하고 즐겁게 생활했습니다.

저에게 생활상 고민거리가 있는데 다름아닌 법륜공 수련을 둘러싸고 생긴 일입니다. 제가 법륜공을 수련하게 된 것은 정말로 /‘대법/’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난징 마이고쵸지역에서 가장 일찍 시작하고 가장 단호한 입장을 가진 수련자로 그 일대에서 연마하는 사람은 거의가 저의 제자나 혹은 저의 제자의 제자고 저는 절대적인 법륜공 /‘베테랑/’신도입니다. 그런데 생각 외로 생활 속의 사소한 귀찮은 일들이 굴러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커져가는 눈덩이처럼 지금에 와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근원이 바로 제가 /‘사부/’의 말씀에 근거하여 총화해 낸 /‘3포기/’연공법입니다.

/‘사부/’ 위해 노모 포기

저는 “문화 대혁명의 혼란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1966〜1968년에 졸업한 중·고등 학생”(老三届)은 아니지만 공부만큼은 열심히 했고 직장 업무에서도 그나마 선두를 치던 사람입니다. 그 동안의 학습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감이라면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전수하는 지식을 명심하는 것입니다. 가장 기초적이고 가장 중요한 내용이니깐요. 공부와 업무가 이럴 진대 법륜공 수련인들 어떠했겠습니까. 제가 가장 중요시 한 것이 /‘사부/’ 이홍지의 설법인데 찾을 수 있는 /‘사부/’의 모든 저작과 녹음 테이프를 다 수집했습니다. 다년간의 연구를 거쳐 /‘사부/’의 교리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수련자들에게 “내려 놓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사실 이것 역시 마지막의 집착을 내려 놓을 때가 됐다. /‘수련인/’인 당신들이 이미 알고 이미 그렇게 했고 세간의 모든 집착(인체에 대한 집착 포함)을 내려 놓고 생사를 내려 놓는 과정에서 걸어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사부/’의 말씀이 너무도 정확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간의 집착을 체념하고 이른바 정이요, 사랑이요 하는 것들이 다 너무 허황하다고 여겼습니다.

1999년7월 어느 날, 법륜공을 수련하는가는 어머니의 물음에 태연하게 시인했더니 어머니가 화를 내시며 다시는 수련하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지만 저는 못 들은 척 했습니다. 이런 이른바 혈육의 정을 저는 이미 중하게 여기지 않고 체념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일년 남짓한 동안 어머니가 쉴 새 없이 법륜공을 이탈하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부/’가 어머니보다 훨씬 고명하지 않겠습니까! 2001년 구정 후 어머니가 고향에 있는 누이 동생들을 전부 난징에 불러 저를 향해 /‘최후 통첩/’을 날렸습니다. /‘사부/’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유지하기 위해 저는 법륜공을 이탈하라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머니가 풀썩 무릎을 꿇으며 저를 법륜공에서 나오라고 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의 마음에 온 가족을 다 합해도 /‘사부/’ 한 사람 보다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동생이 이 때문에 저에게 손찌검까지 할번 했지만 저는 법륜공을 떠날 수 없고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들이 저를 떠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렇게 어머니가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너 같은 아들은 없는 걸로 치겠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없으면 없으라지, 나도 이런 어머니는 포기다!

/‘대법/’을 추구하기 위해 직장을 포기

지속적인 수련으로 자신의 /‘공력/’이 갈수록 깊어졌지만 가면 갈수록 /‘대법/’이 더없이 현묘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더 뛰어난 경지에 도달하기는 날로 더 어려워 어떤 때는 /‘사부/’의 말씀이 이해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자신의 문제고 저 자신이 아직 철저하게 모든 것을 /‘내려 놓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천고이래 인류, 물질이 존재하는 각개 공간, 생명과 전체 우주를 원만(圓滿)하고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불법/’뿐이다”“대법말고는 인류사회에 또 어디에 정토가 있는가?” 자신의 층차 제고에 영향을 주는 원인이 걱정거리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직장 업무, 업무관련 토론이라던가 너무 빤하고 /‘대법/’처럼 현묘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빤한/’일들에 매달릴 필요가 없이 모든 시간과 정력을 /‘대법/’에 쏟아야 /‘대법/’을 더 투철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001년 말 저는 사직을 결심했습니다. 더는 이런 업무상의 사소한 일로 /‘법 학습/’에 지장을 줄 수 없었습니다. 직장 동료들과 가족들이 이 소식을 듣고 놀래고 직장 상사, 부서 팀장이 누차 저의 집을 찾아와 /‘설득/’을 했습니다. 저의 업무수준과 능력을 고려하여 수석 엔지니어로 임명하려던 참이고 55세 후에도 계속 채용할 것이며 급여도 대폭 인상시켜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반대로 사직하면 아무런 보장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것들을 따지겠습니까? /‘대법/’제자인 제가 이런 신외지물에 눈이 어두울 수 있겠습니까? 업무에 저는 아무런 의문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오직 /‘대법/’에만 의문이 생길 뿐입니다./‘대법/’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지 않는 한 층차를 제고할 방법이 없고 저의 공력이 감퇴될 텐데 차라리 이런 직장을 포기하고 이런 대우를 포기하는 편이 낫지요.

/‘원만/’을 이루기 위해 가정을 포기

법륜공을 수련함에 있어서 항상 저의 마음에 걸리는 가장 큰 고민거리가 /‘사부/’가 말한 /‘아랫 배/’그 위치에 /‘법륜/’하나를 연마해내지 못한 것입니다. 이 /‘법륜/’은 /‘사부/’가 “강습반에서 직접 학원에게 내려준다”고 했는데 지금 그는 미국에 가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줄곧 미국에 가서 그 /‘강습반/’에 참가해 /‘사부/’에게 직접 법륜을 내려달라 하고 싶었습니다. 이 법륜을 얻기만 하면 평시에 제가 고민하던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저 자신의 생명도 /‘원만/’을 득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직장을 그만둔 후 수입이 없고 아내가 허드레 일을 해 번 돈은 살림에 보태고 두 딸이 결혼 후 약간 보태주긴 하지만 제가 미국에 갈 돈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원만/’에 대한 추구가 저의 이상이고 저는 반드시 이 이상을 실현해야 하는데 유일한 방법이 집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 이번엔 아내가 폭발했습니다. 아내는 몇 년을 참고 참았다며 평시에 가정에 대한 무관심은 그렇다 치더라도고 집까지 팔겠다고? 집 팔고 어디에서 살려고? 정 그러면 같이 살지 말자고 제의했습니다. 두 딸과 사위를 집에 불러다 놓고 몇 사람이 번갈아가며 저와 담화했습니다. 너무 익숙한 상황이었습니다. 어머니, 직장 상사들이 다 했던 연기였습니다 . 그래서 저는 화를 내지 않고 그들에게 /‘법륜/’을 설치하는 것과 /‘원만/’을 이루는 것과의 관계를 반복 설명하고 기어이 집을 팔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을 설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가 화김에 딸집에 가면서 집문서도 갖고 갔습니다. 며칠 후 법원에서 전표가 날아 왔는데 아내가 이혼을 제출했던 것입니다. 저의 /‘원만/’을 방해하는 가정은 포기해도 좋았습니다. 법정에서 저는 아주 냉정하게 아내와의 이혼을 동의했지만 집은 기어이 저의 앞으로 판결해 달라고 주장했습니다. 팔아야 했으니깐요. 아내는 법정에서 울며 단호하게 이혼을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법관은 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집을 아내 앞으로 판결했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주는 주택 보상금으로는 미국 가기엔 역부족이였습니다. 지금 처지에서는 원래 다니던 직장에서 경비로 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최소한 잠자리가 해결되니깐요.

현실은 저의/‘원만/’의 꿈을 산산히 부셔뜨렸습니다. 저는 너무 괴로웠습니다. 이혼 후 오래토록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예전에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웠던 /‘대법/’ 이론이 현실이 들여다보이는 지금에 와서 뜻밖에 너무 명석해졌습니다. 원래 “대법을 추구하고”“원만을 이룬다”란 허황한 것에 불과하며 제가 미국에 가든 안 가든 /‘사부/’가 저의 아랫 배에 /‘법륜/’을 설치해 줄 능력이 없음이 명석해졌습니다. 지난 수년동안 제가 이렇듯 무지몽매하게 살아왔고 제가 자부하던 /‘3포기/’가 실은 인간성을 상실한 짓이라는 걸 그제야 깨닫았습니다.

고향을 여러 번 찾아갔으나 어머니가 저를 만나주지 않았고 직장 상사를 찾아가도  대문 경비 일자리도 저를 봐준 것이었습니다. 처자를 찾아가 아내와 재결합하려 했으나 아직은 용서가 되지 않으니 나중에 보자고 합니다. 전에 주장하던 /‘3포기/’를 지금 도로 다 찾아오고 싶지만 지금에 와서 어느 것인들 제가 돌려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잔스첸 근영

(책임편집: 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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