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山东)성 지머(即墨)시에 살고 있는 왕얜(王雁, 가명)이라 합니다. 올해 35세인 저는 대학에서 경제와 금융을 전공하고 졸업 후 지머시 모 은행에 취직했습니다. 저는 행복한 가정이 있고 저를 극진히 사랑하는 인민교사인 남편, 영리하고 귀여운 딸을 가진 남들이 부러워하는 행복한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전능신에 가입하고 나쁜 길에 잘못 들어서면서 가정도 여성의 순결도 다 잃고 정신적인 박해를 받을 대로 받았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할 때 마다 고통이 극에 달합니다.
완벽주의자인 저는 중학교 때 토우왠밍(陶渊明)의 <도화원기(桃花源记)>을 읽고 글속에 묘사된 아름다운 경지에 사로 잡혔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이 없고 조화롭고 편안하고 자급자족하고 유유자적한 생활, 완연한 전원풍경과 무릉도원이 저의 가슴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복잡한 대인관계에 적응이 안 되고 또한 출퇴근 시간에 맞춰 새장에 갇혀 사는 것 같은 은행 일이 싫어 늘 현실에 대한 고민과 아름다운 경지에 대한 환상에 빠져 헤맸습니다.
그리고 무슨 영문인지 저는 어릴 적부터 병에 걸릴까, 늙을까, 죽을까를 특별히 겁냈고 차라리 구차하게 살지언정 병에 걸리기 싫었고, 차라리 일찍 죽을지언정 늙기 싫었습니다. 물론 일찍 죽기 싫고 장생불로하기를 기대했습니다. 2010년 친척 한 분이 갑자기 병사해 조문 갔다가 유체를 피뜩 본 후부터 밤만 되면 머리를 풀어헤친 그녀가 저의 집 거실에 서 있는 것 같아 감히 안방 문을 나서지 못하고 늘 악몽에 시달리다 지쳐버렸습니다. 저는 종래로 나라대사나 철학이나 사상도덕 등 이론에 흥미를 가지지 못하고 대학 때에도 이런 과목 수업시간만 되면 머리부터 아파 선생님이 강의하던 말던 밑에서 소설을 읽고 잡지를 읽으며 명심해 듣지 않았습니다.
2012년 3월, 저는 이웃 집 왕 아줌마를 통해 /‘전능신/’을 접했습니다. 마야인이 2012년 12월 21일이 세계종말이라 예언하고 그날에 재난이 생기고 지구가 폭발하는데 전능신을 믿어야만 피난처에 들어가 구원되고 심판과 형벌을 면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저에게 전능신 자료를 가져다 주고 저를 데리고 이른바 /‘영가(灵家)생활/’에 참가하여 /‘성가/’를 부르고 /‘영무(灵舞)/’를 추고 피차간에 형제자매로 호칭하며 웃고 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울었습니다. 저는 이런 편안한 분위기에 감염되었습니다.
3월 26일, 저는 그녀의 권유로 의연히 보증서를 쓰고 신의 면전에서50명을 입교시키겠다고 약속하며 /‘신에게 이르기/’을 기대하고,사명을 완성 못하면 신에게 피살되어도 달갑게 접수한다고 맹세했습니다. /‘영가/’의 생활이 저의 평범한 가정에는 있을 수 없는 생활이었으므로 심적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우울했던 기분도 풀리면서 전에 없던 정신적인 쾌감을 느낄 수 있어 이런 생활이야말로 가장 뜻 깊은 생활이고 제가 바라던 생활이라고 여겼습니다.
시초, 남편은 제가 밤새도록 전능신 책을 읽어도 일찍 쉬고 출근에 영향 받지 말라고만 권할 뿐 별 간섭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점점 /‘영가/’생활에 심취돼 딸을 냉대하고 무관심하고 지어 부담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는 바람에 소학생인 딸애가 자주 학교에 지각하여 선생님의 비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저는 직장을 건성으로 다니며 짬만 나면 남몰래 /‘여그리스도/’의 신화(전능신 사교서적을 말함)를 읽었습니다. 직장 상사가 수차 경고해도 소용없자 사직을 권유했고 저는 결연히 사표를 내고 직장을 포기했습니다.
사직했다는 소식에 남편이 저의 부모까지 동원해 직장 상사에게 사과하고 직장에 되돌아가라고 설복했지만 저에게는 소에게 경 읽기였습니다. 연로하시고 건강도 그리 좋지 않으신 부모님이 눈물을 흘리며 몇 번 졸도까지 일으켰고 온순하던 딸이 귀신한테 반했는지 왜 이런 불가사의한 행동을 저지르는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능신을 믿는다는 것을 알고 2012년 12월 21일이 이미 지나고 종말설이 헛소문이라 설복해도 여전히 회개할 줄 모르는 저를 두고 고통스럽기만 했습니다.
2013년 7월, 가족들의 방해를 피해 저는 /‘신/’의 부름을 받들고 남몰래 집에 있는 3만원 현금을 지참하고 결연히 집을 나왔고 /‘지역/’ 대령(带领)의 지령을 받들고 청도시 성양구에 복음을 전달하러 갔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전도하고 성과가 특출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일선 복음 전달팀에 편성되었고 /‘목구(牧区)/’ 대령 오(吴)모 씨와 접근이 잦아졌습니다. 오모 씨는 가명이 /‘대맹(大猛)/’, 40여세인데 노련하고 저를 극진히 관심했습니다. 저를 자주 비밀 집회에 참석시키고 저에게 /‘과령상/’을 통해 /‘육체를 배반/’하고 자신의 일체를 신에게 바치고 성원을 포섭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어 색으로 유인해야 한다는 사상을 주입시켰습니다. 저는 이런 공세와 협박에 못 이겨 금세 그의 성 노리개로 전락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라 수차 일면지교인 남성 신도들과 음란 행위를 저지르고도 수치감을 몰랐습니다. 이용가치와 영향력이 있는 인원을 입교시키기 위해 색으로 유인하고 동영상이나 녹화나 녹음으로 협박, 그 중 세 명이 덫에 걸려 순순히 /‘전능신/’조직의 통제를 받았습니다.
남편과 가족들이 저를 찾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저는 그들의 고통, 걱정, 애타는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끝을 맺기 위해 남성 신도 몇 명을 변장시켜 저를 보호하게끔 대기 시켜놓고 주동적으로 남편이 교편을 잡고 있는 학교 근처의 외진 곳에서 그를 막아 나섰습니다. 남편이 재삼 애걸하고 지어 저의 부모가 여러 번 병이 발작해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지만 저의 마음을 돌려세우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집으로 가자며 저를 잡아 끌 때 주변에 숨어 있던 남성 신도가 나타나 협박을 가했습니다. 내 몸을 이미 여러 남성에게 맡겼으니 이혼하자는 소리에 온순하던 남편이 격노해 이혼에 동의하고 제가 미리 준비해 갖고 간 이혼 합의서에 사인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전능신의 보호를 얻고 평안을 지키기 위해 남편을 버리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어린 자식과 연로하신 부모를 버렸습니다.
/‘전능신/’은 강온양책을 병행하여 저를 /‘신/’에게 절대 복종하고 진심으로 경배하고 사람들을 입교시키고 /‘복음을 전달/’하는데 일체를 이바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다년간 객지에서 고생을 하면서도 저는 황당하게 빈곤과 곤경 모두가 임시일 뿐 장래에 무한한 복분을 얻게 되리라 믿었습니다. 이를 위해 반드시 일심으로 전능신을 위해 일을 하고 /‘신에게 이르기/’를 기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15년 1월 4일, 어느 날 /‘복음을 전달/’하는 마을에서 현지 군중들에 의해 공안기관에 송치되었고 저의 황당한 노정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지금 저는 반(反)사교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꿈에서 깨어났고 전능신의 사악한 본질을 인식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방종과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이 늘 저를 깊은 후회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저는 조유산(赵维山)을 증오하고 양향빈(杨向斌)을 중오하며 저주스로운 /‘전능신/’을 증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