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촌(周村)구 북교(北郊)진에 살고 있는 송철명(宋哲明, 남, 60세, 고졸)이라 합니다.
마을 사람들의 병을 봐주고 있는 송철명
저는1979년 제대한 후 군에서 위생병을 하던 경험을 기초로 독학으로 향촌 의사자격 시험을 통과하고 향촌 의사로 되어 병을 치료해 사람을 구하고 사회에 봉사하며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원칙을 시종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1998년 제가 건강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더니 뜻밖에도 “허혈성 심장질환”이라는 진단이 떨어졌고 심근경색의 징조여서 입원해야 했습니다. 퇴원할 때 의사는 “제때에 발견하고 적시 치료 덕에 악화되지 않아 다행이지 더 심하면 약 치료만으로 불가능하고 스텐트 삽입술이나 바이패스 수술을 받아야 되는데 의사라는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무심할 수 있는가? 너무 소홀했다”며 재삼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퇴원 후 바이패스 수술 생각만 해도 더럭 겁부터 났습니다.
어느 날 진료 나갔다 법륜공이 병을 치료하고 아주 좋아 숱한 사람들이 광장에서 연공한다기에 호기심에 그리로 나가봤습니다. 결국 그날부터 수습할 수 없게 됐습니다. 저는 “전법륜”을 사서 한가할 때마다 보고 또 보고 책 속에서 제가 전세의 /‘업력(业力)/’이 너무 커 이 병에 걸렸고 지금의 고생은 /‘업채(业债)/’를 갚는 과정이며 /‘업력/’을 철저히 제거해야만 진정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모든 약을 끊고 진료소 문도 닫아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주사를 놓고 약을 먹이는 자체가 그들의 병을 지체시키는 것일 뿐 진정으로 병을 치료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더는 사람들을 해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후에 한 공우(功友)가 갱년기 고혈압으로 장기적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다 같은 대법제자라 사부가 우리의 신체를 /‘정화(净化)/’해 주고 있고 “당신이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병을 버리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당신에게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사부님이 말했는데 약을 중지하라고 극력 권했습니다. 평시 법 학습에 특별히 /‘정진(精进)/’한 공우라 가족들이 아무리 권해도 약을 복용하지 않아 결국은 반년 후 안저 동맥경화로 인한 안저 출혈로 실명됐습니다. 소식이 전해지자 온 마을 사람들이 너무 놀랐습니다. 법륜공이 병을 치료한다더니 어떻게 실명까지? 그러나 저는 속인들이 이해할 수 없어서이지, 그녀의 업력이 너무 크기 때문인데 응당 더 많은 마난(魔难)을 겪어야 진정으로 /‘소업(消业)/’하고 정과를 수련해내고 /‘원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999년 정부에서 법륜공을 제재하자 북경에 /‘호법(护法)/’하러 가고 싶었지만 가족들이 극력 막는 바람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의 마음은 이루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남들은 다 북경 가는데 난 한번도 가지 않고서 어떻게 /‘원만/’할 수 있겠는가? 북경에 가고 하루 빨리 /‘원만/’하기 위해 날마다 연공하고 법을 학습하며 가족들의 감시를 피해 북경에 갈 수 있는 방법만 고민했습니다. 1998년 제가 진료소 문을 닫고 날마다 연공과 법 학습에 심취돼 가족들과의 관계가 원래 긴장한데다가 또 /‘호법/’하러 간다 하니 모순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마누라는 “북경에 가기만 해봐, 당신과 안 살아”라 했고 아들도 극력 권했지만 저는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법륜대법/’의 좋음을 속인들이 어찌 이해할 수 있으랴, /‘대법제자/’가 그들에게 발목 잡혀서는 아니 된다, 그들이 조만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족이 덕을 얻게 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식구들이 일하러 간 틈에 저는 결연히 집을 나섰고 오로지 북경에 갈 생각만 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부랴부랴 길을 가로 건너다 달려오는 차에 치어 혼미상태에 빠졌습니다. 정신차렸을 때는 이미 148병원 병상에 누워 있었고 온 몸 여러 곳에 골절상을 입고 비장과 폐도 손상을 입었습니다. “왜 아예 치어 죽지 않았어? 북경에 원만하러 간다 했잖아, 그토록 북경 가고 싶었는데 죽으면 보내줄게” 마누라가 울며 부르짖었고 아들도 법륜공이 정말로 우리를 패가망신 시킨다고 울었습니다.
눈앞의 정경을 두고 식구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연속 며칠간 깊이 반성했습니다. 사부가 대법제자는 시시각각 그의 법신의 보호를 받는다 했는데 왜서 나는 보호를 받지 못했는가? 의사의 최선의 응급치료가 아니었다면 나는 벌써 죽었을 것이고, 연공하면 온 가족이 덕을 얻는다는데 식구들이 왜 이렇게 반대하고 이렇게 고통스러워할까? 저는 또 그 공우가 생각났습니다. 약을 거부한 탓에 실명되고 남편이 일하러 떠나고 시부모님들께 의지해야만 했습니다. 가정의 주요 노동력이던 그녀가 가정의 짐이 되어 농사일도 못하고 집안 일도 못하고, 행복하던 가정이 이렇게 무너졌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온 몸에 식은 땀이 쭉 났습니다. 계속 정신차리지 못했다간 다음의 건강과 가정 파괴자는 내 차례일 것이다. 1년 남짓한 동안 법륜공의 터무니없는 사설에 빠져 진료소 문을 닫고 가정을 돌보지 않고 만사를 제쳐놓고 /‘병 치료/’와 /‘원만/’하는 일에만 집념했고 법륜공을 연마한 탓에 자신을 망치고 다른 사람에게도 해를 입혔던 것입니다. 제 정신이 들자 자책감에 마음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퇴원 후 저는 진료소 간판을 내걸고 다시 마을 진료소 일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평생 배운 지식으로 최선을 다해 주변 사람들을 도와 질병을 제거하고 과학적인 태도로 환자를 대하고 진정으로 병을 제거하고 사람을 구하는 향촌 의사가 되리라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