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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을 믿다가 죽을 고비에서 생환

2013-12-02 기원 하 다:Kaiwind Auteur:진송수

 

진송수   

올해 62세의 진송수()입니다. 저는 화중()공업대학 반도체부품과를 졸업한 후 장강수리(水利)위원회 소속의 장강유역 수자원보호국에 배치받았습니다. 저는 진()에서 생긴 첫 대학생이고 직장에서도 업무 중견이었습니다. 현모양처형 아내와 진취심이 강한 아들, 우리 일가 세 식구는 안락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행복하게 살아 온 저의 가정과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90년대 초부터 법륜공을 믿기 시작해 /‘스승/’이 표방하는 법신보호누가 당신을 건드릴 수 있다면 나를 건드릴 수 있으며 즉 이 우주를 건드릴 수 있다등이 저의 의식에 깊숙이 침투되고 공동 의식과 /‘스승/’에 대한 신뢰감이 깊어졌습니다. 따라서 공우(功友)들의 영향과 만능의 /‘스승/’이 제자들과 한 많은 약속 등이 제가 그를 철석같이 믿게 된 주된 요인이기도 했습니다.   

1999년 국가에서 법륜공을 단속한 후 저는 정부가 틀렸다고 결단을 내리고 계속해서 발표되는 /‘스승님/’의 신경문의 호소를 받들고 법신의 보호가 있는데 대법제자로서 두려울 게 뭐냐며 이른바 진상을 알리는” “상경호법()”활동에 거침없이 참여했습니다.   

2000층차 제고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저는 전단을 배포하고 홍법하고 진상을 알리면서 비밀 법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기타 대법제자들과 사부의 신경문을 교류했습니다. 저의 학력에 얼마가지 않아 지역 중견으로 꼽혔습니다. 그후 공우들의 교류와 학습을 조직하는 등 일들이 갈수록 많아졌고 연속 10여일씩 집을 비우기도 했고 직장 근무 마저 포기했습니다.   

저를 구원하기 위해 직장에서는 저의 근무환경을 바꾸어 주려 시도했습니다. 아내와 아들의 동의를 얻은 후 20026월 삼협(三峡)저수지 지역에 파견 근무를 시켰고 저의 마음을 안착시키고 제가 가정을 돌보도록 월 1회 귀가할 수 있는 전례없는 허가를 내줬고 월 500원씩 특별 보조금도 지원해 줬습니다. 이런 직장 상사의 관심에 감사해야 할 대신 저는 저를 유배를 보내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삼협에서 일하는 동안 저는 /‘대법/’ 진도에 떨어지고 /‘층차/’가 떨어져 진정한 대법제자가 될 수 있을지 우려심에 삼협에 도착한 3일째 되는 날 의창 지역의 법륜공 열성분자와 연락을 취하고 그 지방의 학원들을 조직하여 비밀리에 법을 공부하고 설법을 진행해 곧 지역 중견으로 되었으며 더욱 빨리 층차를 제고하기위해 매달 귀가 기회를 빌어 집에 숨겨뒀던 경문이며 각종 대법 책자들을 운송해 날마다 암송하고 베끼며 /‘스승님/’이 요구한 /‘세가지 대사/’를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고 더욱 경건하고 더욱 정진하게, 그러나 직장에서 맡긴 업무는 구중천에 날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발생된 일들로 저는 /‘스승님/’이 말한 대로 하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됐습니다. 무한에서 삼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서 발생한 일인데 우리가 앉은 차가 호북성 선도(仙桃)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입니다. 차가 크게 뒤집어져 폐차 정도였습니다. 그날 운전을 한 사람이 저의 동료 흑씨였는데 평시 법륜공을 극도로 싫어하고 /‘스승/’을 밥 먹듯 욕하고 수없이 비난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를 대법을 파괴하는 악마로 여겼고 꼭 봉변을 당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저에게 호된 매를 안겨주었습니다. 이마만 과찰상을 약간 입었을 뿐 다른 데는 다친데라고는 없었습니다. 한차에 탄 다른 동료들도 전신 여러 곳 인대가 상하고 종지뼈가 파열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상처가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교통사고 발생시 법륜대법 서적과 자료를 안고 마음속으로 시시각각 스승님을 념하던 대법제자인 제가 /‘법신/’의 보호를 받아야 할 대신 가장 크게 다쳤던 것입니다. 사고 발생후 얼마동안 지났는지 눈군가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 가까스로 눈을 뜨니 자신이 병원에 누워 있는 것이었습니다. 좌우 양측 갈비가 완전히 부서지고 전신 여러 곳에 골절이 생겼는데 다행히 즉석에서 응급 치료를 받은 덕에 살긴 했지만 조금만 늦었어도 죽을 번 했다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석고로 전신 깁스를 한 저는 조금만 움직여도 쑤시듯 아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무자비한 사실 앞에서 저는 반성했습니다. 십여년동안 국내외에서 대법제자가 당한 불의의 제앙이 너무도 많았으며 식구가 죽고 가정이 파탄을 맞는 비극들을 너무 많이 들어왔습니다. 생각할수록 무섭기만 해 더는 /‘집착/’하기가 더럭 겁이 났고 다시는 매혹에 빠져 허덕이기 싫었습니다. 허다한 의문과 의혹을 안고 저는 집에서 반년 넘게 휴양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과 직장 동료들의 인내성 있는 계발과 방조로 깊이 사색하고 종일 수심에 잠겨있던 저는 끝내 이홍지 그 사람 그 일”, 그리고 대기저(大起底)”의 진실에서 답을 얻었으며 이홍지의 음험한 진면모를 철저히 간파하고 반석과 같이 굳은 태도로 결연히 이홍지 및 법륜공 사이비종교단체와 철저히 결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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