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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복조 투독 살인사건 후속보도(포토)

2012-01-09 기원 하 다:Kaiwind Auteur:주언

" 갑자기 귀가에 둘째 누나, 큰 누나의 부름소리가 선후로 들렸고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느낌, 희열과 죄책감이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그립던 육친들을 드디어 보게 된다는 기쁨과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데 대한 죄책감/…/…/” 이 글은 진복조(陈福兆)라는 사람이 남긴 글이다.

진복조는 누구인가? 그는 전에 사람들의 생명을 구조하는 의사었는데 법륜공의 수렁에 깊이 빠져 불귀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다.

2003년 5월 25일부터 6월 27일까지 진복조는 무려 17차나 쥐약을 투여, 17명의 무고한 생명을 참혹하게 살해한 범행을 저질렀고 그 자신도 생명의 대가를 치렀다. 2004년 6월 18일 사형집행과 동시에 진복조의 젊은 30세 인생도 종지부를 찍었다.

죄행이 하늘에 사무쳐 참회해도 이미 너무 늦었다.

진복조가 사형집행을 당한지 7여년이 지난 오늘, 그가 저지른 세계를 경악시킨 특대 연쇄 살인사건이 사람들 기억에서 차츰 멀어져가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 가족들과 진복조 가족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아픈 상처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피해자 가족들은 육친의 돌연사로 비통속에서 진복조와 법륜공을 극도로 증오하고 있고 진복조의 고령의 부모들은 "자식을 앞세운/” 비통을 이겨내야 함과 동시에 아들의 용서못할 죄행때문에 죄책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하나 아들인 진복조의 말만 꺼내면 금년에 63세인 진복조어머니는 눈물부터 앞선다. "걔 착하지 않은 애가 아니었는데, 말도 잘 듣고 어려서부터 술,담배라고는 다치지도 않던 애가/…/…/”

아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에 젖어있는 마누라를 보자 말씀을 나누던 진복조의 70세 부친도 그만 침묵을 지켰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부친은 어쩔수 없다는 듯이 "우리는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을 다했는데, 자발적으로 정부에 그가 법륜공을 수련한다는 사실을 보고했고 그가 심취됐을 때도 구해내려 갖은 애를 다 썼건만 고집을 부리며 우리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해 진복조가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을 때만 해도 두려움이나 양심의 가책은 꼬물만치도 없이 17명의 무고한 생명를 참혹하게 살해한 원인은 소업을 하고 공력을 높이기 위해서라 고집했다. 경찰에 구속되지 않았다면 그는 살인의 "웅대한 구상/”을 계속해서 실천에 옮겼을 것이다.

그러나 법정심리 기간 그 많은 피해자들의 임종 사진을 보는 순간 진복조는 자신이  용서못할 범행을 저질렀음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사진속의 피해자들마다 극단적인 고통의 표정을 얼굴에 그랜채 땅에 쓰러져 있었고 입에 흰 거품을 물거나, 피를 토하기도 했다.

법정심리 제 11일째 되는 날 온주 구류소에서 남긴 글에서 그의 진실한 느낌을 엿볼 수 있다. 진복조는 부모와 아내, 어린 딸과 누나와 여동생들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함과 동시에 더더욱 자신이 범한 죄행을 깊이 참회했다.

"법정에서 공소인이 공소장을 읽을때 그 소리를 경청하면서 내심으로 자신의 죄악이 크다는 것을 깊이 느꼈고 깊은 죄의식에 빠졌습니다. 저는 사교 법륜공을 극도로 증오합니다. 법륜공이 저를 기로로 이끌었고 처자식과 갈라지고 만회할 수 없는 오늘의 착오를 지도록 만들었습니다. 법관이 휴정을 선포한후 나오다 얼핏 좌석에 앉아 있는 아버지와 소령(小玲)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세사람은 잠간 서로 눈을 맞췄습니다. 그 시각 그 눈길이 말해주는, 깊은 사랑에서 오는 절망과 쓰라림과 무기력 /…/… 당신들중에 애기를 안은 사람을 보고 저게 바로 내 보배딸이겠구나!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의 첫 딸, 아빠가 너한테 죄를 졌구나! 제가 당신들 앞에서 잘못했다 만번을 빈다해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 됐으니, 너무 늦었습니다/”.      
 

 

2004년 1월 진복조가 감옥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년하장

진복조의 말과 같이 때는 "너무 늦었다/”. 그는 반드시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했다. 잔인하게 17명의 멀쩡한 생명을 빼앗은 후 그는 자신의 30세 젊은 생명으로 속죄했다. 진복조는 갔다. 부모와 아내에 대한 죄책감, 갓 태여난 딸애에 대한 그리움과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떠났다.

고령의 부모가 간신히 착한 어린 소녀를 양육하고 있다.

진복조가 떠난후 아내는 어쩔수 없이 겨우 한살 남짓한 딸애를 진복조의 부모에게 맡기고 재가했다. 두 노인은 네 딸의 도움으로 간신히 손녀를 키우고 있다. 현재 딸애는 이미 여덟살이 됐고 3학년이며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가는 전부 희망이다.

딸애는 할아버지 할머기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말 잘 듣고 품행이 단정하고 공부 잘하는 좋은 애로 자라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고모네집 벽에는 그가 받은 상장들이 환히 걸려있다.

그러나 애는 필경은 애다. 아무리 참하다 해도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할머니가 부모를 대신하여 그를 꾸지람하고 교육한다. 애한테 야단을 칠때마다 할머니는 저도 모르게 속이 쓰려 눈물을 흘리군했다. 이때 손녀는 조용히 할머니 곁으로 다가와 할머니의 어깨를 다독였다. "할머니 울지 마세요, 할머니가 울면 저도 따라 울게 돼요/”.
딸애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엄마, 아빠가 어디로 갔나?/” 물었을 때 노인들은 네 아빠는 세상떴고 엄마는 재가했다 말할 수 밖게 없었다.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어린애에게 당분간은 아빠가 왜 세상떴는지 사실대로 알려줄 수 없지만 장차 크면 적당한 시기에 사실대로 말해주리라 했다.

공부 잘해 늘 선생님의 칭찬을 받는 손녀앞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감히 미래를 약속하지 못한다. 생활형편이 전에 비해 말이 아니어서 먹고 사는 기본생활만 보장해 줄뿐 손녀가 자라면서 날로 늘어나는 학비 등은 그들이 언제까지나 부담 가능할지 걱정중이다.

진복조부친의 소개에 따르면 그들 세 식구는 지금 큰 딸집에 살고 있고 손녀 학비 등은 그들과 네 딸이 공동으로 부담하고 있다. 그러나 제살림을 하고 있는 딸들이 손녀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이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는 지금 큰 딸이 경영하는 공장일을 도와주고 생활비를 벌고 있으며 생활형편은 진복조가 법륜공에 심취되기 전과는 대비도 안된다 했다.

전에 진복조의 부친은 복장도매점을 경영했고 수입도 좋았다. 그러다 법륜공에 심취된 진복조를 정상인으로 만들기 위해 장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진복조를 지켰다. 진복조가 그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후 이웃들 볼 면목이 없는 그들은 번화거리에 자리잡은 집을 팔고 그곳을 떠났다.

진복조가 떠난후 가족이 흩어지고 딸은 아버지 사랑를 잃고 부모들은 자식을 잃은 아픔과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특대 연쇄 살인사건이 8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더는 그를 질책하지 않는다. 그 역시 법륜공의 해독을 깊이 입은 피해자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법륜공은 그를 통해 무고한 사람들에게 마수를 뻗쳤던 것이다. 그 자신도 법륜공 수렁에 빠져 저지른 이성을 잃은 행위때문에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를 치렀다.

진복조 투독 살인사건이 이미 8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에게 울려주는 경보음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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