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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원치료를 통해서야 겨우 목숨 건졌다

2011-09-08 기원 하 다:Kaiwind Auteur:황연복(구술) 포선문(정리)

2004년 퇴원직후의 황연복

황연복(黄燕福), 남, 73세, 복건성 선유(仙游)현 리성(鲤城)가도 십자(十字) 단지에 살고 있다. 퇴직전의 나는 복건성 선유현 제2경공업회사에 근무했고 아내 정원영(郑元英)도 선유현 제2경공업 판지공장에 근무했다. 부부가 모두 현 제2경공업단체기업에서 일했지만 기업수익이 좋은 편이어서 우리들의 수입도 온정적이었다. 아들 며느리는 90년대초에 결혼을 했고 각자 직업을 갖고 있으며 우리 일가는 아무 근심걱정 없이 오붓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1997년 5월, 나는 퇴직후 할일없이 집에서 보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위병이 자주 발작했고 치료를 받았으나 호전이 없었다. 법륜공을 수련하면 건강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고 병을 치료할 수 있으며“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병이 치유될 수 있고 원만할 수 있고 성선성불(成仙成佛)할 수 있다”는 등 소개를 듣고 법륜공수련을 시작했다. 모든 일에 착실히 노력하는 성격인 나는 당연히 법륜공학습에도 아주 열심했다. 퇴직후 한가했으므로 쯤만 나면 가부좌 연공을 했고 <전법륜> 등 법륜공서적을 사서 반복으로 읽고 연공과 법 공부에 주력했다. 나는 또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 정원영도 수련에 동원시켰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동수로 됐다.

이홍지 사부가 <전법륜>에서 말한 “병과 모든 불행이 생기는 근본원인은 업력이다”, “생노병사(生老病死)는 모두 업력윤보(轮报)이다”를 믿고 1997년 하반년 법륜공을 수련하면서 부터 나는 약 치료를 거부했고 위가 아플때마다 연공으로 주의력을 분산시켰다. 아들 며느리가 수차 나를 권했으나 나는 듣지 않았고 그들은 위염으로 인한 위산과다인 나를 위해 위를 튼튼히 하고 위산을 억제하는 메뉴를 골라 나의 음식생활을 조절해줬다. 이런 생활이 1999년 상반년까지 지속됐고 나의 위병은 크게 호전은 없었지만 그나마  별 지장이 없이 유지됐다.

1999년 7월 정부에서 법륜공조직을 취체했다. 아들과 며느리가 거듭 우리부부를 더는 법륜공을 연공하지 말라 권했으나 우리는 말로는 연공을 안한다 해놓고는 숨어서 계속 연공을 견지했다.

어느덧 2001년 5월이 됐고 중국정부에서 법륜공을 취체한지도 이미 1년 10개월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법륜공수련에 심취되어 사부의 소업론을 믿고 건강이 좋지 않아도 약과 치료를 거부했다. 그해 5월 복건성 보전(莆田)시 법륜공중견들의 부추김으로 나는 기타 인원들과 함께 북경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홍법/’을 할 계획으로 복주기차역을 떠났다. 기차가 하남성 정주까지 왔을때 신분증 검사과정에서 우리 일행의 행적이 경찰의 의심을 샀고 결국 우리는 복건성 선유현 고향으로 송환됐다. 

2002년 하반년 장기적으로 생활이 불규칙적이고 연공으로 인한 피곤이 몰려 위병이 자주 발작했다. 그러나 나는 병통을 참고 수련소업을 견지했다.  2003년 구정후 나의 건강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얼굴에 병색이 완연했으며 연공을 오래한 날은 일어서기도 힘들었다. 이때에도 나는 여전히 사부가 말한 “약을 먹는다는 것은 업력을 쌓는 것이고 최종 자신을 철저히 파멸시키는 것이므로 수련을 해야 만 소업할 수 있다”를 믿고 고집스레 연공소업을 고수했다.

2004년 5월, 날로 악화되는 내 건강상태를 걱정한 아들 며느리가 재차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보자 제의했다. 그때 나는 이홍지의 소업론을 믿을 때라 자신의 건강이 좋지 못한 원인이 업력이 너무 중하기 때문이고 계속해서 수련을 열심히 하면 층차를 제고할 수 있고 업력을 없앨 수 있다 믿고 약을 거부하고 병원검진을 거부했다. 아들 며느리는 고집부리는 나를 강행으로 병원으로 이송했다.

검사 결과 위암이었다. 병원에서는 다행히 증상이 말기까지 이르지 않았다며 당장 입원수술을 제의했다. 이 고비에도 나는 고집스레 사부가 말한 “법륜공을 연공하는 사람은 초상적인 사람이다”, “그 병은 함부로 다쳐서는 안된다”, “오직 법륜공을 수련해야만 소업할 수 있다” 등을 믿고 입원치료를 한사코 거절했다.

아직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아들은 “연공하면 몸을 건강히 하고 병을 치유할 수 있다 했지만 지금 이 정도로 중한데 왜 아직도 과학을 믿지 못하는가? 법륜공은 아빠의 건강을 해치고 우리 온 가정을 못살게 군다”했고 며느리도 울며 병원에 남아 입원치료를 받자 빌었다. 의사도 현대의학 지식으로 나를 설복했다. 최종 살아야겠다는 욕망에서 나는 소업을 포기하고 과학치료를 받기로 결심했다. 의사의 높은 의술과 가족들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으로 여러차의 화학약물 치료를 거쳐 나의 병은 통제됐고 나는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이미 몇 년이 지난일이지만 아직까지 생각만 해도 무섭게 느껴진다. 만약 그때 내가 법륜공의 소업사설을 믿고 치료를 거부하고 위암 수술치료를 받지 않았다면 이 내 늙은 목숨은 오늘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몇년간 나는 약물치료를 받은 덕에 체육활동에도 참가할 수 있고 건강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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