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매
나의 이름은 주사매(朱四妹), 하남성 학벽(鹤壁)시 기빈(淇滨)구 금도(金都) 주택단지에 살고 있다. 근래 나는 병마에 시달려 반죽음이 되고 사선에서 헤맨다. 이 모든 것이 다 내가 법륜공을 수련했기 때문이며 소업때문에 나는 무거운 대가를 치렀다.
나는 우연하게 법륜공을 수련하게 됐다. 1998년 봄 내가 아직 고향에 있을 때다. 사람들이 마을어귀에 모여 법륜공을 수련했고 법륜공이 백병통치라는 말에 허리와 다리 통증이 있는 나는 아무 생각없이 수련대오에 가입했다. 일정한 기간의 규칙적인 운동을 거쳐 다리와 허리 통증이 많이 나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때부터 나는 법륜공을 깊이 믿게 됐고 연공과 법공부에 더 열중하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연공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노인들이라 거의가 문맹이였다. 그러나 나는 어려서 몇년 사숙을 다닌 덕분에 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나를 연공장의 보도원으로 내 세우며 이홍지의 경문을 따라 읽을 수 있도록 리드해 달라 부탁했다. 나는 쾌히 대답했다. 이홍지는 수련인의 몸에서 나타나는 불편은 병이 아니라 소업이고 전생에 지은 죄므로 끊임없는 소업을 통해 체내의 흑색물질인 /‘업/’이 백색물질인 /‘덕/’으로 변하게 해야 만 한층 더 높은 층차로 수련될 수 있다 했다. 나는 이런 기이하고 황홀한 이론을 읽으며 신기했고 사부님이 이끄는 길로 가야겠다는 신심을 크게 가졌다.
이홍지의 소업설의 유혹에 넘어간 그날부터 나의 인생은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 한발자국 한발자국 심연으로 빠졌다. 내 나이에 이르면 건강에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기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제때에 병원에 가서 치료하고 약을 먹으면 얼마든지 병을 고치고 연년익수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홍지의 소업설을 믿고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처방에 따른 약을 거부한 탓으로 작은 병이 큰 병으로 번져 몸에 여러가지 병들이 하나하나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 나는 늘 어지럼증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계속해서 연공에만 몰두하고 병원검진을 받지 않았다. 후에 아이들이 억지로 내 혈압을 체크한 결과 고혈압임을 확인했고 나에게 강압약을 사줬다. 그러나 사부의 /‘법신보호/’를 받으며 법을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수련인인 내가 그 약을 먹을리 없었고 슬그머니 다 버렸다. 정 어지럼증이 심할때면 침대에 누워 소업을 했고 억지로 버티며 병원치료를 거부했다.
2004년부터 나는 음식에서도 문제가 생겼다는것을 발견했다. 기름기가 들어간걸 먹으면 자꾸 토하고 싶었다. 어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지 간에 문제 생기면 큰 일이라는 아들의 말에 나는 네가 뭘 알아서 그래, 사부가 나를 고비를 넘기라 하는건데 병원에 가면 공력을 키울 좋은 기회 한번 잃게 된다며 거절했다. 후에 알고 보니 그때 나는 간염이였다. 2006년후 더 심해져 간복수로 발전했기에 나는 치료에 제일 적합한 시기를 놓쳐버렸다.
2007년 나는 소변이 혼탁하고 체중이 갑자기 많이 줄어들고 걸을 때면 숨이 찼다. 당뇨병 징조인데도 나는 여전히 검진과 치료를 거부하고 /‘업이 업으로 굴러/’ 전세에 진 죄가 많아 몸에 업력이 너무 많이 쌓였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몸이 아플때면 <전법륜>을 읽고 연공하고 발정념하고 사부가 나를 도와 내 몸에 쌓인 업력을 제거해 주기를 환상하며 원만승천의 그날까지 내가 계속 수련할 수 있도록 보우해주기를 빌었다.
2009년 가을 어느날, 연공시작 준비중 내 혈압이 갑자기140-220까지 올라갔다. 두다리를 겹치고 앉으려다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응급 처치덕에 목숨을 건졌지만 이때부터 하반신 불수의 몸이 됐다.
2010년 10월초 배가 하도 아파 연며칠 밥도 먹지 못했고 대소변도 보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전신 곳곳에 병이 생긴후 나는 내가 넘어야 할 고비들을 다 넘겼다 생각했고 병원치료를 받으면 그후부터 사부의 법신이 나를 돕지 않을가봐 걱정됐고 더더욱 사부의 법신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데 악보를 당할가봐 두려웠다. 그렇게 되면 사부가 나를 만겁불존(万劫不存)의 심연으로 쫓아낼것은 당연하고 수련이 헛수고로 되고 만다. 버티다 못해 어느날 쓰러지는 바람에 병원으로 실려갔다. 진단 결과 급성 장경색증이였다. 4차나 약물관장을 해서야 치료됐다.
이번 입원동안에도 나는 병이 조금이라도 나으면 의사의 치료에 협조하지 않았다. 약을 주면 먹지 않고 침대밑에 숨기거나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고 링거를 걸면 간호사와 가족들이 부주의하는 틈을 타서 주사바늘을 뽑아버렸다. 의사도 별 방법이 없었고 자식들도 급한 나머지 눈물만 흘렸다. 딸은 “어머니, 어서 약을 드세요, 약을 드셔야 빨리 낫고 빨리 퇴원할 수 있잖아요, 약을 먹지 않으면 병이 날로 중해질수 밖게 없어요”라 했다. 자식들의 거듭 권고로 나는 겨우 의사의 치료에 협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치료가 쉽지 않았다. 현재까지 의료비용2만여원을 썼지만 여러가지 병이 다 치료되지 못했고 나는 아직도 병원에 누워있다. 연며칠 전후를 곰곰히 생각던 차 나는 이홍지의 소업설에 물음표를 달기 시작했다.
나는 사선에서 몸부림치는 사람이다. 온몸에 여러가지 병을 달고 있는 나에게는 살아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홍지의 소업설을 믿어서는 병을 치료할 수 없고 이홍지의 말을 믿으면 병이 점점 더 심해질 수 밖게 없다. 병을 치료하려면 그래도 병원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