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31 나의 이름은 왕수(汪秀), 여, 57세, 호북성 조양(枣阳)시 사람, 지금 조양시 북성(北城)판사처 남원(南园)주민위원회 저소득층 공공임대주택 302실에 살고 있다. 전에 나는 행복한 가정주부였다. 시 중점 중학교에 다니는 귀여운 딸과 일용품 판매로 우리 생활을 지켜주는 든든한 남편, 우리 일가는 남들의 부러움속에서 걱정없는 나날을 보냈다.
견관절주위염을 앓고 있던 나는 관절통이 발작될때마다 통증으로 집안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1998년 7월 법륜공이 몸을 건강히 하고 병을 없앤다는 사촌 언니의 말을 믿고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약 1주일간 규칙적으로 연공을 견지한 결과 효과가 좋은것 같은 느낌에 법륜대법을 연공하는 사람들의 말과 같이 좋은 점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후부터 나는 매일 연공에 열심했고 이홍지의 초상화를 구입해서 벽에 걸어놓고 시간에 맞춰 사부님께 분향하고 절했다. 1999년 7월 정부에서 법륜공을 단속한 후에도 나는 계속 숨어서 몇년간 연공을 견지했고 여러차례 진상을 알리려 나가고 공우들이 조직하는 활동에도 참가했다.
2006년 딸이 대학입시 시험에서 낙방, 워낙 승부심이 강한 딸한테는 너무나 큰 타격이였다. 집에 갇혀 우울해 있는 딸한테 나는 <전법륜>을 보여주며 /‘집착심/’을 버리고 /‘명, 리, 정/’을 내려놓으라 계도했다. 나의 영향으로 딸도 점점 법륜대법에 심취됐다. 우리들의 연공에 반감을 갖는 남편에게 우리 모녀는 우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온 가정의 복보를 위해 연공한다 그럴듯하게 반박했다. 이렇게 남편이 반대하건 말건 딸은 나를 따라 법륜대법을 함께 연공했다.
점차 나는 딸의 거동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사부님의 법신이 자기 뒤에 있다 하거나 무섭다고 책상밑으로 기여들어가는가 하면 “연공할게요, 곧 연공할게요!”를 곱씹다도 법륜공경문을 중얼중얼 외우기도 했다. 그때 나는 딸의 업력이 너무 커서 혹은 연공때문에 /‘마(魔)/’의 교란을 당했다 믿고 그를 향해 /‘발정념/’을 하고 사부님께 우리가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보우해 주기를 빌었다.
딸한테서 이상한 기미를 눈치챈 남편이 딸을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정신질환 환자라는 의사의 확진이 내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딸이 병중이라 믿지 않고 연공에 더 전념함으로써 딸을 대신하여/‘소업/’하려 들었다. 하루빨리 층차를 제고하고 원만하기 위해 나는 법을 학습하고 더더욱 연공에 고심했다. 나 역시 허황한 세계로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었던 것이다/…/…
2006년 10월 17일, 이날도 때가 되자 우리는 문을 닫아 걸고 침대에 가부좌하고 앉아 연공을 시작했고 잠시후 몽환의 경지에 빠졌다. 막 날것만 같은데 날아 오를 수 없고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나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가는데 사부님이 자꾸 나를 부르는것만 같았다. 자신이 신(神)이 되고 불(佛)이 되는 시각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바보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부님이 하늘 끝 저멀리에서 나를 향해 손짓하는것 같았고 저절로도 붕붕 뜰것만 같았다. 원만 비승의 시각이 곧 닥쳐왔구나,나는 곧 신이 되고 백일비승할 수 있게 됐구나! 얼빠진 나는 부랴부랴 베란다로 달려가 베란다 란간을 가로타고 “법륜대법은 좋다!”를 높이 외치고 나서 3층에서 훌쩍 뛰여내렸다. 그 다음은 아무것도 몰랐다. 다행히 남편과 이웃들에서 즉시 나를 조양시 제1인민병원으로 싣고 가 응급치료 및15여일간의 치료를 받게 해서야 나는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하반신 마비로 평생 걸음을 걸을 수 없게 돼 버렸다.
휠체어에 앉아 정신질환 환자인 딸과 초췌해진 남편을 보는 나의 마음은 이루다 형언할 수 없었다. 이때에야 나는 내가 정말로 큰 죄를 졌구나를 깨닫게 됐다. 딸을 생각할때마다 나는 후회가 막심하다. 연공결과 병치료 대신 반신불수로, 그리고 딸까지 정신질환 환자로 만들다니, 법륜공이야 말로 사람을 해쳐도 너무 해친다.
휠체어에 앉은 왕수
(Kaiwind.com, 2010-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