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빙(曾冰), 남, 1967년 11월생, 남녕(南宁)시 흥녕(兴宁)구 사람, 최종학력 대졸, 전에 남녕시 공장 기술노동자로 일했다. 80년대 대학생인 그는 동년배에서 아주 출중했다. 대학졸업 후 남들 부러워하는 국영기업에 취직하고 명실공히 하늘의 총아였다.
그런데 호황도 잠깐, 1996년 법륜공을 접촉하기 시작한 후 증빙의 인생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빗나가고 사교의 정신적인 통제하에 결국 범죄를 저질러 하늘의 총아가 죄수로 전락했다.
기공을 연마하다 “주불(主佛)”을 만남
전에 증빙이 말만 나오면 부모들은 언제나 긍지감에 가슴뿌듯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리하며 공부 열심히 해 학업이 순풍에 돛을 단 듯 순조로워 이웃에서도 그를 만나면 번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웃 집 애들의 본보기였다. 대학을 나온 후 증빙은 또 국영기업에 취직해 공장에서 기술 중견으로 양성되고 부분 제품 디자인 담당자로 상사의 중용을 받았다. 학력이 높을 뿐만 아니라 헌신적으로 열심히 일해 전도 유망한 청년이라고 공장 내에서도 칭찬이 자자했다. 인재된 아들을 보며 부모는 더없이 대견스럽고 흐뭇했다.
80년대 중반 국내에 기공붐이 한창 일 때 그는 영화 “소림사(少林寺)”를 보고 기공을 무척 숭배하고 기공 책에 빠지고 기공학습반에 참가했다. 기공이 몸을 튼튼히 할뿐만 아니라 병을 치료해 사람을 구한다고 배우면서 그는 기공을 수련해서 일어난 “신통력”의 소문을 듣고 더 높은 층차에 달하는 기공의 경지를 동경했다. 몇 가지 기공을 배우고 나서부터 한계를 느껴 돌파할 수 없다고 생각던 차 때마침 동생 증군(曾军)이 법륜공을 추천하며 법륜공의 종종 신기함를 이야기했다. 그 말에 증빙은 법륜공을“동경”하기 시작했다.
실은 증빙의 동생 증군도 기공 애호가로 1992년에 북경에서 열린 기공학습반 때 이홍지를 알게 되었다. 후에 이홍지가 광주 기공강습반 강의를 수강해 보라고 제안하는 편지를 증군에게 보내왔다. 체계적으로 기공 수련 관련 문제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증군이 광주학습반에서 생사 해탈에 관한 인생문제를 문의했다. 이홍지는 법륜공을 잘 수련하면 병을 제거하고 몸을 튼튼히 하고 높은 층차로 수련하면 원만하여 천국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며 “꿈에 나타나” 법을 전하는“신통력”을 보여줬다. 동생의 이런 이야기에 솔깃해 난 증빙은 더더욱 이홍지의 능력을 믿었다.
법륜공에 중독, 직장일에 무책임, 부모에 무관심
증빙은 1996년초부터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하여 규칙적으로 연마하기 시작했는데 몸이 가벼워지고 씩씩해졌다는 느낌이 들어 연공에 더욱 적극적으로 투입했다. 법륜공을 깊이 수련할수록 이홍지는 기공은 몸만 건강하게 할 뿐 높은 층차로 수련하려면 결국은 법을 공부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증빙은 이홍지의 말대로 “전법륜” 등 사교 서적을 진귀한 보물로 여기고 날마다 반복 읽으며 법을 학습했다.
증빙은 전에 취미생활이 별로 없어 여가 시간이면 친구들과 트럼프를 많이 쳤는데 법을 학습하면서부터 그 취미마저도 잃고 틈만 나면 대법 공부 밖에 몰랐다. “기공을 부차적으로 하고 법 학습을 위주로 한다”, 이홍지의 설법을 반복으로 듣다보니 증빙에게 차츰 일련의 기의한 광경이 보이고 마치 “신통력”이라도 생긴 것 같아 자신의 수련에 새로운 비약이 생겼다고 더욱 굳게 믿었다.
기공연마 기초가 있고 기공을 잘하고 법 공부에도 성과 있는데다 친동생이 이홍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므로 그 지역의 “법륜공” 수련자들 중에서 신망이 높아 그에게 법 학습 교류 요청이 자주 들어오고 그럴수록 성취감이 커졌다. 그 이후로 증빙은 직장일에 무관심하고 부모에게도 소홀하고 일편단심 생활의 중심을 법륜공 수련에 뒀다.
사교를 전파하여 옥살이
1999년 국가에서 법에 따라 법륜공을 금지하고 각 주류 매체를 통해 법륜공의 사악한 본질이 폭로되고 법륜공 수령생이 법륜공을 수련하다가 정신 이상에 걸리고 약을 먹지 않아 병 상태가 악화되어 사망한 사례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이런 끔찍한 사례를 보면서도 증빙은 시종 믿으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홍지가 법륜공 수련자에게 “마”가 있는데 대법을 방해한다 하고 학원들에게 북경에 가서 “진상을 알리라”고 선동하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것이 원만의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현지 법륜공 핵심인 증빙은 직장을 포기하고 곳곳을 전전하며 법륜공 수련생을 긁어 모아 함께 “걸어 나오고”“진상을 말하라”고 선동했다. 직장 상사와 주변 친구들이 아무리 권유해도 듣지를 않았다. 법을 위반하여 큰 사고라도 칠까봐 부모들이 걱정하자 “내가 하늘의 법을 지키는데 지상의 법이 나를 어찌할 수 있겠는가?”며 정부와 “진상을 말하는” 것은 좋은 일이므로 별일 없을 것이라고 어머니를 위로했다.
2000년부터 2002년 사이에 하루 빨리 원만하기 위해 그는 “홍법”에 더 박차를 가했다. 아예 출근을 그만두고 전문직 법륜공 홍보원을 담당했다. 그는 법륜공 사교 사이터 “명혜망”에서 소위 “진상을 말하는” 숱한 자료를 다운받아 복사한 후 남녕시내 곳곳에 배포하고 전국 각지에 우편으로 발송했다.
2002년 11월, 법륜공 선전물을 제작, 배포한 혐의로 공안기관에 붙잡혀 법적 처벌을 받았다.
번연히 깨닫고 반사교 자원봉사자로 됨
2009년 증빙은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기 시작했다: 무수한 법신이 있다는 이홍지가 어째서 병 든 제자를 보호하지 못하는가? 무료로 법을 전수한다는 이홍지가 어째서 몰래 돈을 받는가? 이홍지가 어째서 수련생을 선동해 정부기관을 공격하게 하는가/…/…
이런 문제를 갖고 자료를 수집하고 법륜공 수련자들이 천안문광장에서 분신 자살하는 녹화를 보았다. 그리고 “전법륜” 등 사교 서적을 뒤져 자가당착 관점들을 발견하면서 증빙은 번연히 깨달았다. 중학생마저 다 아는 물리지식을 이홍지가 틀리게 말했는데 내가 그걸 보물로 여기고 14년의 시간을 헛되게 보냈다! 사교는 진짜 음험하고 독하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증빙은 자신이 직접 체험한 구체적 사례로 아직도 사교의 정신적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 자신의 아픈 교훈을 실패의 경험으로 삼아 아직 법륜공 수련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이 인생 길을 잘 가도록 돕겠다.”
(책임편집: 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