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제시: 2012년 9월 3일,통일교 교주 문선명이 한국에서 병사했다. 익일 영국 “데일리 미러(Daily Mirror)”에 Rachael Bletchly 베트랑 기자의 기사 한편이 게재되었다. 기사는 문선명 일생의 악행을 회고하고 문선명이 신도들을 세뇌시키고 재물 사기 등 수단으로 방대한 상업제국을 건립해 자신과 그의 자녀들이 흥청망청 누리게 했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영국 정부에서 수차 문선명을 추방하고 입국을 금지하고 영국 주류 언론에서도 문선명을 가정 파괴범이라고 고소하고 문선명과 그의 통일교를 보이콧 한 내용을 특별히 언급했다. 아래는 개풍망에서 그 전문을 편역한 내용이다.
향년 92세 나이로 사망한 문선명이 신도들을 세뇌시키고 그들의 재물을 사기했다고 고소되었다.
합동결혼식을 주례하는 문선명
불관을 쓰고 축 늘어진 불의를 입은 문선명이 합동결혼식장에서 수천 쌍의 신혼부부에게 오색 종이를 뿌리는 장면이 우스꽝스럽다.
이 통일교 창시자가 1970년 대에 서양 신문의 톱 기사에 오르는 한편 통일교 성원으로 강제추방을 당하기도 했다.
구세주로 자처한 문선명은 예수가 자신을 선택하고 그에게 서로 모르는 사람들간의 국제 결혼을 통해 “순결”한 가정을 창조해 세상의 사명을 완성하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인들은 이 평화적 기대가 그의 사교활동을 덮어 감추기 위한 행각임을 점차 의식하게 되고 이 사교가 취약한 젊은이들을 착취하고 신도들을 세뇌시키며 그들의 재물을 사기한다고 고소했다.
오만 방자한 문선명이 북조선 지도자와 미국 대통령의 귀빈 대접을 받는 한편 신문사, TV방송국, 군수공장 등을 포함한 방대한 상업제국을 건립했다.
어제 92세 고령의 “천하 제왕”이 한국에서 사망했다. 이로 인해 통일교의 미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찼다.
통일교가 전세계 180개 국에 신도 700만 명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현재 약 10만 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문형진이 문선명의 막내 아들이고 그의 계승자다. 지금 그는 그의 형제 자매, 그리고 어머니 한학자(韩鹤子)와 가족 재산을 둘러싼 쟁탈전에 임했다.
1920년, 문선명이 북조선의 한 농민가정에서 출생.
16살 되던 해 산중턱에서 예수를 만나 후계자로 선정되었다고 자칭.
후에 또 하느님, 불타, 메시아와 대화했다고 공언.
도꾜에서 공학 공부를 끝낸 후 설교활동을 하다 북조선 정권에 의해 체포.
조선전쟁 때 고향으로 도주해 첫 아내와 결혼.
교회를 창설하기 위해 임신중인 아내 곁을 떠남.
그가 창설한 첫 교회가 “광해교회(广海教会)”임.
청년 문선명
문선명이 인류는 반드시 성애를 통해 정화되어야 한다고 믿고 문선명과 성관계를 가지면 그들 심신을 깨끗이 청결해 준다고 주장했다고 이른 시기 구성원이 회고했다.
이와 관련해 문선명은 부인했다.
1954년, 문선명이 서울에서 통일교를 설립했는데 이는 기독교, 유교, 샤머니즘, 그리고 반공(反共)이데올로기 형태를 규합하여 만든 사교다. 그는 결혼을 통해 완벽한 가정을 창조하고 모든 종교를 통일한다고 주장했다.
40살 되던 해 문선명이 17살 신도 한학자와 결혼하고 인류의 참 부모로 불렸다.
합동결혼식을 통해 결혼한 부부들은 문선명이 직접 사진을 보고 짝을 맺어준 것이다.
이로부터 괴이한 결합이 이뤄졌는데 예를 들어 71살 아프리카 천주교 주교가 43살 한국 침술사와 결혼했다.
1988년 문선명이 서울 올림픽경기장에서 6516쌍의 통일 복장을 한 부부 합동결혼식을 거행하여 기네스북에 올랐다.
신혼 통일교 신도는 40일 내에 동침을 금지함으로써 그들의 결혼이 더 높은 경지에서 맺어졌음을 입증한다. 그리고 그들은 반드시 3일 동안 지속되는 의식에서 교주가 규정한 섹스 자세로 그들의 결혼을 완성해야 한다.
문선명의 교의가 서양 세계에 전파된 후 부유층 자제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행했다.
문선명이 세계를 순회하면서 설교한 후 신도 수량이 급증했다, 통일교의 “애심폭탄”이 사람들을 입교시키는 일종의 유혹 수단인데 고독하게 살던 사람을 사랑으로 가득 찬 단체의 일원으로 스스로 느끼게 설계되어 그들이 가족을 멀리하고 그들 자신의 재산을 바치게 만든다.
이는 부분 가장들의 분노를 야기시켜 문선명이 신도들을 세뇌시킨다고 고소했다.
그 후 신도가 사교에 납치되거나 세뇌 당했다는 보고가 잇따라 등장했다.
문선명은 세뇌 고소에 반격해 나섰다. 1978년 그의 단기 체류 연장을 거부하는 영국 내무부의 결정에 항소를 제기했는데 승소했다.
같은 해 공당의원 폴 로스가 신문에 통일교의 명예를 크게 손상시키는 글을 발표, 통일교가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난교를 제창하며 신도를 착취하고 대중을 기만한다고 고소했다.
문선명과 아내
1981년 문선명이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졌다.“데일리 메일”이 문선명을 가정 파괴범이라고 고소하고 그가 “데일리 메일”를 비방죄로 상고했다. 하지만 기각 당하고 최고 법원에서 75만 파운드 소송비용을 통일교가 부담토록 했다.
문선명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이 가장 큰 종교 수령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전에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이 내 몸에 있고 나는 하느님의 화신이다.”
“내 손에 세계가 있고 나의 정복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제국에는 “워싱턴 타임스”가 포함된다.
열광적인 신도가 자원봉사자로 파견되어 모금하느라 분주할 때 문선명은 뉴욕의 호화 저택에서 살고 전문 기사가 운전해주고 호화 유람선에서 휴가를 즐긴다. 2008년, 그의 개인 자산이6.25억 파운드로 추계되었다.
문선명은 극우익 지도자에게 아부했다.
그는 1974년 닉슨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 워싱턴에서 기도 시위를 조직했다.
그리고 레이건, 부시 대통령 부자도 이 “구세주”를 좋다고 여기고 문선명은 칠레 전 독재자 피노체트 장군과도 가깝게 지냈다.
1991년, 문선명은 자신의 일관적인 반공 교의에도 불구하고 북조선 지도자 김정일과 무역을 했다.
문선명은 또한 엘비스 프레슬리를 설득시켜 함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영화를 찍으려 시도했었다.
1984년 문선명이 탈세 혐의로 미국에서 18개월 형을 받았다. 이로 인해 그의 명성이 뚝 떨어졌다.
그 후 통일교는 다시는 이 스캔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도 수량이 대폭 줄어들었다.
90년대에 일부 보고서는 통일교가 한국의 가난한 사람을 해외로 실어 통일교 합동결혼식 인원수 충당에 이용했다고 적발했다.
“완벽한 가정” 또한 곤경에 빠졌다. 문선명과 다른 여성 사이에 스캔들이 터지고 그의 자녀들 사치 생활 추문이 퍼졌다.
1998년 그의 장남 문효진이 심한 마약 중독자로 폭로되고 45살 되던 해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1999년 그의 다른 아들 문영진이 21살 나이에 자살로 사망했다.
문선명 본인은 1995년 영국 내무부 장관 마이클 하워드에 의해 입국 금지를 당했다. 후에 최고 법원에서 이 결정이 위법이라는 판정을 내리긴 했지만,
그 후 문선명이 교회를 브라질의 외딴 지역으로 옮기고 신도 수량이 갈수록 적어지면서 그의 행위도 갈수록 괴이해졌다.
2004년, 문선명은 워싱턴에서 온 한 방문객에게 역사 상의 모든 황제,
국왕, 대통령, 히틀러, 스탈린을 포함해서 우주에서 “문선명 목사가 인류의 구세주고 메시아고 돌아온 신이며 참 부모라”고 선언했다고 말했다.
2009년, 문선명이 동시에 세계 45000명을 위해 합동결혼식을 거행하고 주례했다.
이들과 그의 생존 자녀 11명이 그의 사망을 애도할 때 다른 사람들은 이 발광적인 통일교 신도를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이다.
원문 링크:
http://www.mirror.co.ukews/world-news/inside-the-sinister-moonie-cult-how-1301689
저자 배경: RACHAEL BLETCHLY은 30년 경력을 가진 베스트 기자고 테마 작가임. 상세한 내용은 http://www.mirror.co.uk/autho 참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