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11일, 중경시 팽수(彭水)현 전수(靛水)향 영풍(迎丰)촌의 여방무(黎邦武)가 사망했다. 그 해 나이 36살, 젊음이 한창인 그가 어떻게 처자와 부모를 남겨두고 이리 일찍이 떠나다니? 병마가 그의 목숨을 앗아 갔는가? 그렇다, 그렇지만은 않다. “죽지 않을 사람이 죽었다. 사교 /‘문도회/’가 그를 너무 일찍이 가게 만들었다.” 그의 말이 나올 때면 동네 사람들이 탄식하는 말이다.
영풍촌은 깊은 산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어 교통이 불편하고 폐쇄되어 현지 농민들은 세세 대대로 힘겹게 농사짓고 사는데 단순하면서도 순박하다. 여방무 일가도 예외가 아니다. 조상으로부터 그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고 여유롭지는 않지만 최저한 먹고 입을 것은 해결되어 청빈하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왔다. 그런데 달이 차고 이지러짐이 있고 사람에겐 화복 길흉이 있다시피 1996년에 여무방이 병을 앓으면서 이 가정은 옛날의 평온한 생활을 잃고 말았다.
1996년 8월 어느 날, 그날도 여방무는 여전과 다름없이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밭에 일하러 나갔다가 저녁 무렵에야 지친 몸을 끌고 들어와 저녁을 대강 먹고 일찍 자리에 누웠고 금새 잠이 들었다. 밤에 그는 “악귀”한테 쫓기는 꿈을 꿨는데 아무리 죽을 힘을 다해 달아나도 “악귀”을 벗어날 수 없었다/…/…놀라 꿈에서 소스라쳐 깬 그는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그 후 병을 앓았는데 온 몸이 무기력하고 기침이 끊기지 않았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병원에 가지 않고 현지에서 한약을 지어 몸조리를 했다. 1개월이 지나도 호전되지 않고 더 심해져 가슴 통증이 생기고 기침이 심한데 가끔 기침할 때 가래에 피가 섞여 나왔다. 식구들이 놀라 여기저기서 돈을 마련해 그를 현 병원에 보내 검진을 받은 결과 폐결핵이라는 진단이 떨어졌다. 의사가 약을 떼주면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지금 폐결핵이 큰 병이 아니니 정규적인 치료를 받고 몸조리를 꾸준히 하고 휴식을 잘 취하면 얼마든지 완치된다고 말했다.
한 동안의 치료를 거쳐 여방무의 병이 호전되긴 했지만 건장한 노동력을 상실한데다 생선, 육류, 우유 등 영양식품의 가격이 만만치 않아 원래 구차한 가정에 큰 부담이 되어 가정살림이 더 어려워졌다. 이런 곤경에 처한 여방무는 속으로 자신이 밉기도 하고 조바심이 났다. 병에 걸려 가정의 발목을 잡는 자신이 미웠고 또한 눈앞의 곤경에서 벗어날 뾰족한 수가 없어 조급하기만 했다. 매일 음울해 시답지 않는 사소한 일을 갖고 아내와 부모와 다퉈 가정에 바람 잘 날 없었다. 옥신각신하는 생활이 몇 개월 지나 설을 앞둔 어느날 여방무는 뜻밖의 “놀라움과 기쁨”을 접하면서 삶에 대한 희망을 되찾았다.
그 해 구정도 여느 때나 다름없이 도회지에 돈 벌이 나갔던 마을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설을 지내려고 속속 돌아왔다. 여방무도 자주 찾아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옛날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날 마을 길을 걷다가 여럿이 모여 수상하게 수군대기에 호기심에 끌려 그 속에 끼어 들었다. 그들이 수상한 “삼속 그리스도” 교회를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이 교에 가입하면 병을 앓아도 치료받지 않고도 병이 저절로 낫고 쌀 한 근을 장정 다섯 명이 하루 먹어도 충분하다고 했다. 이런 황당한 말에 여방무의 귀가 솔깃했다. 어떻게 하면 폐결핵의 곤경에서 벗어날까를 고민 중이던 그는 열성적으로 한담에 가입하고 자신의 상황을 소개했다. 그들은 즉시 그더러 “삼속 그리스도”에 가입하라고 권하고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 “우연한 만남이 기연보다 낫다”고 고취했다. 여방무는 그들에게 완전히 포섭되어 “삼속 그리스도” 조직에 가입했다. 이때부터 사흘이 멀다 하게 “삼속 그리스도” 신도가 그를 찾아오고 “삼속 그리스도” 책을 가져다 주고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여방무의 집이 차츰 현지 “삼속 그리스도” 신도들의 모임 장소로 변했다.
1998년 여방무의 결핵병이 생각지 않게 “호전”(가족에 따르면 실은 정신작용)되었다. 기뻐서 어쩔 줄 모른 그는 “삼속 그리스도”가 선양하는 “기도로 병 치유한다”는 말을 깊이 믿고 더욱 “삼속 그리스도” 조직의 각종 활동에 취하다시피 깊이 빠졌다.
그런데 병의 호전은 “가상”에 불과하고 일시적 현상이었다. 2000년에 이르러 여방무의 결핵병이 악화되기 시작하여 밤새 기침이 멎지 않고 간혹 혈담이 다량 각혈로 이어졌다. 조급해 난 가족들이 병원 치료를 극력 권했지만 그는 경건하게 기도하면 “신”의 비호를 받아 만병이 제거되고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다며 고집을 부렸다. 이 때문에 가족들과 자주 치열한 입씨름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그의 집에 기도하러 오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고 짙은 “기도” 분위기속에서 그는 “신”의 보살핌을 받는 편안한 여운을 느꼈다.
2002년, 병이 날로 악화되면서 그의 생명이 막바지에 이르러 여윌 대로 여위어 뼈가 앙상하고 바람에도 날려갈 것 같았다. 나무 막대기를 지팡이로 짚고 허약한 몸으로 마을 어귀의 황갈나무 아래 앉아 휑한 눈길로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여방무는 경건하게 뭘 기도하는 것 같았지만 사람들은 그가 뭘 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초 가을에 들어선 후 여방무는 임종에 임했다.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말도 못하고 오른 손으로 공중에 “십자” 모양을 그리며 왼 손으로 벽을 가리켰다. 아내가 그의 뜻을 알아 차린 듯 즉각 벽에 걸려있는 “삼속 그리스도” 십자기를 그의 손에 쥐여주려 했다. 바로 이때 그가 갑자기 안간힘을 다해 그 기를 잡아 채더니 분연히 땅에 버리고 처참한 쓴 웃음을 지으며 숨을 거두었다/…/…
(책임편집: 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