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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신교(父神教)”의 전생현세

2017-04-14 기원 하 다:개풍망 Auteur:유순순

수 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왜서 가정, 책임과 자존을 포기하고 예의와 염치를 포기하면서 불귀의 길을 선택했는가? 400여 만 위안의 재물을 수탈, 전국 12개 성, 20여 개 도시에 신도가 널려있다. 빚 독촉을 피해 “살 길을 찾아 떠난” 일반인이 어떻게 한걸음 한걸음 “부신교”의 지고무상의 “왕”으로 신화되었는가? 아래에 허황하고 음란한 “부신교”를 파헤쳐보기로 하자.

1. 사건의 기인

2010년 12월 10일, 안휘성 태화(太和)현의 경찰이 초구(肖口)진, 대신(大新)진 군중들로부터 가족이 집에서 “신”을 믿어 가출 후 행방불명이라는 제보를 연이어 입수했다. 즉각 수사에 나선 경찰이 생각지 않게 이를 계기로 놀라운 대사건을 적발해 내고 “부신교”라는 사교 조직을 들춰냈다.

조사에 따르면 2010년 12월 8일, 새로 생긴 “부신교”라는 사교를 신봉하는 태화현 대신, 초구, 호총(胡总) 등 향과 진에서 재난이 닥친다는 헛소문을 곧이 듣고 재난을 피해 하루 사이에 30명 넘는 남녀 신도들이 “방주에 승선”하려고 소리없이 집을 떠났다. 그들은 가산을 털어팔고 문을 닫아 잠그고 온 가족이 이사가기도 했다. 이런 거동에 현지인들이 불안에 떨고 헛소문이 무성했다. 심층 조사에서 경찰은 가출 인원이 계속 늘어나고 태화현과 인접한 임천(临泉)현, 계수(界首)시 등 이역에까지 퍼졌음을 발견했다. 8일 하루에 태화현, 임천현, 계수시에서 70여명이 집단 가출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유사 70여명 집단 가출이 처음이 아니다. 전에 산성성, 하남성, 섬서성 등 지역에서도 몇백 명 신도들이 재난이 닥친다는 소문에 고혹되어 “방주에 승선”하려고 집단 가출을 했다.

2010년 12월 31일, 태화현 경찰이 안휘성 태화현의 부분 가출인원이 호북성 단강구(丹江口)시에 집결한다는 소식을 입수하고 즉각 단강구시로 출동했다. 현지 경찰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성공적으로 소춘(苏春, 남, 43세, 안휘성 태화현 호총향 사람)등 혐의범 4명을 붙잡았다. 심문이 깊이 진행되면서 전국 여러 개 성, 시에 파급된 “부신교” 사교 조직의 단서가 드러났다.

2. 부신교의 기원

“부신교”는 “전능신”의 변형조직이다. 하지만 그 발단은 “호함파(呼喊派)”에서 시작된다.

① 이상수(李常受), 산동성 사람, 1960년대 미국에서 “호함파”를 창립했다.

② 조유산(赵维山), 흑룡강성 사람, “호함파”의 초대 “제자”, 1989년에 기타 중견들을 끌어모아 “교를 배반하고” “호함파”를 나와 별도의 사교조직 “동방번개”를 설립했다. “실제신”이라고도 하고 현재 “전능신”이라고 한다. 1999년 전후로 거슬러 올라가면 “전능신”조직 핵심들간에 이익 충돌이 생겨 내부에서 조유산을 본받아 종파 분화를 벌이고 전단을 만들어 배포했는데 이 전단을 “신화”라고 불렀다.

③ 득승(得胜), 학명 초보옥(肖宝玉), 남, 지금까지 신원미상, 소식에 따르면 이 득승이 바로 “전능신” 내부에서 분화되어 나온 사교 변형조직의 두목이다. 2004년, 2005년, 그가 산서성 사람과 함께 안휘성 태화에서 “부신교”를 전파했다. 그런데 득승이 2005년 7월 23일에 강서성의 어느 동굴에서 “전능신”조직에 피살되었다는 소문이 조직 내부에서 전해지고 있다.

④ 득지(得志), 성명 손지빈(孙志斌), 호북성 사람, 2008년 4월 9일의 전단에 이렇게 적었다. “득지는 속에 있는 영혼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제2의 신의 탄생을 환호하자.” 그 당시 이 조직은 자칭 “말후(末后) 그리스도” 혹은 “집단 그리스도”라고 했다. 2008년 8월 8일, 손지빈이 “화(话)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전단에서 가정 한계를 타파하고 감정의 한계를 타파하며 남녀의 한계를 타파해야 한다고 선양하고, 재난이 닥쳐오므로 현실의 가정을 떠나 “에덴 대가정”에 진입하라고 신도들에게 호소하고, 자신이 “왕”이고 사람들을 진정한 신을 믿는 길로 가게 한다고 선양했다. “부신교” 정식 설립을 상징한다.

3.“부신교”의 조직 시스템

“부신교”는 구조가 엄밀하고 등급이 엄격하다. 상급은 하급에게 “절대적 순종”을 요구하고, 상위(上线)가 하위(下线)를 연락 관리하고, 하위는 상위의 상황을 탐문해서는 안되고, 횡적 교류를 허용하지 않으며 성원들 사이에 서로 상대방의 진짜 신분, 가정, 직업 등 기본사항에 대한 탐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부신교”의 최고층이 “부신”인데 “왕”이라고 하고 영명(灵名)은 “승지(胜智)”이다. “부신” 신변인원을 “십이(十二)”라고 하는데 총 12명이다. 소식에 따르면 “십이”는 성경에서 유래, 예수 신변의 가장 신임하는 십이명을 말하며 십이대권자루라고 칭한다. “십이”는 직접 “왕”에게 책임지며 “신화”와 기타 지령을 전달한다. 그들이 관리하는 하급을 “이십사(二十四)”라고 하는데 총 24명이다. “이십사”는 상급 “십이”에게 책임지며 “사십팔(四十八)”에게 “신화”와 각종 지령을 전달하며 “사십팔”을 관리한다. “사십팔”은 관리층의 최하 직위이며 총 48명이다. 그들은 “이십사”의 관리하에 각지 교회를 관리하고 상급의 지령과 “신화”을 전달한다. 그리고 각지 교회는 관리층 서열에서 제외된다. 교회 내부 관리인원은 보통 4명으로 구성되고 총 책임자를 “장장(厂长)”이라 하고, 신성원을 포섭하는 사람을 “초공(招工)”이라 칭하고, 신성원을 상대로 관개(浇灌)하는 사람을 “선생(老师)”이라 칭하고, 소식 전달과 사무 관리 담당자를 “재테크(理财)”라고 칭한다.

4. “부신교”의 은밀한 활동

“부신교”의 성원은 조기에 모두 기독교나 “전능신”을 믿은 경력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 년령 구조는 중, 노년을 중심으로 하고, 성원들간에 혈연관계가 있는 경우가 많으며 부부, 부모, 자녀, 사촌과 육촌간, 동서, 내외종 친척 등이다. 성원은 초기에 농촌이 위주였으나 점차 도시로 퍼지고 연소화, 지식화로 발전하는 추세를 보이며 등급이 높은 자의 활동지역과 거주지는 주로 대, 중도시이다. 이 조직 내 말단 성원은 대부분이 식당, 여관, 슈퍼, 세차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서 흔히 두 사람이 오전 오후로 교대 근무하는 방식으로 출근하는 자들이여서 “신화를 먹고 마시는” 모임에 시간 내기 편리하다.

“부신교”는 비정기적인 집단 활동을 가진다. 신도들은 낮에 일하고 오후나 밤에 공원, 광장 등 공공장소에서, 조건 있는 신도들은 개인 집에서 2-3명씩 모여 서로 심득체험을 교류하는데 서면 자료를 작성하지 않고 반시간 정도 모임을 가진다. 성원들 간의 교류는 흔히 은어를 사용하며 실명을 사용하지 않고 전부 “영명(灵名)”으로 대체한다. 예를 들어 “왕”을 “승지(胜智)”로, “십이”를 각각 “승초(胜初)”, “득춘(得春)”, “승연(胜燕)”, “승청(胜青)”, “승리(胜犁)”, “승여(胜丽)”, “승의(胜毅)”, “승민(胜民)”, “승란(胜兰)”, “득성(得成)”, “승선(胜善)”, “승심(胜寻)” 등으로 칭한다. 그리고 하급이 절대 상급을 탐문해서는 안되고 동급 사이에도 서로 상대방을 탐문해서는 안된다. 일부 활동도 은어를 사용하는데 예를 들어 “교통(交通)”은 모임을 말하고 “아빠”는 천부, “식량”은 자료와 노래, “환경”은 문제, “커브 돌다”는 집회, “대오 수리”는 때림과 욕설, “실행(实行)”은 성생활, “입원”은 붙잡혔다는 뜻이다.

5. “부신교”의 현실적 폐해

첫째, 혈육의 정을 거부하고 가정을 파탄시킨다. “아들 딸에게 미안하다, 엄마로서의 책임을 지지 못했다. 남편에게 미안하다. 그의 곁을 오래토록 떠나 아내로서의 의무를 지지 못했다. 가정에 미안하다/…/…” 호북성 양양(襄阳)에서 활동하는 “부신교” 중견 고효평(高晓萍)이 경찰에 붙잡힌 후 울며 말했다. 수 백명의 신도들과 마친가지로 “나가” “왕”을 따르기 위하여 가정, 책임과 자존을 포기하고 심지어 염치도 포기했다고 한다. 고(高)모씨, 남, 46세, 안휘성 태화현 대신진 사람, 2010년에 아내와 함께 8살 난 딸애를 데리고 집을 떠나는 바람에 작은 딸이 유년기에 학교를 중퇴하게 만들고 큰 딸이 결혼할 때와 애 낳을 때도 돌아가지 않았고 돈 한푼 주지 못했다. “부신교” 신도들 중 일을 지체하고 밭을 황폐시키고 가정을 포기하고 학교를 그만 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이 조직에서 전 가족이 떠난 신도들 중 “나오라”를 믿고 주택지와 집을 몽땅 팔고 떠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 가정이 일에 대한 욕망이 없고 살림이 씻은 듯이 가난하고 울안에 잡초가 무성하고 집이 허물어졌다. 가정과 사회에 막대한 위험과 현실적 폐해를 끼쳤다.

둘째, 정신적 통제로 집단 음란행위를 벌이다. 장기적으로 가출하여 “대가정 생활”에 참여한 신도들, 특히 핵심 신도들을 통제하기 위해 “자유로운 성생활”을 선양하고 남녀 한계 타파를 제창하고 동급별 남녀들이 자유롭게 결합할 수 있고 상급이 남녀 신도들의 간통을 배정할 수 있으며 고등급 두목은 수시로 “신”의 명의를 내 걸고 여신도를 “임행(临幸)”할 수 있고 부부 사이에 이런 일로 서로 미워하거나 질투하지 말고 심적으로 태연하게 직면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부신교”는 이런 행위를 “실행”이라고 하고 “실행”은 불가피한 것이고 “부신”에 대한 믿음의 진화라고 해석했다. 신도들을 미혹하기 위해 “왕”이 자신의 아내와 딸을 선후로 타인과 “실행”시키고 이를 빌미로 17-18명의 여성과 관계를 발생했다. 신도들은 “세뇌”되고 정신적으로 통제되어 섣불리 이 조직을 탈퇴하지 않는다. 심한 질병이나 고령으로 인해 조직에서 고향으로 돌려보내도 입밖에 말을 내지 않고 이 사교조직의 일체 활동에 관한 진술을 거부한다. 많은 신도들이 “나오라”는 의념을 주입 당해 장기간 가정과 기존의 생활환경을 이탈하고 혈육간의 정을 단절하면서 일편단심으로 “왕”에게 충성한다.

셋째, 재물을 사취하고 사회질서를 교란한다. 정채여(郑彩丽), 여, 45세, 안휘성 태화현 사람, “부신교”에서 서열 이십사”에 속하는 그녀는 산서성을 책임졌는데 2015년부터 현재까지만 하더라도 산서성 여량(吕梁)시에서 상급 “십이”에게 33여 만 위안을 송금했다. 진계영(陈桂英), 여, 47세, 사천성 내강(内江) 사람, 2015년부터 선후로 신강, 하남, 산서, 사천, 섬서 등 지역의 신도들로부터 헌납금 39만 위안을 거둬들였다. 추계에 따르면 “부신교”는 근년에 약 460여만 위안에 달하는 돈을 사취했다. 그중 “왕” 한 사람이 100여만 위안에 달하는 덕을 봤다. 물론 여기엔 말단 신도들이 헌납한 대량의 실물과 금, 은 액세서리 등이 포함되지 않는다.

(책임편집: 소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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