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오후, 필자는 비를 맞으면서 쉐이닝시 촨산취 푸위안루 진메이 사구(遂寧市船山區富源路辦事處金梅社區) 5사 주민 수화의 집에 취재하로 갔다. 그는 필자에게 양운부(楊運富)가 파룬공을 수련한다는 일을 사실대로 얘기했다. 양운부와 수화는 이웃이었다. 1950년 10월에 태어난 양운부는 수화의 아버지와 동갑이고 수화는 그를 양수(삼촌 뜻)라고 불러 양가는 사이좋게 지냈다. 다음 내용은 수화의 얘기다.
양수가 젊었을 때 매우 건강했다. 마을 사람들이 양뚱이라고 부른 그는 부지런하고 농사일을 잘 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와 결혼한 후 1남1녀를 낳았다. 집안 사람 4명이 다 일하고 아들 양졘화(楊建華), 딸 양슈췬(楊秀群) 쉐이닝시 시내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90년대초 양수와 아내는 동네 갈림길에 밀가루 가공 공장을 경영하고 장사가 잘 되어 현지 방송국도 보도한 적이 있었다. 집안 수입이 높고 조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양수가 파룬궁 수련에 푹 빠진 후 그 집에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양수는 당뇨병이 있고 수련을 통해 병을 치료하고 오랫동안 주사도 맞지 않고 약도 먹지 않아 뚱뚱이가 말라깽이로 되어 수련 끝에 멀쩡한 사람을 괴롭혀서 죽게 했다.
1997년 4월 ,쉐닝시 시내에서 파룬공 수련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양수는 쉐닝시 난취안판(南轉盤)에서 파룬공을 수련한 사람을 봤다. 그 중에 어떤 사람은 양수가 파룬공을 수련하자고 적극적으로 권계하고 수련한다면 건강이 좋아지고 약이나 주사가 다 필요없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으며 나아가 잘 수련한다면 신선이 되고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고 가족들이 부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수련을 통해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에 양수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하여 수련자들과 같이 수련한다는 약속을 하고 그날부터 매일 일찍 쉐닝시 난취안판에 와서 바람도 비도 막을 수 없이 점점 빠지고 있었다. 어느날 그곳에서 가부좌하여 수련하는 양수는 저를 보고 적극 인사하며 수화도 파룬공을 수련하자고 권했다. 몸에도 좋고 젊은이에게도 좋다고 말했다. 제가 젊은이들은 파룬공을 믿지 않아 그건 미신이라고 말했다. 내가 거절해서 그후 다시 권하지 않았다.
얼마 동안 수련한 후, 양수는 몸이 상태가 좋게 느껴지면서 수련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수련하고 수련 시간을 늘이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부좌하여 수련했다. 그래서 공장의 장사도 그만두고 많은 구매자가 잃어져 생산을 중지할 수 밖에 없어서 가정 수입도 큰 손해를 입었다. 양수의 자녀들은 그의 파룬공 수련을 반대하고 서로 다투곤 했다. 그런데 고집센 양수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쉐이닝시 시내에서 수련한 오디오 테이프, 비디오 그리고 /‘전법륜/’에 관한 서적 등 자료를 사 와서 집에서 수련 음악을 들으면서 가부좌하여 수련했다.
1999년 7월 국가에서 파룬공을 금지한다는 소식에 대해 양수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부의 법력이 크기 때문에 약이나 주사도 필요없이 병을 치료하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파룬공이 취소된 것은 사부에게 불공정한 대우이고 그렇게도 계속 수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졘화와 슈췬은 양수가 나가서 파룬공을 선양해서 국가 법률을 위반해 가정에 더 큰 피해를 입힐 까봐 양수에게 수련을 포기하고 공장을 다시 할 것을 많이 권하지만 고집센 양수가 수련을 중지하면 안되다면서 중지하면 공력이 떨어지고 압력(業力)이 높아져 당뇨병을 치료할 수 없으며 예전에 수련한 것이 다 없어진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양수는 화나면서 자녀들에게 말리지 말고 수련을 방해하지 말아, 수련을 방해한다면 사부의 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한 말을 하는 양수는 가족들도 그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2006년에 몇 년을 수련한 양수는 건강이 좋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나빠졌다. 뚱뚱이가 말라깽이로 되고 당뇨병도 악화해졌다. 수련을 하지 말고 건강을 잘 관리하며 병원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권했지만 양수는 듣지 않았다. 병세가 악화해진 게 몸에 압력이 아직 남아있고 대법제자로서 병원에 가면 안 되고 계속 수련해야 압력을 없애며 사부가 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고 했다. 양수의 이상한 말은 나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어느 날 밤 양수는 가족 몰래 갈림길에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파룬공을 선양하고 관련 자료를 나눠 주었다. 주변 주민들이 이를 발견해서 제때에 반 사이비종교 봉사자에게 연락하고 그에게 관련 지식을 설명했다. 파룬공은 사이비 종교조직이고 이미 국가에서 금지되고 있으며 앞으로 파룬공을 선양하거나 관련 자료를 나누는 국가법률을 위반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권했다. 그런데 양수는 입으로는 복종하지만 속으로는 불복해서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양수에게 앞으로 다시 나가서 선양하지 말고 가족들을 위해 생각해줘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양수는 말을 듣지 않고 집에서 수련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더 경건하게 수련해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아들과 딸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나가서 일하고 양수와 떨어져 살았다.
2014년 11월 양수의 병세가 악화해지고 얼굴을 거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몸이 훌쭉히 빠져 원래 뚱뚱한 양수를 다시 볼 수 없었다. 마을의 이웃들은 졔화와 슈췬에게 양수를 빨리 병원으로 모셔야 하고 계속 놔두면 살리지 못한다고 충고했다. 속이 탄 아들과 딸은 애타게 설득했지만 양수는 결연하게 병원에 가지 않고 대법제자로서 죽어도 병원에 안 간다며 계속 수련해서 마지막의 난관을 극복한다면 원만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법이 없어서 자녀들이 모든 걸 운명에 맡길 수 밖에 없었다.
2014년 11월 18일, 양수는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하고 그날 밤으로 돌아가셨다. 가증스러운 파룬궁은 양수를 괴롭혀서 죽게 했다.
양운부(楊運富) 생전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