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건져 올려, 한번 봐봐 아직 숨이 붙어있는지.”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조영강(趙永江)의 시체가 건져 올려졌지만, 몸은 이미 차가워져 있었고, 호흡도 멎어 있었다. “저기 봐, 물풀 옆에 아이 시체가 하나 더 있잖아!”사람들이 이 젊은이의 죽음에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설상가상 그의 아들도 함께 세상을 떠나 버린 것이다/…/… 2004년 초 여름 두 명의 안타까운 생명이 이렇게 사라져 버렸다.
얼마 후 사람들은 조영강 집에서 단서를 발견했다. “저는 아들을 데리고 함께 “원만(圆满)”할 거니, 우리를 찾지 마세요.”한 장의 종이 쪽지가 조용히 책상 위에 놓여 있었고, 그는 이렇게 어린 아내와 나이든 부모님을 남겨두고 떠나 버렸다. 비통에 젖은 가족들은 이때 불현듯 정부가 법륜공(法輪功)을 사이비로 지정한 것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깨달았다. 기공을 연마하는 것이 그에게 득이 된 것도 없었을 뿐더러, 오히려 두 부자(父子)의 목숨을 앗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조영강은 하남성(河北省) 패주시(霸州市) 석성2촌(石城二村)에 살았고, 어려서부터 우직하고 성실하였으며, 부모님을 잘 모셔서, 마을에서의 평판이 아주 좋았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 부모님을 따라 농사를 지었는데 왜냐하면, 거기에 소질이 있었고, 일찍이 옆 마을 처녀에게 장가를 갔기 때문이었다. 결혼 한 후에 그는 양계장을 하나 꾸렸는데, 그들이 운영하는 양계장은 조금 독특하여 유명해졌고, 양계장의 규모도 점점 커져갔다. 이듬해 그 집안에 경사가 있었는데, 바로 조영강이 아들을 가게 된 것이다. 아들이 태어나면서 이 작은 집안은 더욱 행복해 졌고, 세 식구는 항상 화목하고 즐거웠다.
그러나 악마의 손길이 이 행복한 가정에 서서히 뻗쳐 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2003년 같은 마을에 한 중년여자가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조영강 부모의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법륜공의 기능에 대해 과장해서 말했는데, 법륜공을 익히면 약을 먹을 필요도 없어지고, 편안함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등 많은 좋은 점에 대해 얘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조영강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듣다 보니 자신의 지식 수준에 한계가 와서 생각이 단순한 조영강은 조금씩 빠져들게 되었다. 특히 조영강은 효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최근 몇 년 부모님의 몸이 좋지 않았는데 만약 기공을 연마한 후에 부모님의 병환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최선의 효도를 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는 법륜공을 수련해 보기로 하였다.
조영강은 평소 우직하지만 일을 함에 있어서 결코 대충하는 일이 없다. 그는 밤에 다음날 연습해야 할 “전법륜(轉法輪)”등의 자료를 미리 읽을 뿐 아니라 저녁에는 근처에 사는 법륜공 제자들을 자기 집에 불러서 같이 기공을 연마하곤 하였는데, 바로 그들과 함께 기공을 연마 함으로 체득하고, 심법을 공부하고, 공력을 구함으로써 “정진(精进)”하는/…/…
어느 날 아내는 그가 집안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을 보고, 한 마디 하였더니 뜻밖에도 여태껏 착실했던 남편으로부터 원망과 모욕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마음 속에 숨겨진 기공의 역할로 인해, 조영강은 점점 자신의 몸에 미묘한 변화가 생기고 잇다는 것을 느꼈다/…/… 기공을 연마하는 친구들의 부추기고, 꼬드기는 달콤한 말에 빠른 시간 내 조영강은 기공 연마하는데 깊이 빠져버려, 거의 미친 수준에 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기공을 연마할 뿐만 아니라 낮에도 관련 서적을 손에 들고, 한편으로는 그것을 읽으면서 또 한편으로 혼자서 중얼중얼거렸다.
양계장에서 일할 때도 자주 멍하니 있었고, 한 번은 아내와 양계장을 청소 하는데 갑자기 땅바닥에 앉아 기공을 연습하기 시작한 적도 있다. 온 몸에는 닭의 배변이 묻어 있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떤 때는 심지어 주도적으로 일을 자청하여, 최근 몇 년간 닭을 키우면서 모아둔 저축을 깨고, 각 종 선전용CD 및 전단지를 복사하여 같이 연습하는 친구들과 여기저기 뿌리고 다녔다.
조영강은 날이 갈수록 깊이 빠지게 되어, 마음 속에는 온통 기공을 연마하고 심법을 배우는 것 밖에 없어, 양계장을 돌보는 일조차 하지 못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아내 혼자서 일을 다하기 벅차 원래 잘 되던 장사도 잘 안되기 시작했고, 생계를 꾸리기도 점점 더 힘들어 졌으며, 부부싸움 횟수도 날이 갈수록 잦아지게 되었다. 평소 우직하고 착실했던 조영강은 기공을 연마하면서부터 성격이 크게 변하였다. 어떤 때는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법륜공의 그릇된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고, 어떤 사람이 그에 동의하지 않은 의견을 가지거나 그의 말에 반대하기만 하면 그는 노발대발하였고, 심지어 주먹질도 하였다.
조영강의 반 미친 증상을 보고, 마을의 간부는 그에게 심리치료를 몇 번 해 주었고, 그에게 사이비종교를 멀리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에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에게 “당신들은 내가 연마하는 것이 이상한 기공이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내가 가는 길을 천국으로 통하는 길이고, 언젠가 나는 원만하게 하늘로 올라가게 될 것이요.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은 모두 가질 수 있을 것이요.”라고 말했다.
어느새 2004년이 되어, 조영강은 이미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에 발을 딛게 된 것이다. 기공을 연마하는 초심은 단지 부모님의 건강을 위한 것이었는데, 그는 이홍지(李洪志)가 꾸며낸“원만(圆满)”이라는 거짓말에 깊이 빠져버렸다. 양계장 운영도 무력해지고, 아내와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부모님의 몸 상태 또한 좋아지지 않는 등 법륜공은 그에게 법륜공의 사이비 본질을 보여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법륜세계”를 더욱 동경하게 하였으며, 오로지 마음 속에는 이 힘든 현실 생활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법륜세계”를 추구하는 일 밖에 없었다.
조영강은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나 자신은“원만(圆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밀을 거두어 들이느라 바빴기 때문에 가족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정신 상태를 고려하여, 그와 아이는 특별히 집에 있게 하였다. 6월 8일 새벽, 아내는 늘 하던 대로 닭에게 모이를 주러 양계장으로 갔고, 부모님은 새벽 4, 5시 밀을 수확하러 집을 나섰다. 그래서 조영강 혼자 집에서 어린 아이를 돌보고 있게 되었다. 집안 사람들이 집을 비운 짧은 시간 내에 조영강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아무도 몰랐다. 아침 7시 좀 넘어서, 조영강은 종이 쪽지 한 장만 남긴 체, 자신의 두 살배기 아들을 안고, 집 앞의 깊은 웅덩이로 뛰어 내렸다.
비극이 발생한 후에 조영강의 부모님은 충격을 받아서, 원래도 좋지 않았던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고, 아들을 꾀어서 잘 못된 길을 걷게 만든 그 여자로 하여금 다시는 자신들의 집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은 법륜공이 바로 재앙의 근원이고, 재앙의 도화선이 된 것은 바로 그 여자라고 생각하였다. 어린 아내는 조영강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음 속의 좋은 남편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안타깝게도 남편과 아들을 잃은 그녀는 더 이상 이 집에 머물 이유가 없게 되어서, 개가(改嫁)라는 선택을 하여, 이 불행한 곳을 멀리 떠나버렸다. 이렇게 한 행복한 가정이 법륜공에 의해 풍비박산 나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