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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죽음

2015-10-08 Auteur:황광위

청년 화가 황광위(黄广宇,남, 1984년 출생)는 2010년에 광저우(广州)미술대학 유화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중국 후현대(后现代)연구소에서 대학원 과정 공부 중이며 다년간 고전 유화의 기법에 대한 연구와 탐색에 주력해 왔다. 2013년3월 광저우시 예술관에서 열린 새싹 작품전에 출전했고 그의 유화작품이 리정탠(李正天)의 저작인 <광색정조론(光色定调论)>에 수록되었다. 유화창작 분야에서 한창 이름을 날리기 시작할 때 여 화가 아이신(艾心)을 따라 법륜공을 수련하면서 사교의 수렁에 깊이 빠졌다/…/…

청년 화가 황광위와 그의 작품

아래는 화가 황광위의 깨달음 뒤의 고백이다.

전에 예쁘고 기품 있는 여 화가 한 명이 있었는데 꽃을 그리기를 좋아하고 유난히 연꽃을 좋아했다. 그녀의 그림은 색채가 화려하고 고결하며 세속을 벗어난 독특한 미를 선 보였다. 착하고 아름다우며 천성적으로 예술의 감수성이 뛰어난 분이다. 그런데 일심으로 전통적인 불교문화를 추구하는 과정에 부불외도 짓을 하는 사이비종교를 잘못 믿었다. 자신이 병을 제거하고 몸을 튼튼하게 할 수 있고 법신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만 믿다가 불치의 병에 걸리고 일심으로 /‘사악전멸(邪恶全灭)/’이라는 이른바 /‘정념/’을 읊다가 사이비종교에 자신의 젊은 생명을 빼앗겨 가족과 친구들에게 깊은 유감과 미완성 작품만 남기고 떠났다. 죽는 순간까지도 목숨을 앗아간 장본인이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쳐오던 법륜공인 줄은 몰랐을 것이다.

아이신의 초기 작품

부처님께 빌며 선(善)을 지향하려다 법륜공을 오신(误信)

화가 아이신(가명)은 나의 사모님이고 국내 예술계에서 /‘화신(花神)/’이라고 불리는 청년 화가며 예전의 나의 /‘동수(同修)/’이기도 하다. 1997년 부처님을 배워 선(善)을 지향하려다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법륜공을 불법(佛法)으로 생각하고 수련을 통해 자신의 심성과 층차를 제고하고 종국적으로 윤회에서 벗어나 승천하고 원만 성취할 줄 알았다. “세상에 착한 사람보다 더 속이기 쉬운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환상을 좋아하고 천진하고 착하고 단순한 게 화가 아이신의 잘못이 아니라 이런 착한 본성이 이용되고 법륜공의 /‘진선인/’의 베일에 속아 외딴 길에 잘못 들어서 점점 깊이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게 그녀의 잘못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의 남편은 저명한 철학가, 예술가이며 또한 미술학원 나의 지도교수님이시다. 그녀는 남편이 수련을 반대하는 바람에 연마 사실을 남편한테 숨기는 수 밖에 없었고 정부에서 법륜공을 금지시킨 후 법륜공 매체에서 하는 선전만 믿고 /‘모함/’이라며 법륜공이 나쁘다는 그 어떤 보도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법의 위엄이 두려워 감히 나서서 “진상을 알리지”는 못하고 나를 믿고 의지했고 타고난 인품이 자기와 비슷하다며 나를 /‘구도(救度)/’할만한 상대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림 쪽에만 취미가 있고 세상물정을 잘 몰랐으므로 사모님에 대한 믿음으로 법륜공을 따라 수련하기 시작했다. /‘경문/’을 거듭 통독하고 법륜공 사이트를 열람하면서 내면의 선심과 동정심마저 사교의 위선에 속아넘어갔다. 나와 사모님은 엄청난 대 재앙이 곧 닥칠 텐 데 오직 법륜공을 믿어야만 구원되고 하늘로 올라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이런 변화가 그녀의 창작에도 반영되어 잘 그리던 연꽃을 그리지 않고 자신의 초상을 부처님의 초상으로 그렸다. 그러면서 날로 야위고 수척해지고 있는 변화를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

수련을 통해 병을 제거하고 몸을 튼튼히 할 수 있다고 믿고, 이홍지의 약속을 얻어 냈음에도 불치의 병에 걸려

법륜공의 업력론은 병은 업력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고 진정으로 법륜공을 수련하는 자는 이홍지가 그를 도와서 몸을 청결해주기에 몸에 병이 없고 추후 병상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수련과정에 넘어야 할 소업하고 심성을 제고하는 고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법륜공 수련자들은 모두 자신이 전혀 병이 없다고 말하며 병이 있어도 병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사설의 독해로 아이신은 몸이 아파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이에 비해 이르게 머리가 반백으로 변했지만 염색을 하니 겉 보기에 매양 의기양양해 보였다. 이 모든 것을 소업과 고비로 간주하면서 실은 은근히 고통을 겪었다. 시간이 오래되니 이런 잠재적인 작은 병이 큰 병으로 발전하고 불치의 병으로 이어졌다.

병통에 시달리다 못해 용기를 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머나먼 미국에 있는 이홍지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의했더니 이홍지는 “정진하려면 3가지 일만 잘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사부의 대답에 크게 흥분한 아이신은 날마다 법을 공부하고 연마하고 /‘정념/’을 발했다. 하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아무리 /‘정진/’해도 소용이 없었다. 상태가 계속 악화되고 결국은 화실에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어서야 불치의 병에 걸렸음을 알게 되었다.

임종에 /‘사념(邪念)/’을 발하고 사교에 목숨을 빼앗겨

병상에서 금방 깨어난 아이신은 몹시 허약해 보였다. 병 문안을 간 나를 계면쩍게 쳐다보며 “올 필요 없는데”하며 말끝을 흐렸다. 건강에 큰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생사를 내려놓고 고비를 넘으려”고 애쓰고 나에게 그와 함께 “정념을 발하여 사악을 제거하자” 제의하고 병원 치료를 그만두고 집에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 부탁했다. 그녀는 이렇듯 법륜공에 확고했다. 나도 이를 심성에 대한 대법의 시련이고 넘어야 할 고비라고 여겨 교수님 몰래 그녀를 퇴원시켰다.

퇴원 후 아이신은 조용히 휴양 좀 하겠다고 남편에게 말하고는 화실 벽에 이홍지의 /‘불상/’을 걸어놓고 중간에 자기 침대를 두고 침대 주변에 법륜공의 /‘경문/’을 잔뜩 놓았다. 나는 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신의 병상 옆에서 “정념을 발하고 사악을 제거했다”. 아이신은 정신만 추면 반드시 /‘경문/’을 낭독했고 자신에게 기적이 생기기를 바랬다.

이렇게 일주가 지났다. 2012년 9월 1일 그날도 내가 아이신을 간호하고 있었다. 연 몇 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숨을 가쁘게 몰아 쉬는데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만 같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찾은 아이신이 이홍지의 /‘불상/’을 향해 /‘정념/’을 발하며 이홍지의 화신이 나타나 자신을 구원해 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난 그 따위 사악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더니 잠시 후 서서히 숨을 거두었다.

전도 유망한 젊은 화가가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 해 겨우 45세였다.

아이신은 남편과 가족들에게 무한한 아픔을 남기고 떠났다. 교수님은 왜 아내가 병이 있어도 말하지 않고 치료도 받지 않았는지 이해를 못했다. 법륜공에 심취되지 않고 몸이 약간 불편할 때 병원에 가고 치료를 받았더라면 병은 일찍 치유되었을 것이고 작은 병이 큰 병으로 발전하여 목숨까지 잃는 결과는 초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이신의 비참한 사망에 경악했다. 그토록 확고하게 죽는 순간까지 법륜공을 믿는 이런 진수제자를 두고 이홍지의 /‘법신/’과 /‘신통/’은 다 어디에 있었는가? 이홍지가 “대법제자는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이신은 왜 불치의 병에 걸렸는가? 전화에서 “정진하려면 3가지 일만 잘하면 된다”던 이홍지는 왜 아이신을 구원하지 못했는가?

나는 반성하기 시작했고 도움을 요청했다. 몇 년 동안의 노력과 반(反)사교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정신(正信) 불교이론과의 대비를 통해 법륜공이 전형적인 부불외도 짓을 하는 사이비종교임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나와 아이신은 사교의 희생양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제때에 뉘우쳤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한창 나이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 글로 나의 사모님이며 화신인 아이신을 추모한다.

떠난 사람을 존중하기 위해 부분 인명과 지명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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