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성 유방(潍坊)시 청주(青州) 소장(邵庄)진 신왕(神旺)촌의 우가흥(于家兴)은 평범한 농민으로 그에게는 본래 행복한 가정이 있었다. 우가흥과 아내 양미운(杨美云)은 다 본분을 지키는 성실한 농민이며 크게 유족하지는 못해도 먹고 살기가 걱정 없는 화기애애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했었다. 그런데 그들이 법륜공 사교의 길에 잘못 들어서면서 최종 패가망신을 당했다.
모든 시작이 그렇게도 자연스러웠다. 1998년 여름, 어느 날 저녁무렵, 하루의 농사일을 마친 부부가 산책하다 숱한 사람들이 마을 입구에 모여 이상한 동작을 하기에 호기심에 끌려 다가가 구경했다. 이때 양의신(杨毅新)이라는 마을 사람이 뛰어와 이게 신체를 강하게 단련하는 신공 법륜공인데 잘 수련하면 병을 없애고 몸을 보양하므로 건강에 아주 좋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동안 농사를 짓다보니 부부가 다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픈 사소한 병들이 있었다. 양의신의 재삼 권고에 이들 부부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기공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의 정기적인 활동과 단련으로 몸이 거뿐해진 것 같자 법륜공을 크게 믿었다. 이때 양의신이 다시 책 여러 권을 주며 읽으면 제앙을 면하고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보호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배워도 별로 해로울 게 없다고 여겨 책에서 가르치는대로 따라했고 이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교의 심연 속으로 깊숙히 빠져들었다.
1999년, 국가에서 법륜공 사교를 단속한 후 마을에서 집단 연마를 금지시켰고 친척과 친구들도 국가에서 못하게 하니 이 공이 좋은 게 아니라며 연공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귀담아 듣지 않고 남몰래 날마다 집에서 연습하고 2005년까지 견지해왔다.
그 해 9월, 양미운의 친정에서 억지로 그녀를 친정으로 불러들여 자원봉사자를 청해 전향교육을 실시하자 우가흥은 슬그머니 혼자 가출해버렸다. 그런데 이번 가출이 그들 부부의 영별이 되었다.
가족과 자원봉사자들의 세심한 교화에 양미운은 자신이 연습하는 /‘신공/’이 결국 이홍지가 표절해온 기공 동작이고 그들의 몸이 좋아졌다는 느낌은 장기간의 규칙적인 활동과 단련의 결과일 뿐 결코 이홍지의 /‘신력(神力)/’의 덕택이 아니고 법륜공의 “병과 재앙을 없앤다”는 말은 사람을 속이는 것임에 불과함을 차츰 깨닫고 법륜공의 수렁에서 헤어나왔다.
그런데 그녀의 이런 전향이 시동생과 올케를 포함한 법륜공 수련자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양미운이 사악한 마귀에게 현혹되었고 제때에 /‘마(魔)/’를 쫓아내지 않으면 /‘대법/’을 파괴한다며 양미운의 몸에서 억지로 “마를 쫓아낸다”고 부산을 피웠다. 그들은 밥을 못 먹게 하고 잠도 자지 못하게 하며 그녀를 침대에 눌러 놓고 경문을 낭송시키고 몸을 짓누르고 꼬집었다. 하지만 양미운은 끝까지 법륜공 학습을 거절했다. 친정 식구들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을 때 그녀는 온 몸이 퍼렇고 벌겋게 멍들어 있었고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응급 구원을 했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다. 물론 /‘마 쫓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사후에 법의 엄벌을 받았지만 멀쩡한 사람이 /‘진, 선, 인/’을 외치는 집단에 의해 괴롭힘을 당할 대로 당한 끝에 43살의 젊은 나이에 숨지고 말았다.
양미운이 사망한 후 집을 떠났던 우가흥이 귀가했지만 비참하게 숨진 아내의 죽음에도 뉘우치지 못하고 심지어 더 무감각해져 버렸다. 그는 아내의 죽음이 마에게 현혹 되어서라며 공우들이 마귀를 쫓고 그녀를 구원하려 했지만 마에게 현혹된 아내가 놓지 않는 바람에 결국 마에게 잡혀갔다며 자신에게는 교훈이자 신의 시험인데 오직 이 관문을 통과해야만 더욱 정진할 수 있다고 여겼다.
2011년, 우가흥에게 가슴 통증과 함께 각혈이 시작되고 체중도 급속히 줄어 가족들이 병원에 가서 검진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는 귀담아 듣지 않고 자신의 연공이 정진하지 못해서라며 체내에 업력이 너무 많아 소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연마에 박차를 가하고 매일 병진 몸을 겨우겨우 지탱하며 경을 읽고 가부좌했다. 그는 신체가 좋지 않을 수록 연공을 견지해야 더 큰 성의를 보여 수련이 더 쉽게 성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병이 날로 악화되고 각혈이 멈추지 않아 가족이 억지로 그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진한 결과 폐암이었다. 의사가 입원치료를 건의했지만 그는 전혀 들은 척도 안 하고 사부님 /‘법신/’의 보호가 있어 약을 복용할 필요가 없다며 수련만 견지하면 몸이 낫는다고 우겼다. 입원치료를 거부한 그는 집에 돌아와서도 약을 복용하지 않고 아파도 고생하며 참았다. 통증이 심할 때마다 /‘발정념/’을 하며 가까스로 지탱하다 병이 계속 악화되어 2013년 말 사부의 /‘신력/’을 기다리다 못해 병으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