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천망(天网)/’행동 통일작전에 따라 해외로 도주한 중국 정부공직자, 중대 부패사건 연루자 등 100명 범죄 혐의자에 대한 인터폴 중국 국가중앙사무국의 적색 지명 수배령이 내려지면서 전세계 범위에서 수배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4월 22일, 중앙기율검사위원회 감사부 사이트에 상기 100명 해외 도주자들의 상세한 신상이 공개되었다. 그 중에는 2001년 11월 뉴질랜드에 도주한 것으로 보고 있는 얜융밍(闫永明) 전 통화금마약업그룹회사(通化金马药业集团有限公司) 이사장도 포함된다. 얜융밍, 가명 류양(刘阳), 직무 점유죄로 뉴질랜드에 도주했으며 지난 2005년 8월 22일에 이미 적색 지명 수배령이 내려져 수배 중에 있다. 인터폴에서 제공한 소식에 따르면 체포영장에 범인 이름이 얜융밍(Yongming Yan)이고 2.5억불대 사기, 횡령 범죄혐의자로 지목되었다고 한다.
얜융밍
해외 비호를 제공받아
수배령에 얜융밍이 신분증 3개, 여권 3개를 소지하고 있고 출생일자가 1971년 6월, 1969년 6월 혹은 1972년 10월인 걸로 예견된다고 기술되었다.
얜융밍은 해외로 도주 후 급히 해외 민주운동 인사와 접촉하고 민주운동 인사들에게 돈을 뿌려 그들의 비호를 제공받고 자신을 반체제 인사로 위장해 극력 경제문제를 정치화하려 시도했다. 얜융밍은 뉴질랜드 도착 후 주동적으로 법륜공조직을 찾아가 성원을 보내고 예호우(叶浩), 왕원이(王文怡) 등 법륜공인원들과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2006년 5월, 얜융밍은 자금을 대주며 /‘중국자유문화운동/’을 발의하고 법륜공과 장단을 맞춰가며 활동을 벌였다. 2006년 12월, 90000뉴질랜드 달러를 상금으로 /‘2006년 특별인권 영웅상/’을 설립하고 2007년 4월에는 /‘2007년 특별정신 신앙상/’ 상금으로 법륜공 정신수련자 단체에 50000뉴질랜드 달러를 지르고 뉴질랜드 법륜대법학회 책임자 팡산웨(方三岳)가 연단에 올라 상을 받았다. 얜융밍은 시상식 연설에서 “차후 초지일관 자세로 법륜공학원을 지지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법륜공 오클랜드지역 여대변인은 법륜공의 /‘다년간/’의 지지자인 얜융밍이 여러 법륜공 관련 사건과 현장에서 발언을 했다고 증언했다.
상기 행위는 얜융밍이 자신의 신분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즉 법륜공을 자신을 위한 서명운동에 이용하기 위해서다. 2007년 7월 뉴질랜드 법륜공학회의 협력자가 거리에 나서서 얜융밍을 위해 서명을 받아오라 뉴질랜드의 전체 학원을 선동하고 얜융밍이 법륜공을 동정해 박해를 받았다고 말함으로써 그에게 공민권을 수여할 것을 뉴질랜드 정부에 청구했다. <뉴질랜드 대법제자 수이구이잉(随桂英)이 보낸 편지>는 이렇게 적었다.“착해 빠지고 단순한 동수들이 밤새도록 차를 타고 와서 온 오전 행사에 참가하고 쉬지도 못하고 거리에 나서서 서명 운동을 했다.”“이번 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큰 교통사고가 발생했는데 그 중 한 명이 갈비뼈가 부러졌고 한 살 미만의 유아 한 명이 유리에 머리를 다쳤다.”“학원들이 도와서 작성하고 번역한 서명 리스트는 허점이 많아 눈치 빠른 사람은 영락없는 사실 날조임을 대뜸 알아볼 수 있었다.”“얜융밍도 일부 사람을 고용하여 그를 도와 서명을 받아오게 했는데 서명 하나에 10달러씩 줬다고 들었다.”
얜융밍이 사용한 신원 증명
중국 비아그라의 아버지
2007년 6월 9일에 출간한 <신문화보(新文化报)>의 보도에 따르면 1992년 6월 30일, 얜융밍이 타인과 공동 출자하여 통화삼리화학회사(通化三利化工公司)(이하 /‘삼리화공/’이라 함)를 설립했다. 등록자금이 4.6억원(RMB)인데 그 중 얜융밍이 96% 지분을 소지하면서 통화는 물론 동북지역에서 손꼽는 억만 부자로 되었다. 이때 얜융밍 나이가 겨우 21세였다.
내막을 아는 사람이 털어놓은 데 의하면 얜융밍은 학력이 높지 못한 영락없는 /‘사회인/’이면서도 줄곧 북경대학 경제관리학부를 졸업했다고 사칭했다. 가정형편도 보통이고 1.74m의 키에 약간 뚱뚱한, 말 그대로 “별로 볼품이 없고” 언변도 그닥 좋지 않았다. 20세기 90년대 초 씻은듯이 가난하던 그가 북경으로 떠났다가 얼마 후 /‘기업가/’로 변신해 돌아왔다.
통화금마약업그룹회사(通化金马药业集团股份有限公司) (이하 /‘통화금마/’라 함)는 1993년 2월 길림성 경제체제개혁위원회 길개비(1993)제12호문 허가로 통화시 생물화학제약공장, 통화시 특산그룹총공사, 통화시 제약공장이 공동 발의하여 지정대상 모금방식으로 설립한 주식회사다.
<신문화보>의 보도에 따르면 1993년 통화시 생물화학제약공장이 주식 상장을 앞둔 주식개혁 과정에서 삼리화공에서 1000만원을 투자해 지분을 샀다. 1997년 4월 주식이 상장되었고 2000년 삼리화공이 일련의 합병을 거쳐 최대 주주로 되었다. 따라서 얜융밍도 이사회에 진입하고 한 달 후 이사장으로 임명되었다.
<남방주말>의 보도에 따르면 얜융밍이 통화금마의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3.18억을 투자하여 “중국 비아그라”로 알려진 치성캡슐(奇圣胶囊) 정력제를 인수하면서 “중국 비아그라의 아버지”로 불리었다. 그 해 11월1일 치성캡슐의 순 이익금이 2.24억 원에 달한다고 통화금마가 공고했다.
<신문화보>의 보도에 따르면 2001년 통화금마의 실적이 곤두박질하여 5.84억에 달하는 적자를 냈고 그 해 10월, 얜융밍이 통화금마 이사장 직에서 물러나고 죄가 두려워 거액의 돈을 빼돌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나라로 도주했다.
얜융밍이 도주한 후 중국 경찰당국과 오스트레일리아 경찰당국은 이 사건에 대한 추적을 멈추지 않았다.
오스트레일리아측이 부분 범죄 자금을 중국에 환수시켜
2007년 6월 7일, 오스트레일리아 연방경찰당국이 얜융밍의 부분 범죄자금 2125만원(RMB)을 중국 경찰당국에 회수시켰다. 이것은 얜융밍이 2000년 12월 오스트레일리아로 도주할 때 소지한 자금이다. 얜융밍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2125만원을 손실 당했지만 2.5억 달러에 비하면 고작 거스름 돈에 불과했으므로 그는 그 잔금으로도 뉴질랜드에서 얼마든지 호화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2010년 1월, 통화금마는 2002년 4월 29일 길림성 공안청에서 직무 점유죄 혐의로 통화금마 얜융밍 전 이사장을 입건했다고 공고했다. 2007년 11월, 오스트레일리아 경찰당국이 길림성 공안청에서 제공한 증거자료에 따라 얜융밍이 오스트레일리아로 도피한 범죄자금 283.345857만 달러를 중국에 환수시켰다. 2009년 12월 31일 길림성 공안청과 재정청에서 상기 환수금과 이자를 합친 금액 284.188976만 달러(인민폐로 환산하면 약 1936.17만원)를 통화금마에 입금시켰다.
삼리화공이 아직까지 통화금마의 채무 5000만원을 안고 있다고 한다. 얜융밍이 삼리화공의 96%의 지분을 소지하고 있고 실제 통제자다.
도주 후 사치 생활
얜융밍이 2005년에 뉴질랜드로 도주한 후 /‘류양/’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지만 행동거지는 여전히 거침없다. Metropolis호텔의 맨 위층의 절반 소유권을 240만 뉴질랜드 달러를 주고 구입하고 2006년에 다시 600만 달러를 주고 노스쇼어의 호화저택을 구입했다. 얜융밍은 또 여러 중국요리점의 지분을 소지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요리점이 쥐더쇈(聚德轩, JadeTerrace)이다. 얜융밍이 평시 몰고 다니는 차만 해도 페라리, 포르쉐, 벤털리, BMW 등 4대나 된다.
얜융밍이 해외에서 구입한 부분 호화저택
2009년 초부터 얜융밍은 자산을 이전하기 시작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재산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바꿨지만 실제 소유자는 여전히 얜융밍이다.
얜융밍의 일상 생활은 말 그대로 주지육림, 극히 사치하여 뉴질랜드에 이민간 많은 중국계 부자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얜융밍과 교제했던 사람의 기억에 집을 나설 때마다 차 여러 대가 동행하고 매번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면 그가 고용한 기사, 경호원, 아가씨들만도 한 상을 별도로 차려야 했다.
해외에 도착 후 얜융밍은 급히 해외 민주운동인사와 접촉하고 그들에게 돈을 뿌려 민주운동인사의 비호를 받아 자신을 반체제 인사로 위장하고 극력 경제문제를 정치화하려 시도했다. 2006년 11월, 오스트레일리아에 망명한 왠훙빙(袁红冰)이 발의한 자유문화운동에 참가하고 9만 뉴질랜드 달러(약 6만 달러)을 기부해 자유문화운동특별인권 영웅상을 설립했다. 2007년 1월, 자유문화운동을 지지하는 왠훙빙이 국내 외 매스컴에 자유문화상운동심사위원회에서 얜융밍을 표창한다는 공고문을 발표했다.
얜융밍은 또한 동시 작전을 벌여 두 노동당 의원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2005년 대선 때 노동당 Te Atatu지역 Chris Carter후보와 국가당 John Key에게 각각 5000뉴질랜드 달러를 기부했다. 그리고 그의 요리점이 훠잰챵(霍建强, Raymond Huo) 노동당 후보、국가당의 황쉬위팡(黄徐毓芳, Pansy Wong), 그리고 행동당의 왕쇼쇈(王小选, Kenneth Wang )을 위한 모금행사 현장으로 자주 이용되었다.
2005년 얜융밍이 뉴질랜드 내무부에 공민신청을 제출했고 노동당의 Dover Samuels, 국가당의 황쉬위팡이 각각 그를 위해 담보를 섰다. 그런데 내무부에서 내내 신청을 통과시키지 않고 그가 사용했던 여러 개 이름, 여권, 출생일자 및 설립회사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뉴질랜드 저명한 보수파 주간지 TGIF의 Ian Wishart 기자는 Johannes Gambo 내무부 요원이 얜융밍이 중국 정부의 수배를 받고 있어 그에게 자신의 양민 신분을 스스로 증명하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추적하는 잡지사에 유출된 문서에는 얜융밍이 여러 개의 여권을 사용한 경력이 있고 그의 진짜 신분이 무엇인지 모른다 입국사무처 요원이 밝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