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음력 설(중국 신년)을 맞이한지 나흘째 되는 날, 그녀는 맨발로 3층 건물에서 꺼꾸로 투신해 숨졌다.
고통스러운 추억은 10년이 넘도록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남편과 동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진초선 생전 사진
진초선(陈超先)여사는 법륜공을 수련했다. 여러 해가 지났지만 그녀의 동료인 호북성 황석(黄石)방송대학의 이승리(李胜利) 선생은 여전히 그녀를 기억하고 있다.
“물리 선생님인 그녀는 착하고 순수하며 부드럽고 친절하고 다정한 분이었습니다. 그녀의 인품에 대한 다들의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남편이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부부 사이가 좋으며 슬하에 활발하고 귀여운 딸애를 두고 행복한 가정들이 누리는 안정적이고 평온한 생활을 했었다.
“업무에 열심하고 탐구 정신이 강하여 무미건조하고 경직된 물리를 생동하고 재미있게 강의했습니다”, “그런데 체질이 약해 사무실 서랍에 늘 여러 가지 약들이 들어 있었습니다”라고 이승리 선생이 기억을 더듬었다.
1996년 여름, 그녀는 옛날 동창을 통해 법륜공을 접했고 몸을 튼튼히 하려는 목적으로 법륜공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20세기 90년대 초반, 중국에 기공 붐이 일기 시작했다. 기공은 일종의 전통적인 중국 건신 방식으로 의념에 태극권 비슷한 동작을 맞춰 사람의 몸에서 운동하는 /‘기/’를 통제함으로써 몸을 튼튼히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 무렵 기공의 진수를 알던 모르던 강습반을 개설하고 각종 기공을 전수하며 /‘대사(大师)/’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물론 그들의 주된 목적은 돈벌이었다.
이홍지 선생은 중국 동북의 길림성 공주령(公主岭) 사람인데 그 역시 이들 /‘대사/’중의 한 사람이다. 초기에 이홍지는 여러 /‘대사/’들을 따라다니며 기공을 배우다가 강습반을 개설하고 학생을 모집했다. 전에 이홍지는 삼림경찰부대 문공단의 트럼펫 연주자였는데 그의 전우들은 그가 기공을 안다는 말을 전혀 듣지도 못했고 본 적도 없다고 한다.
/‘대사/’들이 너무 많고 경쟁이 치열하여 이홍지의 사업은 예상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가 태국으로 시집간 여동생 집에 가서 잠깐 생활했는데 태국 현지의 불교문화와 무용예술로부터 영감을 떠올렸다. 귀국 후 1992년 기타 기공과 구별시키고 학원을 포섭하고 통제하기 위해 이홍지는 불교와 도교의 요소를 자신의 기공에 두루 섞어 법륜공의 창시를 선언했다.
이홍지는 자신의 법륜공의 핵심이 /‘진, 선, 인/’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중국의 전통 도덕에 부합되고 또한 그의 /‘기공/’이 “몸을 튼튼히 하고” 불교와 도교 요소를 겸비했으므로 쉽게 진초선과 같은 마음씨 착하고 건강이 좋지 못한 사람들의 관심을 샀다.
법륜공을 수련하기 위해 그녀는 심지어 얼마 되지 않는 월급에서 천 원 넘게 주고 법륜공 책자와 자료들을 구입했다. 자기를 통해 지도서적을 구매하지 않으면 법륜공을 수련해도 바라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이선생이 말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은 많은 돈을 써 가며 이홍지의 책을 사들이는 아내가 달갑지 않아 한 동안 바가지를 긁었다.
“1997년 상반 년 저희 사무실 선생님들은 진초선 선생이 수업시간에 주의력이 떨어지고 언어가 신경질적이고 자주 다른 사람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말을 하는 이상한 기미를 발견했습니다”고 이승리 선생이 말했다. 원래 진초선은 출근하면서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법륜공을 수련하면서부터 자신이 /‘성명쌍수 (性命双修)/’ 중이라 다른 걸 더 배워서는 아니 된다며 포기했다.
이홍지는 신도들에게 법륜공을 수련하는 사람은 법륜공 외의 기타 것을 접촉해서는 안되며 /‘원만/’하려면 명리지심(名利之心)을 포기하고 법륜공 수련을 첫 자리에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원만/’은 원래 불교용어로 불사를 끝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홍지는 이를 신도들이 사망 후 서방 극락세계에 들어가는 뜻으로 파생시키고 자기가 신도들을 위해 안배한 원만의 시각이 곧 온다고 거듭 언명했다.
이렇게 되어 진초선은 정력과 시간을 사업과 가정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일심으로 연공하고 공우들과 함께 심득을 교류하며 지어 동료들에게 법륜공 책자들을 나누어주며 다들 함께 연공하자고 요구했다. 동료들이 질의하고 불응하자 그녀는 화를 내기도 했다. 1998년에 이르러 진초선은 완전히 심취되어 정신상태가 흐리터분해 더는 정상적인 수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학교 영도가 수차 권했지만 소용 없어 물자조달 관리부서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이홍지는 또한 그가 신도들의 배에 /‘법륜/’을 설치했는데 법륜이 돌면서 신도들에게 에너지를 제공해 주므로 신도가 약을 먹지 않고도 몸 건강을 찾을 수 있으며 신도와 가족들의 평안을 지켜 준다고 말했다.
그때 진초선은 늘 자신의 배에 회전하는 법륜이 있어 몸이 이미 속인들과 다르게 변하여 때가 되면 /‘원만비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98년 7월 16일 진초선은 사무실에서 쉴 새 없이 중얼거리더니 이어 커터 칼로 할복해 피를 낭자하게 흘렸다. 다행히 동료들이 제때에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겨져 구조되었다. 의식을 되찾은 그녀는 자신의 체내에 있는 수련된 /‘법륜/’을 꺼내려 했다고 말했다. 그 후부터 진초선은 1999년 음력 초 나흗날 투신 사망한 그 날까지 다시는 출근하지 않았다.
그 해 4월 22일, 여러 학자와 신문사, 잡지사에서 법륜공 등 기공조직이 수련자들을 오도(误导)하고 일부 수련자의 사망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쏟아내자 이홍지 선생과 기타 법륜공 리더들이 신도들을 조직하여 신문사, 방송국과 잡지사를 에워싸고 비난하고 법륜공을 중상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매체들이 거절하자 이홍지 등은 암암리에 신도들을 조직하여 신청과 비준 절차도 없이 중국정부 수뇌들의 집무처인 북경 중남해 주변에서 이른바 /‘평화 청원/’을 벌였다.
같은 해 중국정부는 법륜공을 불법 사교조직이라고 선포했다.
아내의 지난 경력을 회상하며 진초선의 남편은 비통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 전번 퇴원 후부터 아내가 법륜공에 심취되어 종일토록 가부좌 틀고 앉아 연공하고 혼자 횡설수설을 늘어놓으며 자기가 곧 /‘원만/’한다는 등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자주 착란이 생겨 저와 딸 마저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었고 누가 권유하거나 연마를 못하게 하면 무지막지를 부리고 지어 손찌검까지 해댔습니다. 그러는 그녀를 보고 저와 딸은 화 나고 밉기도 했지만 행여나 무슨 변고라도 생기지 않을까 날이면 날마다 조마조마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막지 못했습니다. 정월 초 나흗날 새벽 6시경, 아내가 침대에서 일어나 흐리터분해 방을 나가기에 화장실에 가는 줄 알았는데 3층 화장실 창문에서 투신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거꾸로 떨어지는 바람에 즉석에서 숨졌습니다. 그것도 맨발 바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