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8일, 산동 연대(烟台)는 다소 더운 날씨였다. 이 날도 오석연(吴硕艳, 35세)은 전동차를 타고 초원(招远)시 금도(金都)백화점에 출근했다. 퇴근 후 남편, 아들(7세)과 금도백화점 맥도날드 식당 앞에서 만났다. 아직 저녁을 먹지 않은 오석연은 맥도날드에 들어가고 남편은 아들을 데리고 6층 게임장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것이 그녀와 가족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맥도날드에서 오석연은 입교를 강요하는 전능신 신도 장입동(张立冬) 등 6명을 만났고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은 탓으로 폭행을 당해 숨졌다.
초원 유혈사건은 전국을 경악케했고1995년 정부로부터 사교로 규정된 후 전능신교가 다시 사람들의 안목을 끌었다.
교주 조유산, 미국 호화로운 저택에서 포교 활동을 원격 조종
장입동이 신봉하는 전능신교는 기독교의 이름을 내걸고 지난 세기 90년대 하남성에서 전파하기 시작했는데 /‘동방번개(东方闪电)/’, /‘실제신(实际神)/’,/‘7령파(七灵派)/’라고도 한다. 국가 관련부처 관계자의 소개에 따르면 전능신교의 창시자인 조유산(赵维山)은 흑룡강성 아성(阿城)시 (지금의 할빈 아성구) 영원(永源)진의 사람인데 1951년 출생, 전문대학을 졸업한 철도 노동자이었다. 언론에서 말하는 /‘물리 선생/’이 아니다. 1979년 조유산은 지인의 소개로 아성 제과공장의 노동자 부운지(付云芝)와 결혼했다. 1981년 흑룡강성에서 사교조직 /‘호함파(呼喊派)/’에 가입한 그는 1986년부터 아성을 중심으로 주변의 상지(尚志)현, 임구(林口)현 등 지역의 가정집회를 전전하며 /‘설교/’하고 일부 신도들의 추앙을 받았다. “숱한 신도들이 앞뒤로 옹위”하여 조유산의 성취감을 키워줬고 그 후부터 걷잡을 수 없게 번졌다고 전능신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하남성 경찰이 언급했다. 조직 능력이 강한 조유산이 얼마 후 흑룡강 지역의 책임자로 되었고 한 검거작전에서 그의 아내 부운지가 검거되어 노동교양 3년 형을 받았으며 후에 조유산과 이혼하고 재가했다.
1989년 흑룡강 지역의 /‘호함파/’ 기타 인원들과의 불화로 조유산이 일부 성원을 거느리고 분파해 나와 /‘영원교회(永源教会)/’를 설립했다. 1991년에 이르러 /‘영원교회/’는 흑룡강성 신도만 수 천 명에 달했다. 그 해 5월 8일, 할빈시 정부에서 이 교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단속한다고 선포하자 조유산 등은 경찰의 추적을 피해 하남성 청풍(清丰)현으로 피신하여 현지의 /‘호함파/’ 성원과 합류했다. 1993년 조유산은 /‘영원교회/’를 /‘진신교회(真神教会)/’로 개명하고 자신이 수령으로 되었다. 이렇게 전능신교가 사교 추형을 갖추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유산은 /‘여 그리스도/’ 양향빈(杨向斌)을 포장해 냈다. 1973년 산서성 대동(大同)현 서평(西坪)진에서 출생한 양향빈은 1990년 전후로 대학입시에서 낙방된 자극을 받아 정신질환을 앓다가 후에 /‘호함파/’에 가입했다. 1991년 초 정신질환이 재발하여 “신령에 감동되어 이몽이상(异梦异象)을 봤고” 자신의 몸에 /‘신령/’이 부착했다며 자신이/‘신/’이라는 글을 썼다. 양향빈의 가치를 의식한 조유산은 그녀를 자신의 권력체계에 내포시키고 뒷이어 애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다 1993년 12월 8일 조유산과 양향빈이 하남성 개봉(开封)에서 결혼했다.
조유산은 7명을 선출하여 신의 화신이라 하고 그들을 각각 /‘전능(全能)/’, /‘전비(全备)/’ 등으로 불렀다. 조유산은 /‘전권(全权)/’또는/‘대제사(大祭司)/’라 자칭하고 행정업무를 맡으며 양향빈을 /‘전능신/’ 또는 /‘여 그리스도/’라고 받들었는데 그의 주요 업무는 /‘신화/’를 쓰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업무 분담이 확실했다. 양향빈이 명의상 최고 지위에 있었지만 /‘신화/’만 발표하는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실제 조종자는 조유산이였다. 두 사람은 기독교의 /‘도성육신(道成肉身)/’이란 전문용어를 왜곡하여 “도성육신이 두차례 있는데/…/… 첫 번째 도성육신은 남성이고 예수라 하고 두 번째 도성육신은 여성인데 /‘여 그리스도/’라 부른다”고 하고 “그리스도가 이미 강림했다. 세계의 동방--중국에 강림했다/…/…이 그리스도는 2천년 전에 십자가게 못박아 죽었다 다시 부활된 예수가 아니라 오늘의 중국 하남성 정주에서 태어난 여 그리스도이다/…/…동방에서 발출하여 서쪽까지 직사하는 번개이다”고 날조했다.
1997년, 사교활동에 종사하던 조유산이 검거되었고 노동 교양 3년 형을 받았다. 2000년 5월, 조유산이 허문산(许文山)이란 가명으로 양향빈 등과 함께 위조 증명서류로 하남성에서 여권을 만들었고 9월에 미국으로 도주하여 계속 국내 사교 활동을 원격 조종했다. 2001년 조유산은 /‘종교 박해/’를 이유로 미국에 /‘정치 망명/’을 신청했고 /‘영주권/’을 신청했다. 조유산과 양향빈이 미국으로 도주한 후 사람을 찾아 자기들을 도와 법적 처리를 하도록 부탁해 그들이 종교 명의로 전파 활동을 해도 미국에서 법에 저촉되지 않게 되었다며 “현지 관련 부처와 협력하여 해결 방법을 강구하여 합동 타격을 실시할 것이다”고 국가 관련부처 관계자가 /‘환구인물/’ 잡지사 기자에게 언급했다.
현재 조유산은 미국 뉴욕의 한 호화 별장에 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미국의 법을 지키고 은거하고 있지만 사실은 홍콩과 한국을 터미널로 선정하여 이 두 곳이 중국 대륙과 거리상 가깝고 경제교류가 잦으며 인적 내왕이 많은 우세를 이용하여 중국 대륙의 전능신교 활동을 계속 원격 조종하고 계속 재물을 갈취하고 대대적인 포교 활동을 감행하고 있다. 2012년 산동 /‘목축구(牧区)/’에서 그에게 바친 /‘봉헌금/’만 하더라도 4400만원에 달했다. 전능신의 영향력을 끊임없이 확장하기 위해 2013년 1년에 1000만원 넘게 들여 홍콩의 여러 중, 영문판 신문들에 광고를 내고 도로변의 노점을 구입하여 행인들에게 전능신 선전자료를 배포했다.
/‘한가/’한 사람을 조준하고 /‘종말일/’을 퍼뜨렸다
기자가 하북성 무급(无极)현에서 취재 시 기독교를 믿는 한 노인이 “전능신교는 우리처럼 예배당에서 광명정대하게 모여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문을 닫고 남 몰래 모여 허튼소리 치며 기독교를 왜곡하고 나쁘게 전파한다”고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무급현 사교문제 방범 처리 영도소조 판공실 관계자는 /‘환구인물/’ 잡지사 기자에게 무급현에 전능신교의 활동이 실존하며 초원 유혈사건 후 관련부처에서 엄밀한 조사를 통해 상황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환구인물/’잡지사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전능신교의 전파 특성에 유의했다. 전능신교의 신도들 중 백수거나 집에서 놀고 있는 여성들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도시와 멀리 떨어진 시골에 전능신교가 상대적으로 활발히 전파되고 도시와 가깝거나 경제가 상대적으로 발달된 지역은 전능신교의 종적을 찾아볼 수 없다. 한 마을 치안 담당이 기자에게 “마을 사람들이 다 일 하느라 바쁜데 언제 한가해서 그런 이상한 교를 접촉할 시간이 있겠는가”고 말했고 시내에서 점포를 경영하고 있는 다른 사람도 옛날 편벽한 시골에 살 때 전능신교를 들은 적이 있지만 점포를 꾸리느라 시내로 온 후 다시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가관련부처에서도 이런 상황을 입증했다. 관련부처의 정보에 의하면 최근 몇년간 전능신교가 광대한 농촌지역에서 신속히 퍼져 일반 백성의 신앙에 심한 영향을 끼쳐 농촌사회 기초를 침습하고 있다. 어느 마을의 당서기가 전능신교 성원인데 재임 기간 촌 위원회 간부 전체를 입교시켰고 마을 인구 70%를 전능신교에 가입시켰다.
2012년 /‘세계종말/’ 요언이 유행되면서 전능신교가 급속히 전파되었다. 2012년 12월 13일 전후, 하남성의 광수(广殊)향, 나진(罗陈)향, 은붕(殷棚)향 등 향진에 전능신교 활동이 맹활약하고 전능신교 교의를 선전하기 위해 가정 방문을 오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광산현 나진향 금성(金星)촌의 김국주(金国珠)와 다른 여성 신도는 추붕촌(邹棚村) 집집을 찾아 다니며 “세계 종말이 곧 온다. 지구상 2/3의 인구가 죽게 되는데 신을 믿어야 만 무사할 수 있고 믿지 않는 자는 벼락에 맞아 죽는다”고 선전했다. 민옹군(闵拥军)은 그 영향을 입어 “지구상 2/3의 사람이 죽는데 내가 죽어도 광산(光山)현 사람들이 나를 모르는데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알게 만들겠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거저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2년 12월 14일 7시, 그는 흉기를 들고 문수(文殊)향 진붕(陈棚)소학교에 난입하여 묻지마 칼부림으로 학생 23명과 어른 1명에게 상을 입혔다.
5일 후 하남성 남양(南阳)시 방성(方城)현 광양(广阳)진 북관(北关)촌의 정보생(程宝生)은 /‘세계 종말/’이 온다고 믿고 흉기로 부친, 아내, 아들, 질녀 등 4명을 찔러 숨지게 했다. 정보생(37세)은 정신질환경력자로 전능신교가 말하는 “12월 21일이 세계종말”이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며칠 전에 현장 일을 그만두고 귀가했다. 18일 세계말일이 온다며 도피해 가출하려 하는 그를 가족들이 말렸다고 19일 갑자기 흉기를 들고 가족 4명을 전부 살해했다.
2012년 12월 상순과 중순에 전국에서 전능신교가 폭력으로 법에 항거하는 사건이 무려 30건 발생했다. 공안기관에서 일부 혐의범을 체포하자 부분 신도들이 사법기관을 충격하고 폭력을 행하거나 에워싸고 정좌를 벌이고 포교 기도를 하고 무릎을 꿇는 등 방식으로 사람을 석방하라고 협박했다. 2012년 12월6일부터 14일 까지만 해도 강서성의 구강(九江), 평향(萍乡), 섬서성의 위남(渭南), 하남성의 정주, 신양(信阳)등 많은 곳에서 신도들의 논란사건이 발생하고 수 명의 경찰이 부상을 당하고 경찰차 여러 대를 뒤집어 엎었다. 그 지역의 파출소도 충격을 받았는데 최고로 참여자가 수 천명되는 난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추계에 따르면 2012년 10월 12일- 25일 사이에 전국에서 4365건의 전능신교 관련 사건이 발생했다.
전능신교의 발전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993년-1995년 발전초기, 전능신교는 “전능신 실태 파악, 길 트기 세칙”을 발표하고 소위 “전단계 작업 취지”를 제정했다. 즉 국내 본토 교회 /‘로지방(老地方, 기독교신자들 모임 장소)/’과 /‘호함파/’에서 성원을 확대하고,/‘로지방/’신도들의 지나친 보수성과 /‘호함파/’의 인식상 혼란과 체계적인 이론 기초가 부족한 약점을 이용하여 그들이 /‘여 그리스도/’의 관점을 접수하도록 유도했다. 이 단계의 전능신교의 홍보수단은 비교적 조잡하고 쉽게 바닥이 드러났다. 주요 수법으로는 기독교신도를 통해 현지에서 인지도가 있고 외출 중인 전도사의 가정 주소를 알아낸 후 문틈으로 전단지를 밀어넣고 가끔 지폐를 그 속에 끼여 넣기도 하고 나중에는 상대방을 연금해 놓고 여색으로 유혹하고 기회를 노려 사진을 찍어 협박하는 수법을 채용했다.
1995년 후 전능신교는 성경에 대한 이해가 확고하지 못한 대학생 신도들과 부분 비즈니스 인사들을 포섭해 조직원의 문화적 수양을 높이고 경제 수입을 올려 조직의 활동에 편의를 제공했다. 그 후 전능신교는 도시로 확장하고 포교 대상을 현임 공무원이나 지식분자들 쪽으로 치중하는 흔적을 보이기도 했다. 전능신교의 “교회 가입접수 원칙”에 “간부나 과학기술 교육인원에 대해서는 더욱 큰 인내성을 가지고 이끌어야 한다”,“일단 진리에 진입하면 그들 모두가 유용한 인재이다”고 언급됐다.
2001년 후 전능신교의 독성 종양이 티베트 외의 모든 성, 시, 자치구와 홍콩, 마카오 특별행정구역까지 확장되었고 수단이 한결 은밀하고 흉악해져 작업목표를 /‘이냥 식량(二两粮)/’, /‘문도회(门徒会)/’, /‘4복음파/’, /‘영령교(灵灵教)/’등 기타 사교조직으로 돌렸다. 이런 사교조직들은 이론 기초가 견실하지 못하거나 문제들이 존재했으므로 전능신교의 유혹과 협박에 못 이겨 최종 대부분 전능신교로 편입되었다.
한편 전능신교는 해외에서 현지 화교 단체를 목표로 미국, 캐나다, 한국,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지에 지부를 설립했다. “중국종교보고(2013)”의 데이터에 따르면 전능신교는 홍콩에서만도 이미 신도2000여명을 포섭했다. 초원 유혈사건이 발생한 후 대만의 기독교계는 양안(两岸)이 공동으로 전능신 단속에 협력할 것을 촉구했다.
엄밀한 등급 구조, 체계적인 금품 갈취 절차
전능신이 신속히 만연될 수 있는 기반은 체계적인 엄밀한 등급 구조이다. 교주 조유산은 자신의 /‘교무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여러 부처를 설치했다. 1993년부터 조유산은 전국을 중원구(발원지 또는/‘성지 석안(锡安)/’이라 함), 화북구, 화동구, 동북구, 서북구, 화남구, 서남구 등 크게 7개의 /‘목축구/’로 분할하고 /‘목축구/’마다 /‘편(片)/’을 설치하고 /‘편/’ 아래 또 교회를 설치했으며 조직 각 층에 전문 선교사를 두어 신도를 포섭하도록 했다. 2006년, 조유산은 하남성에서 집회를 조직하고 자신을 /‘성령이 사용하는 사람/’으로 승급시켜 권력 피라미드의 정상에 올려놓았다. 2012년 5월, 전능신교는 다시 전국을 호광(湖广), 절민(浙闽), 천귀(川贵), 소환(苏皖), 전예(全豫), 진기(晋冀), 섬감(陕甘), 산동, 요동(辽东) 등 크게 9개 /‘목축구/’로 재분할했다.
정부의 타격에 대응하기 의해 조유산은 목숨을 걸고 /‘영업팀/’을 강화했다. 우선 컴퓨터팀과 번역팀을 구성하고 뒤이어 문자 수정팀, 교정팀, 디자이너팀. 낭송팀을 구성하고 6명의 감찰원을 임명하여 소위 국내 핵심 영도기구/—/‘감찰팀/’을 설립했다. 이런 팀이 신도들을 통제하고 신도들에게서 갈취한 재물을 횡령했다. 이런 엄밀한 조직 테두리안에서 조유산이 신중들에게 정신적인 통제를 실시했다.
전능신교는 최대한 신도들의 능력을 발휘시켜 매개인의 연령, 직업, 학력 등에 관계없이 모두 /‘여 그리스도/’를 위해 움직이도록 했다. 문화지식 소유자를 중점으로 양성시키고, 젊은 여성을 미끼로 타인을 입교하도록 유혹하고, 노인과 어린이들은 혈육의 정으로 식구들을 입교하는데 이용하고, 사람들을 입교시키기 위해 심지어 집단사기, 전통 교회 잠입, 집단 납치, 유괴 등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후과를 따지지 않는 이런 미친듯한 확장 수단은 전능신교의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전능신교 성원들은 입교 전에 모두 과격한 언어로 /‘보증서/’를 써야 하는데 이를테면 “교를 믿지 않으면 벼락 맞는다”, “하루라도 타인에게 설교하지 않으면 비명에 횡사 당한다”등을 적는다고 전능신사건 수사 경찰이 환구인물 잡지사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전능신교는 또한 /‘법 집행/’팀을 구성하고 탈퇴하려 시도하는 신도들에게 징벌을 가했다. 2010년 하남성의 소학생이 짚가리에서 변사체로 발견됐고 발바닥에 번개 표기가 찍혀있었는데 조사 결과 그의 가족이 탈퇴 의도를 보여 전능신교가 보복을 실행해 무고한 어린애를 살해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능신교는 조유산이 경제 이익을 추구하는 중요 도구로 완벽한 재물 갈취 절차가 있으며 “신을 위해 일하자면 신에게 일체를 바쳐야 한다”는 명의로 신도들로부터 봉헌금을 받아냈다. 수취 시간은 보통 집회 때이며 재물은 층층이 위로 바치며 “수금 반납조항” 원칙을 수행하여 봉헌금은 수금자가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상급에 바치는 것임을 증명했다. 정주의 한 신도의 가족이 시어머니가 가져온 수령증을 봤는데 “100원 아니면 200원이었다”고 환구인물 잡지사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한편 전능신은 수입이 적은 사람들에게 작은 선심을 베풀어 생필품을 나눠주고 그들의 경제상황을 개선하고 어려움을 해결해 준다는 등 명목으로 감정을 포섭하고 입교 후 사교 사상을 침투시켜 다른 사람을 포섭하도록 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