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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신’ 이 부친과 아내 목숨 앗아갔다(포토)

2011-12-02 기원 하 다:Kaiwind Auteur:풍입충

풍입충(冯立忠)이라 부르며 산동성 박흥(博兴)현 금추(锦秋)가도 서갑(西闸)촌에 살고 있다. 아내 허군(许君)은 나보다 세살 아래며 친정이 이웃 마을에 살았다. 우리는 1993년 중매로 만나 1995년에 결혼했다. 결혼후 나는 내내 외지에서 장사를 했고 아내는 고향에 남아 농사를 짓고 부모를 모시며 살았다. 수입이 괜찮아 근심걱정없는 나날을 보냈다. 1988년 딸애 풍숙기(冯淑奇)가 출생, 화목하고 행복한 우리 가정에 더없는 기쁨을 안겨줬다.

이대로 계속 살았다면 내 일생은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2002년 인근에 산다는 /‘실제신(实际神)/’교도가 불현듯 우리집에 몇번 다녀간후 부터 아내는 몰라보게 변했다. 농지에서 농약을 뿌리거나 잡초를 제거하는 그의 부지런한 모습을 더는 찾아볼 수 없고 종일 집에 박혀 기도를 올리지 않으면 사람들을 입교에 동원시키느라 동분서주했다. 지어 연이어 몇달씩 애를 할머니 할아버지께 맡기고 동네방네 선교하러 다녔다.

네살짜리 딸애가 38도 고열을 앓아도 그는 생강물을 끓여 설탕을 타 먹이고는 이튿날 열이 내리지 않았는데도 부랴부랴 선교활동에 나섰다. 끝내는 할머니가 손녀를 데리고 보건소를 찾아가 점적주사를 맞혀서야 겨우 열이 내렸다.

아내는 나와 가족들에게는 무관심했지만 선교에는 최선을 다했고 침식을 잃고 분초를 다퉈가며 설쳤다. 허기차면 과자 몇개로 대충 요기, 목 마르면 생수병으로, 졸리면 아무데나 들려 잤다. 짧은 1년 남짓한 동안에 아내는 실제신의 은총을 입어 천당으로 올라가는 /‘여권/’을 받기 위해 실제신 조직에 돈과 물품, 여비로 가정저축 십여만원을 상납했다.

아내는 내가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고 지어 악담으로 대답했다. 나는 고통을 혼자 삼키며 언젠가는 정신차리는 날이 있겠지를 기다릴 수 밖게 없었다.

2004년 병중이신 부친이 이런 황당한 나날을 참을 수 없어 아내 권고에 나섰다가 아내의 난폭한 거절을 당하고 손찌검까지 당했다. 놀라고 분한 병중이신 부친은 내가 외지에서  돌아오기 전에 비통과 원한을 품고 세상을 하직했다.

부친의 장례를 치르고 난후 심한 고민끝에 이혼을 결심했다가 그래도 딸애에게는 친엄마가 있어야 될 것 같고 가정을 지켜야 될 것 같아 최종 그를 구원하기로 다시 결심을 내렸다. 결심후 짬짬히 그를 권하기 시작했다. 결혼초의 행복과 즐거움, 딸애의 귀여움, 그리고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동경과 기대/…/…그의 생각은 변하기 시작했다.

“나도 우리 가정이 잘 되기를 바라는 생각에서, 온 가족이 천당으로 갈 수 있는 /‘여권/’을 얻기 위해 몇 년간 적잖은 고통과 고생을 겪었어요.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헤매며 다녔고 밭도 다 묵혔으며 십여만원의 저축도 다 날렸어요. 원래 나를 친근하게 대해주던 마을 사람들마저 지금 나를 외면하고 있고 염오하고 있어요.”

“땅은 묵혔다가도 다시 심으면 되고 돈은 쓰고나면 다시 벌면 돼, 우리가 열심히 살고 더는 /‘실제신/’과 엮기지 않는다면 마을 사람들도 예전처럼 친근하게 대해 줄거야.”

이렇게 나와 가족들과 친지들의 반복되는 권고끝에 아내 허군은 더는 실제신과 내왕을 않겠다 다짐했다. 나는 아내가 반복할가 걱정되어 아내와 딸애를 처가집에 보내 장인장모에게 그들을 잘 지켜달라 부탁하고 집을 떠났다.

어느덧 2005년이 됐다. 구정후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을 더 갖기 위해 그리고 그가 정말로 완전히 생각을 바꿨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는 외출 시간을 뒤로 미뤘다. 몇일동안 살폈지만 아내에게서 이상한 기미를 발견하지 못했다. 홀로 계시는 70여세 고령의 노모가 사람이 필요했고 농사일도 해야 됐으므로 장모, 장인와 의논하고 아내와 딸을 우리집에 다시 들어와 살게 했다.

장사에 바쁘면서도 어쩐지 항상 걱정돼 집에 돌아오는 차수가 이전보다 잦았다. 2005년 10월 17일 나는 끝내 아내 허군이 자살사망했다는 비보를 받았다. 아내 후사를 막 끝낸 날 노모가 고통스레 입을 열었다. 실제신이 우리집에 와 아내에게 “네가 감히 조직을 이탈한다면 그럼/…/…네 딸을 조심하거라” 등 따위 말을 남겼고 그후부터 아내가 매일 우울해 있더니 최종 자살을 했던 것이다.
 
 

2005년 10월 17일, 허군 흉기로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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