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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을 알아보다

2015-01-28 기원 하 다:cri

입춘(立春)은 24절기 중 첫째 절기로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절기이다. 입춘은 간지력(干支歷)에서 새 간지년 기재 및 인월(寅月,음력 정월)의 시작이기도 하다. 보통 양력 2월 4일 경에 해당하며 태양의 황경(黃經)이 315도일 때로 이날부터 봄이 시작된다. 올해 입춘은 2월 4일(음력 섣달 열 엿새) 11시 58분 27초에 든다.

입춘은 중국의 중요한 전통명절의 하나이다. "입(立)"은 "시작"을 의미한다. 진(秦)나라때부터 중국에서는 줄곧 입춘을 봄철의 시작으로 간주했다. 입춘은 천문학적으로 구분된 것이다. 따스한 봄에는 새가 우짖고 꽃향기 그윽하며 파종과 경작이 한창인 시기이다. 입춘부터 입하(立夏) 사이를 통털어 봄이라 부른다.

입춘은 한개 시간점일뿐만 아니라 한개 시간대이기도 하다. 중국 고대에서는 입춘의 15일을 3후(3候)로 나눴다. "1후에는 동풍이 땅을 녹이고 2후에는 벌레가 깨여나며 3후에는 물고기떼가 노닌다."는 표현을 찾아볼수 있다.

입춘은 언제 드나?

입춘은 해마다 양력 2월 3일-5일에 든다. 하지만 음력에서는 입춘이 드는 날자가 고정되지 않으며 보통 정월 초하루를 전후로 입춘에 든다. 2015년을 일례로 입춘은 음력 섣달 열 엿새인 2월 4일에 든다.

입춘에는 어떤 민속행사가 열리나?

입춘에 기념행사를 펼치는 역사는 오래전부터 이어졌으며 일찍 3000년전에 이미 나타난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농사를 책임지는 봄신으로 불리우는 망신(芒神)에게 제를 지내는 형식으로 전해졌다.

문헌기재에 따르면 주(周)나라 때 입춘을 맞는 의식은 대개 이러하다. 입춘전 3일부터 황제는 재계(齋戒)에 들어간다. 입춘 당일에 황제는 신하들을 거느리고 동쪽 8리 떨어진 교외에서 봄을 영접하고 풍수를 기원한다. 무엇때문에 동쪽 교외에서 봄을 맞는 것일가? 그것은 봄맞이 행사에서 제를 올리는 구망신(句芒神)이 동쪽에 있다는 설이 있기 때문이다.

후세에 와서는 봄맞이 행사의 지점이 동쪽 교외에만 그치지 않았다. 송(宋)나라의 "몽량록(夢粱錄)"에 따르면 "입춘에 재상 신하들이 입궐하여 축하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봄맞이 행사장소가 이미 교외에서부터 궁궐로 이동했으며 관리들간의 상호 배알로 되였음을 의미한다.

청(淸)나라에 와서 봄맞이 의식은 사회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전국민이 참여하는 중요한 민속 행사로 되였다. "연경세시기(燕京歲時記)" 기재에 따르면 "입춘에 하루 앞서 순천부(順天府) 관원들이 동직문(東直問)밖 1리 되는 공지에서 봄을 맞는다. 입춘 당일에는 예부(禮部)에서 춘산보좌(春山寶座)를 마련하고 순천부에서 춘우도(春牛圖)를 올린다. 예를 마치고 돌아온후 춘우를 부수는데 이것을 일컫어 타춘(打春)이라 한다."고 적혀있다.

청나라 <<청가록(淸嘉錄)>>에서는 입춘에 제를 올리는 행사는 비록 정월 초하루의 세조(歲朝)와는 비기지 못하지만 동지(冬至)보다 성대한 규모로 진행된다고 적고 있다.

(1) 영춘(迎春)

영춘은 입춘의 중요한 행사이다. 우선 참답게 준비를 하고 리허설을 하는데 이것을 연춘(演春)이라 부른다. 영춘행사가 끝난후에야 입춘 당일에 정식으로 봄을 맞는 영춘 행사를 펼칠수 있다. 영춘은 입춘 하루전에 진행되는 행사로 봄과 구망신을 맞이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영춘행사에는 춘궁(春宮)을 설치하는데 각설이나 창기(娼妓)가 이 역할을 맡고 입춘이 드는 시간을 예고한다. 과거에는 해마다 책력(皇歷)에 망신과 춘우도를 실었다. 청나라 말<<점석재화보(点石齋畵報)>>의 "귀자보춘(龜子報春)","동고구역(銅鼓驅疫)"등은 당시 입춘이 아주 중요한 행사로 간주되였음을 보여준다.

 (2)교춘(咬春)

입춘에 먹는 음식으로는 주로 춘병(春餠)과 무우,오신반(五辛盤) 등이 있다. 남방에서는 교춘행사로 춘권을 많이 먹는데 거리마다 춘권을 파는 장사군들을 쉽게 찾아볼수 있다.

여기에 두가지 주의 할점이 있는데 하나는 과거에 교춘은 바로 무우를 먹는것이라고 여겼는데 사실 춘병을 먹는것도 포함된다. 둘째는 토춘(討春)이란 사실상 봄을 맞는다는 뜻이다. 무엇때문에 무우를 먹어야 하는가? 가장 보편적인 설법은 춘곤증을 이길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교춘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춘곤증을 이겨내는 외에도 기를 통하게 할수도 있다고 한다.

오신반은 다섯가지 매운 음식으로 구성되였는데 파와 마늘,고추,생강,겨자 등을 조합해 만든 조미료이다. 입춘후 사람들은 화창한 날씨에 나들이를 많이 나가는데 이를 출성탐춘(出城探春),답청(踏靑)이라 부른다. 이 역시 봄 나들이의 중요한 형식이다.

(3)구망신(句芒神)

구망신은 춘신(春神)으로 초목신과 생명신으로 불리운다. 구망은 사람 얼굴에 새의 몸을 갖고 있다. 입춘에 민간에서는 춘사(春事)를 펼친다.

주(周)나라때부터 동당(東堂)을 설치하고 봄맞이 행사를 진행했다. 절강 (浙江)일대에서는 입춘 하루전에 영춘 행사를 펼친다. 이날 구망신을 이고 성을 떠나 산에 오르는 동시에 태세제(太歲祭)를 지낸다. 태세는 일년의 길흉을 관리하는 신이다.

농촌에서 도시로 들어간후 사람들이 모여들어 관람하면서 오곡을 뿌리는데 이를 간영춘(看迎春)이라 부른다. 산동(山東)에서는 구망제를 올릴 때 구망의 의복에 따라 한해의 기후상황을 예측한다. 모자를 쓰면 봄이 따뜻할것으로 예견하고 맨 머리이면 추울 것으로 예견한다. 신을 신으면 봄에 비가 많을것으로, 맨발이면 비가 적을것으로 예견한다.

기타 지역에서도 "춘풍득의(春風得意)" 등 연화(年畵)를 많이 붙인다. 광주(廣州)지역에서는 입춘 전후에 북을 두드리면서 역병을 쫓고 평안을 기원한다.

 (4)편춘우(鞭春牛)

편춘우는 또 편토우(鞭土牛)라고도 부른다. 편춘우 시속은 당나라와 송나라때에 성행하였다. 특히 송인종(宋仁宗)이 <<토우경(土牛經)>>을 반포하면서 편춘우 풍속이 널리 전파되였으며 민속문화의 중요한 내용으로 자리잡았다.

편춘우의 의미를 살펴보면 한기를 보내고 춘경을 추진한다는 의미외에도 일정한 요술(巫術)적 의의도 갖고 있다. 산동 민간에서는 흙으로 만든 토우를 부수면 사람들이 앞다투어 춘우토(春牛土)를 챙기는 것을 창춘(抢春)이라고 부른다. 창춘은 소머리를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길한 운을 얻는다고 여긴다. 이밖에 차를 채집해 춘우제를 올리는 행사도 있다.

호북(湖北)지역에서는 귀자보춘(龜子報春)행사가 열린다. 책력에 춘우도가 있는 외에도 각지의 연화에서도 춘우도를 쉽게 찾아볼수 있다. 춘우도는 춘절기간의 길상도(吉祥圖)로 간주된다.

절강(浙江)지역에서 춘우를 맞는 형식도 이색적이다. 이곳에서는 춘우를 맞을시 춘우를 향해 차례로 머리를 조아린다. 예가 끝나면 사람들이 한데 모여들어 춘우를 부수고 춘우토를 챙겨간다. 집에 도착한후 춘우토를 외양간에 뿌린다. 이로 볼때 편춘우는 또 일종의 번식요술로 춘우토를 외양간에 뿌려 소의 번식을 추진한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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