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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전백평(田佰平)

2010-03-29 기원 하 다:CRI

   (사진: 서예가 전백편)

 

한 서예가의 작품이 유인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그야말로 전통과 현대의 멋진 결합이였습니다. 베이징서예가협회 부회장인 전백평이 바로 이 행운의 주인공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작품은 두번이나 우주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입니다.

 

전백평은 1958년 중국하남성에서 태여났습니다. 그는 서예가일 뿐만 아니라 악기, 곡예, 무용에도 능합니다. 그는 이런 예술이 모두 서예에 융합돼 자체의 풍격을 형성한다고 믿습니다.

 

"서예는 무성의 음악인데, 무용의 아름다움도 묻어있고, 건축의 웅장함도 스며져 있습니다. 서예는 바로 미에 대한 이해를 자신이 배운 당비송첩(唐碑宋貼)의 기교에 가미시키는 것인데, 이런 과정에서 자신의 풍격도 형성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의 풍격은 전통적인 왕희지(王羲之), 조맹부(趙孟俯)를 답습한 기초위에 음악과 무용에 대한 저의 이해를 가미시킨 것입니다. 저는 단정함과 수려함을 많이 추구하고 있습니다."

 

전백평이 말하는 왕희지, 조맹부는 모두 고대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들입니다. 사람들은 왕희지를 존경해 "서성"(書聖)으로 모시고 있는데 그의 풍격은 "변화"를 의미합니다. 간단한 건너금 하나를 예로 들수 있는데 기필(起筆)과 수필(收筆)이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조맹부는 부드러움과 수려함과 유연함을 우선 강조했습니다.

 

(사진: 전백평의 서예 작품)

재미있는 것은 서예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도 붓을 들면 자신의 풍격을 보여주는 붓글씨를 쓸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 글을 서예대가들의 작품속에 끼워넣으면 간혹 어떤 사람들은 이를 대가만의 독특한 풍격인줄로 이해하고 표방한다는 것입니다. 전백평은 이런 잘못된 부분은 하루빨리 시정되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베이징서예가협회에서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그는 이를 위해 서예를 평가하는 기준에 대해 우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멋대로 쓰는 것도 풍격입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 서예분야 전체가 이런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할수 없습니다. 때문에 전통에 입각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 학술계를 포함해 '선인들에게서 배우되 그들에게 구애는 받지 말자'는 표준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1993년부터 시작해 일본에서 연속 다섯차례나 개인전을 개최해 오고 있는 전백평은 일본 각계 인사들의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몇년간 그의 많은 작품들은 또 싱가폴 대세계광장과 일본 중일미술소장관에 소장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서예 작품이 어떻게 외국관객들을 감화시키는지 전백평의 소개를 들어봅니다.

 

"외국 관객들을 감동시킬수 있었던 것은 우리들이 상형 문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산수(山水)라는 두 글자를 쓴다고 합시다. 산자를 저는 붓으로 산봉우리를 그리듯 아주 짙게 씁니다. 그러면 보는 사람에게는 바로 세개의 큰 산으로 다가갑니다. 먹물이 밖으로 번지면서 진짜 산꼭대기를 방불케 합니다. 아래쪽에 수(水)자는 초서로 쓰는데 위쪽 산(山)자 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이 가는 편입니다."

 

상형을 빼고도 중국의 전통 서예는 붓놀림을 이용한 글자의 굵기 조절과 먹물의 농담(濃淡)을 조절하는 오색의 표현으로 많은 외국인들의 호기심을 유발했습니다. 붓의 움직임으로 변화의 다양함을 표현하고 먹물의 농담으로 오색의 느낌을 준다는 자체가 이들에게는 한없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먹으로 다섯가지 색을 표현한다는 것은 물의 량으로 먹물의 농도를 조절해 다층차의 농담과 건습(乾濕) 형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진: 공연행사에서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서예가 전백평) 

 

전백평은 다년간의 대외 서예교류를 통해 중국의 전통 서예가 국제적으로 갈수록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2000년이 이런 결과를 도래하게 만든 분계선이라고 말합니다.

 

" 저는 1993년부터 중국서예의 대외 교류를 체험하기 시작했는데, 2000년이 하나의 분계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2000년부터 갈수록 교류 환경이 좋아졌습니다. 저는 그 대표적인 사례가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수묵화와 서예 예술의 매력이 잘 표현되였습니다."

 

2005년에 발사된 중국의 우주선 "신주6호"는 전백평이 쓴 대련(對聯) "호기장산하(浩氣壯山河)조국신전천팔극(祖國神箭穿八 極),기공휘우주(奇功輝宇宙)화하아녀약오성(華夏兒女躍五星)"을 싣고 115시간동안 우주를 선회하고 귀환했습니다. 2008년에 발사된 "신주7호"에도 전백평의 대련 "신전천우주(神箭穿宇宙), 기운관장홍(氣韻貫長虹)"이 실려있었습니다. 이런 두차례의 영광과 관련해 전백평은 모두 자신의 작품이 서예와 중국 기타 전통 문화 형태의 결합을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저의 서예 작품이 '신주6호'에 탑재됐었는데 그때 저는 대련을 썼었습니다. 저는 축복을 기원하는 '복'자 등의 한글자로는 뭔가 모자란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주6호'가 제 작품을 선택하자 뒤이어 '신주7호'도 또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때도 저는 대련을 고집했습니다. '신전천우주(神箭穿宇宙), 기운관장홍(氣韻貫長虹)', 두 마디 첫글자가 각기 '신(神)'와 '기(氣)'자인데 '신주7호'의 줄임말인 '신7(神七)'과 같은 발음입니다. 이런 장두(藏頭)체의 기교 때문에 재선택 되였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신주6호'에 탑재됐던 전백평 서예가의 작품)

중국에서 현재 서예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인원수가 비교적 적은 편입니다. 그 때문에 서예도 전승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전백평은 어려서부터 외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으며 서예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만 먹으면 30살에 서예 공부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말합니다. 꼭 어려서 시작해야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서예는 어려서 시작하면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6살에 시작한다고 하면 이해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럴 바에는 15살에 시작하는 것이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더 늦어서 20살, 30살에 시작해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30살에 시작해도 서예가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론을 설명하면 바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6살짜리는 이렇게 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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