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성 남양(南阳)시 완성(宛城)구 한총(汉冢)향 만장(万庄)촌에 살고 있는 왕금서(王金瑞, 52세, 여)라 합니다. 전에 저는 법륜공 신도었습니다. 청도 “5.2혹형 위조사건”이 언론사들에 의해 피력된 후 요언 날조자 법륜공에 대한 사람들의 의론이 분분한데 사실 저는 요언 날조와 악의적인 모독 등에 능한 법륜공의 실체를 언녕 체득했었습니다.
저는 법륜공이 날조해 낸 “3694건 박해 치사 사건” 중의 한건에 대한 진상을 이야기하렵니다. 아래 화면은 법륜공 소속 홈페이지에 실린 기사를 스크린 샷한 것인데 하남성 남양 법륜공 성원 번연려(樊艳丽)가 박해로 사망했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진상은 어떠한가요?
번연려와는 10여전 법륜공을 믿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그녀의 사정과 사망 진상에 대해서 저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1973년 생인 번연려는 하남성 철서 백장(白庄)촌에 살았고 남양(南阳)면방직공장에 근무했으며 시가집이 남양시 동관(东关) 자죽림가(紫竹林街)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일찍 1994년 법륜공 흥기 초기부터 법륜공을 믿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번연려는 워낙 마른 편인데 조갑진균증이 있었습니다. 조갑진균증이란 실은 별로 큰 병도 아닙니다. 그러나 3교대로 일을 해야 되는 방직공장에 근무하다보니 힘들고 밤을 새울 때가 많았습니다. 밤 작업을 한 날은 낮에 집에서 휴식해야 되는데 법륜공을 믿느라 바빴고 때를 건늘 때도 많았습니다. 자죽림가에 위치한 그녀의 집이 법륜공 연공장소로 이용되다 보니 아침 8시에 공장에서 야근을 마치고 피곤이 몰려 핏발이 선 눈으로 귀가하면 집안에 법륜공학원들로 꽉 차 앉아 밥을 먹거나 쉴 새도 없이 연공에 다시 투입됐습니다. 쌓이고 쌓인 과로와 영양 부족으로 그녀는 또 빈혈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2000년부터 빈혈이 심해지기 시작했고 날로 여위고 얼굴이 창백했으며 발톱이 회색에서 백색으로 변했고 손톱마저 백색으로 보기 흉하게 변했으며 걸음을 걸어도 휘청거렸고 연공 현장에서 여러번 쓰러졌습니다. 법륜공을 연공하는 사람의 몸은 동으로 만들고 철로 주조된 것이라더니 겨우 30세에 왜 이 모양인지 이상했습니다. 제가 의문을 제출하자 번연려, 반금봉(潘金凤)과 유부영(刘富荣), 장옥련(张玉莲) 등이 사부에 대한 정성이 모자란다 저를 질책하며 훗날에 지옥에 가게 것이라 하기에 놀라 입을 다물었고 반금봉와 함께 번연려를 도와 집안 일, 무거운 일들만 수걱수걱 해줬습니다. 번연려는 집에서 며칠 쉬고 제때에 밥을 챙겨 먹으니 건강이 많이 좋아져 얼굴색도 보기 좋아졌고 호흡이 균일해지고 쓰러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금 낫자 또 나가 전단을 인쇄하고 배포하고 정주, 서창 등 지를 다니며 선전, 결과 번마다 그녀는 밖에서 쓰러져 실려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병원치료와 약을 거부하고 우리 법륜공 신도들한테서 발공 치료를 받았고 이틀 정도 쉬고 병이 좀 나아지면 법륜공을 믿은 덕이라 믿고 또 나가 홍법과 호법을 진행했고 이를 여러번 번복했습니다.
2005년 5월, 번연려, 반금봉과 저 셋은 현금 1200원을 걷어 1원짜리 지폐로 교환해 뒷면에 “법륜대법이 좋다”는 글을 찍어 배포하러 다니다 공안에 잡혔고 인민폐 손상, 사회질서를 문란시키는 홍보품을 배포했다는 원인으로 15일간 행정구류를 당했습니다.
구속기간 동안 저는 몹시 무서웠습니다. 법륜공 홈페이지에 중공이 법륜공학원을 아주 잔혹하게 혹형으로 못살게 굴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며 /‘호랑이 의자/’, /‘고추 물/’, 전기 곤봉 등으로 영화나 TV에서 나오는 일본놈이 중국인을 대하는 장면보다 더 잔인하다고 했으니깐요. 그런데 실지로 구류소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먹고 마시는 건 집에 있을 때보다 좋았고 기숙사가 깨끗하고 샤워도 할 수 있어 밖에 있을 때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밖에서 법륜공을 선전하고 진상을 알리러 다니느라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었어도 밤이면 어느 신도네 집 마루나 소파에 쓰러져 되는 대로 비집고 잠을 잤고 입에 맞는 음식은 커녕 끓인 더운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점차 정신적으로 동요되기 시작했고 법륜공이 하는 말이 진실인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보름동안 구류소에서 번연려의 빈혈증을 감안하여 음식으로 생혈보혈조리를 해준 덕에 얼굴색이 불그스레해졌고 걸음을 걷거나 말을 해도 정신이 나 했습니다.
돌아온 후 법륜공 신도인 선흠환(单欣环)이 저희들을 찾아와 구류된 소식을 듣고 박해를 받았다는 기사를 썼는데 경찰의 이름을 제공하라 했습니다. 기사를 훑어봤더니 저와 번연려, 반금봉이 어떻게 불법으로 구속됐고 경찰이 어떻게 욕하고 때리고 박해했으며 머리를 끄집어 침대 다리에 묶어두고 밥도 안 먹여 번연려가 빈혈증에 걸렸다고 적혀있었습니다. 기사를 본 제가 놀라며 “정부에서 우리를 너무 잘 대해줬다. 때리거나 욕하거나 박해하는 이런 일들은 전혀 없었다”고 하자 “없다고 날조 못하냐, 사부님이 우리보고 진상을 말하라 했는데 설마 너희들이 중공에 매수돼 사부님을 배반하려는건 아니겠지”라고 선흠환이 말했습니다.
2008년 10월 14일, 번연려가 재차 쓰러졌는데 의사는 패혈증이 유발돼 생명 위험이 크다 했습니다. 코와 이발에서도 피가 흘렀지만 번은 자기를 유부영의 집 지하실로 옮겨달라 부탁했습니다. 저와 장옥련, 유부영 그리고 그의 남편 등 10여명의 법륜공 공우들이 계속해서 그에게 발공치료를 했지만 아무리 발공하고 아무리 “법륜대법이 좋다”를 념해도 “신적”은 나타나지 않았고 번은 고통속에서 10여일간 몸부림 치다 세상을 떴습니다.
그 10여일동안 저는 줄곧 그녀의 옆을 지켰고 십여명의 공우들과 함께 발공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법륜공성원인 반금봉이 차 사고로 식물인이 돼버렸고 선흠환이 운남에서 /‘홍법/’을 하다가 갑자기 뇌혈전으로 드러눕게 됐습니다/…/…
법륜공이 인과보응을 늘 강조하는데 번연려의 죽음, 반금봉의 차사고, 그리고 선흠환의 병, 이 모든 것이야말로 /‘인/’으로 인한 /‘악과/’였습니다. 법륜공이 번연려와 그녀들의 비참한 운명을 빚어냈습니다.
그런데 가소롭고 격분케도 법륜공 홈페이지에서는 흑백을 전도하고 이를 정부의 박해로 사망된 사건으로 위조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