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평 생전 사진
올해 74살인 학평(郝平)은 흑룡강성 가목사(佳木斯) 비닐공장에 근무하다 퇴직했습니다. 저희들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고 우리는 비교적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천생 성품이 온화하고 착한 학평은 간단하고 조용하게 생활했고 단지 남편이 일찍 세상 뜨고 자식들이 옆에 없어 고독을 많이 느꼈습니다. 가끔 가슴이 갑갑하고 숨이 차 힘겨운 일을 할 수 없었지만 그나마 약을 복용한 덕에 상태 유지에는 별 지장이 없었습니다.
1995년 초여름의 어느 아침, 그는 주택 근처 강변에 나갔다가 숱한 사람들이 단련을 하고 있기에 호기심에 끌려 그리로 다가갔습니다. 이때 한 사람이 자기들이 연마하고 있는 것이 법륜공이란 공인데 이 공은 아주 신기해 매일 수련만 견지하면 사부의 법신이 소업을 도울 수 있어 약을 먹지 않고도 몸을 튼튼히 하고 병을 고칠 수 있다며 반갑게 소개했습니다. 그때부터 학평은 그들을 따라 연공을 시작했습니다.
십여일 후 학평은 몸이 거뜬해지고 여러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 생활이 풍부하고 기분이 즐거웠습니다. 게다가 법륜공을 소개한 사람이 법륜공을 수련하면 이득이 이것뿐 아니라 높은 층차에 오를 수 있고 마지막엔 수련하여 정과를 얻고 성선성불하게 된다 기회껏 그를 유도했습니다. 본래 주견 없고 미신적인 학평은 이런 말에 내심 희열을 느끼며 신선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요행으로 생각하고 수련의 신심을 더 크게 다졌습니다.
1999년에 정부에서 법에 따라 법륜공을 취체한후에도 전혀 납득되지 않은 그는 여전히 집에서 남몰래 연공했고 때로는 동수들을 집에 불러 함께 연공하고 법을 공부하고 체험을 주고 받기도 했습니다.
차츰 저는 그의 건강이 점점 허약해지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행동이 굼뜨고 걸음 걸이가 힘겹고 입술이 파래났습니다. 장기적으로 약을 중단한 원인이라고 제가 귀띰을 했지만 그는 기어이 자신의 업력이 너무 중해서라며 연공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은 소업을 하면 할수록 중해만 가고 많아져 갔습니다. 가슴 갑갑증이 갈수록 더 자주 생기고 다리 부종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갈수록 수척해가는 그를 보고 저와 이웃들이 병원 진찰을 받아보라 권유했지만 그는 번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저희들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2011년의 어느 하루, 학평의 집에 갔던 저는 한담과정에서 그가 방황하고 망설이고 공포를 느끼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사부가 승낙한 /‘20년 원만/’의 해가 아직 1년도 채 남지 않았는데 지금 중단하자니 단념할 수가 없고 더 견지해 정말로 사부의 말대로 원만하고 성선성불(成仙成佛)하여 모든 병이나 재앙이 다 없어진다면 이 인간 고생을 하지 않을 텐데, 그런데 또 수련인은 속인들과 달라서 중도에서 그만 두면 형신전멸하게 될거라 했습니다.
2012년 5.1절 전, 제가 학평언니한테 만두를 갖다 준 그날이 저희들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난 이렇게 오래 동안 집착해 어리석고 우둔한 짓을 많이 했고 헛소리, 못된소리 많이 했다. 생각만해도 후회 막심하다. 연공해서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히 한다더니 17년 동안 연공하면 할수록 병이 더 많아지고 더 중해진다. 사부의 법신이 없는 곳 없고 제자들을 도와 업을 없애고 병을 없앤다더니 난 여태껏 사부의 법신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하물며 법신의 도움으로 병을 고친다는 말이야, /‘20년 대원만/’이라더니 결국은 대바구니로 물을 퍼 올린 격으로 모든 게 다 헛수고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홍지란 놈은 순 사기꾼이야”말을 하다가 비분에 차 “난 연공을 잘못 했다!”목소리를 높이고는 눈물을 비오 듯 쏟았습니다. 제때에 약을 먹고 안되면 병원에 가보라 제가 권하자 그는 병이 자기 몸에 났으니 자기가 안다며 다 틀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2012년 5월 5일, 17년동안 고생스레 원만을 추구하던 학평은 이홍지가 예언한 /‘20년 원만/’의 해에 병이 악화되어 심근경색으로 집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천국세계/’로 원만하지 못하고 수련하여 자신을 저승에 보내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