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에 몸을 담은 동생과 함께 한 필자
저는 중경시 제9인민병원 의사로 일하고 있는 양송(杨松, 1969년 8월 출생)이고 저의 남동생 이름은 양만민(杨万敏, 1971년 11월 출생, 고졸)입니다. 행복하고 화목하던 우리 가정은 법륜공에 짓밟혀 엉망진창이 됐고 그 바람에 동생은 불문에 귀의했습니다.
1998년 3월 동생은 지인의 소개로 법륜공을 접촉했고 인차 심취됐으며 집착스레 속인의 /‘명리정/’을 버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수들과 함께 사부를 추종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동생의 미혼녀 장연(张娟)은 외모도 출중했지만 효도가 극진해 부모들은 훌륭한 며느리감이라 반가와 하셨고 결혼준비에 서둘렀습니다. 그해 11월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그들의 신혼방에 TV, 냉장고, 세탁기, 가구들을 새로 장만하고 신부측에 2만원 예물도 보냈고 이웃들과 친지들에게도 결혼 청첩장 돌리고, 모든 준비를 다 끝냈습니다.1998년 10월 1일은 예정대로 혼례식을 올리는 날이라 축하하러 온 친지들이 구름처럼 몰렸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동수들과 함께 /‘홍법/’을 떠나고 신랑자리를 비웠던 것입니다. 갑지기 터진 일이라 모두가 경황실색했고 제수는 눈물을 흘리며 홀로 예식장에 나타났습니다. 이 상황에 신부측 부모들은 다짜고짜로 딸을 끌고 예식장을 떠났고/…/… 성의껏 준비한 예식이 이렇게 요절되고 저와 부모님들만 남아 뒤수숩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그후 종무소식인 동생때문에 부친은 혈압이 올라 한달 동안이나 병원에 입원했었습니다.
그러던 동생은 이듬해 년초에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1999년 7월, 정부에서 법륜공을 취체, 우리 일가는 그제야 법륜공의 진상을 알게 됐고 지난해에 있었던 결혼을 앞둔 동생의 도피를 연상하며 장본인이 바로 법륜공임을 불현듯 깨닫게 됐습니다. 그후 법륜공을 연공하지 말고 정상생활로 복귀하라는 부모님들의 수차 권고에 동생은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 하면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계속 법륜공을 수련했습니다.
2000년 5월 부친은 집에 숨어 계속 연공하는 동생을 보다 못해 동생의 손에서 <전법륜>을 빼앗아 갈기갈기 찢었습니다. 그 바람에 동생의 광기를 건드려 동생은 미친듯이 안방에 계시는 부친에게 덮쳐들어 와락 밀어냈는데 너무 힘준탓에 부친은 머리를 문에 있는 못에 박고 쓰러졌습니다/…/… 낭자하게 흘러내린 피를 보고 동생은 놀라 어쩔바를 몰라하면서도 “승천, 승천했네”를 중얼거렸고 모친이 부랴부랴 120을 불러 혼미상태의 부친을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과다 출혈로 당일 밤 눈을 감으셨습니다.
동생은 과실살인죄로 5년 징역을 선고 받았고 우리가정은 이때부터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고 제가 어머니를 모시며 어렵게 생활, 가정생활에 보탬을 하려고 저는 알바로 병원청소도 했습니다.
2005년 초, 동생은 형기가 만료되어 돌아왔습니다. 출옥후 동생은 이 가정에 가져다 준 불행을 깊이 뉘우치며 부친의 무덤앞에 굻어앉아 “부모님들께 미안하고 이 가정에 미안합니다. 이홍지가 저에게 피해를 입혔고 저를 육친을 살해하는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참회했습니다.
2006년 8월 동생은 속죄의 마음으로 제가 그렇게 말려도 듣지 않고 결연히 불문을 선택했습니다. 동생은 “형님, 저는 이런 방식으로 부친의 재천의 영령을 위로하렵니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