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수연, 1999년 5월 3일 흉기로 머리 찔러 자살
석수연 일가
유병검(刘丙剑)이라 부르며 하북성 동광현 동광진 동남영촌에 살고 있다. 아내 석수연(石树艳)은 1999년 5월 3일 49세때 법륜공에 주화입마되어 자살사망했다.
지난 일, 그 가슴 아팠던 나날을 다시 떠올리기도 꺼내기도 싫다. 하지만 한 마을에 살고 있는 법륜공인원 마영군(马英君), 손문항(孙文恒) 등이 거듭 찾아와 석수연은 “대법제자가 아니며 정신질환환자었기에 자살했다”는 자료를 써달라 조른다. 분노한 나머지 아내가 자살하게 된 진실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이 필을 들었다.
석수연은 1999년 3월부터 법륜공을 연공하기 시작했다. 연공시초부터 나는 그닥 찬성하지 않았다. 연공장이 우리집과 가까웠고 게다가 우리집이 커 늘 숱한 사람들이 모여와 법 공부를 했고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았다. 아내와 함께 법 공부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어서 구름잡는 소리만 했다. 예를 들면 종자회사의 왕봉진(王凤珍)은 자기 70여세 노모는 법륜공수련후 갑자기 월경(나중에 알고보니 치질)이 왔다 했고 지방세무국의 이약재(李跃才)는 자동차에 치운후 기사한테 배상을 요구한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도로 1000원을 줬다 했다. 수차 축객령을 내려서야 그들을 겨우 쫓아냈다.
우리집에 법 공부하러 몰려오는 사람들은 없었으나 아내의 집착은 여전했다. 아침에 노간부국에 가서 연공을 하는 외에 종일 안방에 앉아 가부좌하고 법 공부를 했다. 두 아들 공부를 관심하지 않는 탓으로 부부싸움도 많이 했다. 한번은 연공장에 가서 아내를 끌어냈더니 나한테 대들며 드러누워 발광하는 바람에 내가 도로 연공자들의 손가락질을 당했다. 할수없이 나는 아내와 함께 연공하는 고모부를 찾아가 아내를 말려달라 부탁했다. 그러나 고모부는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정이 득을 얻는다”며 석수연은 /‘혜근(慧根)/’이 있고 연공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사부가 /‘법륜/’을 내렸으므로 나와 애들이 따라 /‘득을 얻게/’ 될거라 했다
나는 더는 이렇게 /‘성과/’가 있다는 아내의 법 공부와 연공을 방해하지 않았다.
약 2개월후 나는 아내의 눈길이 이상함을 느꼈다. 따라서 연공할때면 “하늘로 올라간다. 이홍지 대사를 찾아간다”를 중얼거렸다. 특히 1999년 5월 1일, 아내의 행위가 더 이상해졌다. 집에 앉아 연공하면서 피가 흘러나오도록 손으로 입을 후볐고 얼굴색이 창백했다. 부랴부랴 제지하며 왜 이러느냐 물었을때 그는 자기가 향공(香功)을 연공하는데 향공은 단도(丹道)에 속하므로 원만하려면 반드시 단(丹)을 후벼내야 한다 했다.
/‘주화입마/’됐다 판단한 나는 훨씬 먼저 연공을 시작한 이웃에 사는 손문항을 찾아가 무슨 치료방법이 없을가 물었다. 손은 아내를 보더니 부러워하는 기색으로 “이게 주화입마가 아니라 기공태(气功态)며 근기(根基)가 아주 좋은 사람만이 이런 상태를 연공할 수 있다”며 석수연이 곧 원만하게 될거라 했다.
아내는 연속 이틀간이나 그러더니 자지도 않고 가끔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내려 놓았던 마음이 또 긴장하기 시작했다. 바보짓이라도 할가봐 나와 큰 아들 유운량(刘运亮)이 교대로 그를 지켰다.
5월 3일 새벽, 아내는 연공하면서 또 손을 입에 넣어 단을 찾았다. “계속 이랬다간 원만이 아니라 죽고 만단 말이야, 살래 죽을래!” 내가 야단쳤지만 아내는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딴에 “곧 승천할테니 당신은 나를 그냥 이래도 가만둬!”했다. 화김에 담배를 태우려 불을 달았더니 아내는 나를 밖으로 밀며 “연공하는 사람은 신체를 정화(净化)해야 하는데 담배를 태우면 업력을 추가시키므로 당신 혼자 나가 피우고 나한테 업력을 추가하지 말고 내 승천에 지장을 주지 말라!”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밖에 나와 담배를 태웠다.
약 반시간후 방안이 잠잠해졌다. 맥이 지나 자는 줄 알고 문을 살짝 열었더니 펼쳐진 눈앞의 정경에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아내가 오른 손에 흉기를 잡은채 쓰러져있었고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화닥닥 정신차린 나는 큰 아들과 사람들을 불렀다. 큰 아들이 당장 엄마의 손에서 흉기를 빼앗아냈다. 이유를 묻자 아내는 “내 입안의 단을 꺼낼 수 없어 흉기로 찔렀어, 그랬더니 단이 나왔어”라 했다.
아내가 상을 입은후 마을의 공우들이 소문을 듣고 달려왔고 그들은 “연공하는 사람은 사부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병원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다”며120응급차를 막고 이홍지의 초상화를 벽에 걸었다. 아내도 “죽지 않으니 괜찮다”했다. 1시간 가량 대치후 새벽 6시가 돼서야 겨우 아내를 현립병원에 이송했다.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5시간후 아내는 사망했다.
아내 사망 이튿날 마을 사람들이 그 사망원인을 알고 현 공안국에 신고했다. 시, 현 공안기관 법의관의 부검 결과 아내는 저절로 흉기로 무려 5번이나 찍었는데 그중 한번이 두골단열과 뇌막파열, 그리고 뇌조직의 익출을 초래했고 나머지 4번도 다 두골깊이까지 찍혔으며 정수리 두골이 함몰되고 정맥동도 세곳이나 파열됐다.
아내의 자살이 우리 가정에 대한 타격이 너무나 컸다. 가족들 저마다 법륜공이나 연공자에 대한 증오가 극도에 달해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파렴치하게 나보고 양심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라 하고 이로써 자기들의 죄책을 씻으려 시도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