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 등덕옥
왕도지(王道芝), 48세, 사천성 화영(华蓥)시 쌍하(双河)진 명광로에 살고 있다. 나에게는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이 있었다. 그러나 부모가 법륜공에 심취되면서 부터 엉망진창이 됐다. 부친 왕이건(王以乾)은 이홍지의 소업설을 믿고 치료를 거부한 탓에 심근경색으로 2001년 68세에 사망했고 부친보다 5세 년하인 모친도 장기적으로 치료와 약을 거부, 당뇨병으로 인한 일련의 합병증이 유발되어 2005년 장애인으로 됐다.
1997년 6월의 어느 하루 퇴직후 집에 있던 부친은 화영시 쌍하진의 빈하로에 산책나갔다가 팽씨성을 가진 한 법륜공수련인원의 법륜공은 강신건체뿐만 아니라 병을 없애고 재난을 면하며 “한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족이 덕을 본다”는 말에 깜쪽같이 넘어갔다. 부친은 경미의 심장병이 있어 실험삼아 팽씨를 따라 연공했고 나중에 팽씨 등 공우들의 재삼 요구로 모친도 함께 연공에 동원시켰다.
시초 두분은 매일 아침 6시에 맞춰 우리집과 가까운 도로변의 종고루(钟鼓楼) 연공장에 가서 연공했다. 거기는 강변과 가깝고 수목이 우거지고 공기가 좋아 다들 자기장이 좋은 곳이라 했다. 얼마동안 규칙적으로 단련한 것이 도움이 되어 몸이 전에 비해 거뜬해졌고 흉부에 느끼던 조금씩 갑갑하던 느낌도 없어진것 같았다(사실은 규칙적인 운동에 심리암시로 많이 좋아졌다 느껴졌을 뿐 경미상태의 심장병은 전혀 호전이 없었다). 그는 법륜공이 자신의 병을 치료했다 믿고 이런 /‘신기/’한 효과를 체험으로 /‘법학습 심득교류회/’를 다니며 크게 선전했다.
이때부터 부친은 사부를 숭배하고 법륜공을 더더욱 깊이 믿게 됐으며 반복적인 법학습을 통해 소업, 원만으로의 수련을 한결 동경하게 됐다. 문맹인 모친은 매일 부친을 따라 다니며 함께 연공을 했지만 건강에 별 변화가 없으면서도 부친이 이렇게 말하자 따라 믿었다. 마침 그때 누나 왕도용(王道蓉)의 딸 양리(杨莉)의 공부성적이 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부친은 그 공로를 연공함으로써 온 가족이 덕을 본 효과로 취급했고 문화가 없는 모친은 따라 믿었다. 이때부터 두분은 맞장구를 치며 집에 연공방을 꾸리고 밤에 낮을 이어가며 연공하고 법을 공부하고 녹음을 들었다. 장시간 가부좌틀고 앉아 힘준 탓으로 부친은 발을 상해 2개월씩 부은 적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열심히 집착스레 소업하고 원만하기를 기다렸다. 더우기 약을 쓰지 않고도 발이 낫자 더더욱 사부가 말한 소업을 믿었고 이때부터 병원 재검사는 물론 주사나 약을 일절 거부했다.
부친은 /‘주화입마/’되어 사처로 다니며 앞으로 천국에 가서 /‘불도신(佛道神)/’이 될 것이고 신선처럼 /‘자유자재/’하게 생활할 것이라 떠들었다. 더는 야채를 사들이는 등 가내일을 하지 않았고 손자도 봐주지 않고 매장일도 돕지 않았다. 매일 침묵을 지키고 식구들과도 말을 건네지 않았으며 이것이 바로 /‘집착을 버리는 것/’이라 했다. 우리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어처구니만 없을 뿐이었다.
1999년 7월 나라에서 법륜공을 취체하자 나와 아내는 즉시 십여명의 친지들을 동원해 법륜공수련을 그만두라 부모를 권했다. 그러나 두분은 사부가 이것은 나라에서 잘못한 일이라 말했다면서 끝까지 수련하고 원만의 기적이 나타나는 그날을 기다리고 말테라 했다. 우리가 뭐라 하든 연공할대로 다 했다.
2000년부터 2001년 상반년 기간 이홍지의 /‘신경문/’의 부추김으로 두분은 사부의 /‘법정인간/’에 대한 고취를 믿고 정말로 /‘법정인간/’의 도래와 동시에 원만하는 줄 알았다. 하루 빨리 원만하기 위해 부친은 또 모친의 동원하에 중경, 성도 등지로 소위 /‘층차/’가 높다는 공우들을 찾아 다니며 빨리 정진하게 이끌어 달라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2001년 9월 6일, 부친은 전날 밤새도록 연공을 한 피로를 무릅쓰고 평시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일어나 우리집 맞은편의 찻집을 찾아가 차 마시는 사람들에게 홍법을 진행했다. 다들 차 마시고 장기 두르느라 바빠 누구도 횡설수설 심오하게 늘어놓는 부친의 말을 듣지 않자 안달아난 나머지 부친은 돌발성 심근경색을 일으켜 찻집에서 급사했다.
부친의 사망으로 우리 일가는 슬픔에 잠겼다. 그런데 유독 모친만은 아주 냉랭한 태도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부친은 이미 법륜세계로 원만했다”는 등 사부의 말을 빌어 우리를 안위했다.
뒷이어 좀체로 생각지 못했던 불행들이 연속 발생했다.
2004년초 검사에서 모친은 심한 당뇨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다들 당황했으나 모친은 자신은 언녕 알고 있었고 사부의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지 않는다”는 말대로 철저히 수련소업한다 담담히 말했다. 결국 병원입원은 절대 안된다 했지만 우리가 우기는 바람에 병원에서 약처방을 떼서 집에서 복용하겠다 대답했다. 그러나 우리 앞에서는 약을 복용하는 척 하고 우리들이 없을 때는 슬그머니 다 버렸다. 수련하면 반드시 소업할 수 있고 약을 먹으면 반드시 업을 추가한다 믿었기 때문이다.
2004년 9월 9일 아침, 모친은 허리 통증이 심했지만 이를 악물고 식은 땀 줄줄 흘리며 침대에 가부좌틀고 앉았다. 마침 우리에게 발견되어 중경시 제3군의대학 신교의원으로 이송하여 검진을 받았다. 장기적인 연공으로 영양불량에 골 다골증, 요추판 돌출 등 골수질병이 심했다. 아픔을 겨우 참으면서도 약물치료를 거절했으나 억지로 골과에 입원시켜 16일간 치료를 받고 호전후 퇴원했다.
퇴원후 모친은 병원에서 주사와 약을 사용했다는 일 갖고 나와 또 한바탕 크게 시비를 걸었고 계속해서 집에서 두문불출, 연공에 집착했다. 그런데 가부좌 연공시 힘을 너무 준 바람에 2005년 1월 14일 부골을 다쳐 인민병원에서 금속부골 이식술을 받도록 만들었다. 이번 일도 결코 모친의 /‘법륜대법/’을 /‘견수/’한다는 신념을 동요시키지 못했다.
얼마후 더 심한 일이 발생했다.
2006년 5월, 2007년 6월 모친은 연속 두번이나 침대에서 연공하다 굴러 떨어져 골절상을 입어 이식수술을 받았고 2008년 6월 30일 광안시 인민병원 심장 초음파 검사에서 심장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으며 7월 14일 사천성 화영산광능그룹(华蓥山广能集团) 총의원에서 요추 측만증, L3요추골주체압축골절 등을 발견했다. 상기 병들은 장기적으로 침대에서 연공을 한 후과다. 그러나 모친은 이런 병들이 당연하다 생각했고 이것은 사부가 자기를 고험한다 믿고 통증을 참고 계속해서 수련했다.
2010년 10월 5일 밤 10시 경, 긴 연공을 마치고 나오다 다리 저려 휘청거리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 이번에는 오른쪽 상박골이 골절상을 입었다. 다행이 제때에 응급처치를 받았기에 생명위험은 벗어났으나 일상생활마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장애인으로 되고 말았다.
매일 통증과 장애인으로 시달리는 모친의 고통도 크지만 우리 자식들의 마음이 더더욱 아프다는 것을 노인네는 알기나 하시는지, 우리는 이홍지와 법륜공을 사무치게 증오한다. 기편을 당하고 그것도 모른채 지금까지도 기대하고 있는 모친이 어서 빨리 정신차리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