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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수는 누굴가 — 진황도시 법륜공수련자 2명 사망 사건 추적

2010-04-29 기원 하 다:Kaiwind Auteur:사문통(史文通)

2006년 3월 7일 저녁 7시 30분, 하북성 진황도시공안국 해항구공안분국 해빈로 파출소는 매장(煤场)아파트단지내의 모 임대방에서 법륜공수련자들이 불법모임을 가지고 불법활동을 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해빈로파출소 민경들이 현장에 속출, 당장에서 5명의 법륜공인원을 연행했다. 끔찍스럽게도 상기 5명 외 민경들은 또 임대방에서 1남 1여 2건의 시신을 발견했다.

담당민경의 소개에 의하면 그들이 임대방에 진입, 검사시 청년 한명이 바닥에 반듯이 누워있었고 중년여성 한명이 침대에 모로 누워있었다. 두 사람은 불러도 대답이 없었고 얼굴색이 검했다. 중년여성의 배는 크게 불러있었고 방안은 코를 찌르는 악취로 가득차 있었다. 담당민경의 회억에 “다년 경험으로 미루어 우리는 이 두 사람이 사망된것으로 판단, 그러나 생명과 법에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즉시 120구급전화를 눌렀다.”

120구급인원이 빠른시간내에 현장에 도착, 검사결과 2명은 이미 의식을 잃었고 양쪽 동공이 모두 빛에 대한 반사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호흡, 맥박, 혈압이 없었고 심전도가 직선을 그었다. 생명체증이 완전 소실, 사망으로 확인됐다. 이어 경찰은 또 법의를 불러 검시결과 두 사람한테서 비정상 사망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민경들은 법에 의해 임대방을 수사, 법륜공불법출판물과 선전품들을 발견했다.

조사결과, 젊은 청년 사망자 이름은 홍비(洪飞), 21세, 진황도시 해항구 사람이었고 여성사망자는 유숙민(刘淑敏), 52세, 진황도시 산해관구 사하자촌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법륜공수련자다. 자살도 타살도 아닌 이 두 사람이 도대체 무슨 원인으로 사망되었을가?

(1)홍비


다수 동년배들과 마찬가지로 홍비한테도 행복했던 청소년시절이 있었고 소원대로 석가장경제학원에 입학하여 어엿한 대학생으로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의 역정은 2004년에 돌변, 신장병종합증으로 부득이 집에서 휴학할 수 밖게 없게 되었다.

대학생인 그는 병이 나면 당연히 병원에 가야하는 줄도 알았다. 신장병종합증은 불치의 병도 아니고 젊은 환자들에게는 얼마든지 치유될 수 있는 병이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인 왕숙금은 사교 법륜공에 심취되어 아들을 데리고 애써 의사를 찾아다니는게 아니라 홍비에게 법륜공 수련을 교사했다.

매일 “법륜대법”을 열심히 읽고 들어도 홍비의 병은 아무런 호전도 없었다. 오히려 하루하루 악화되어갔고 워낙 우람한 체구였던 그는 매일 부종에 시달려 맥 다 빠진 사람같았다.

조급해난 홍비의 부친은 수차 입이 닿도록 아들을 미망에서 정신차리라 말했고 지어 친척들을 불러 함께 권유했다. 그러나 사교의 독해에 깊이 빠진 홍비는 아무런 회개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어머니까지 옆에서 붙는 불에 키질을 해대는 바람에 그는 아버지에게 “사악한 영혼이 부체됐고”, 아버지는 “마(魔)”며 아버지를 “더는 봐주지 않을것이라”했다.

조급한 나머지 아버지는 친척의 도움으로 2006년 1월 7일 홍비를 억지로 해방군 281병원 신장병과에 입원시켜 치료를 받도록 했다. 당시 그의 주치의었던 하발귀의사의 소개에 의하면 입원초기 홍비는 전신부종에, 흉부와 복부에 물이 고인데다가 피부염까지 겹쳤다. 하지만 이런것들은 모두 신장병종합증의 상견되는 증상이라 신장쇄약 정도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이에 근거하여 그들은 홍비에게 호르몬과 항생제치료를 진행, 며칠후 단백뇨가 현저히 감소되고 부종이 많이 경감되었으며 감염도 나았다. 하의사는 “이런것들은 환자가 호르몬에 많이 민감하다는것을 설명, 반개월만 더 치료했었다면 임상에서 거의 치유됐을 것이고 계속해서1년간의 호르몬치료약물을 복용했다면 홍비는 완전히 회복되었을 것이다”라 했다. 당시 의사는 홍비의 치료에 신심이 컸다한다.

그러나 사교독해를 크게 입은 홍비는 치료에 협력하지 않고 일단 부친의 감시가 뜸해지자 의사가 주는 약을 슬금슬금 다 버렸다. 그러던 어느날 병원에 아들 보러왔던 왕숙금은 신장천자를 시행한다는 말을 듣고 더는 치료를 받지 못하게 기를 쓰고 막아나섰다. 이렇게 병원에서 12일간 치료후 1월 19일 자발적으로 퇴원하여 또 다시 법륜공수련으로 병을 치료하는 미로에 들어섰다.

법륜공 심취자들의 미혹으로 3월 7일 점심 홍비는 매장아파트단지로 보내졌다. 공우들과 함께 전법륜을 학습하고 함께 법륜대법을 수련하는것으로 병이 치유되기를 기대했다.

매장아파트단지의 방은 흑룡강성 이춘시의 법륜공수련자 오문풍, 오문금 두 오랍누이가 2월말에 임대한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은 법륜공수련자들의 비밀연락을 취하고 불법활동에 종사하는 거점으로 되었다.

신체허약한 홍비는 방에 도착후 어머니와 다른 사람의 부추김으로 화장실에 갔다가 법 학습을 시작하기도전에 방바닥에 엎어진채 혼수상태에 빠졌다. 옆사람들이 안깐힘을 다 해서야 그를 뒤집어 반듯이 눕혔다. 그의 학습을 위해 누군가 MP3으로 대법녹음을 듣도록 그의 귀에 이어폰을 끼워주었다. 홍비가 언제 숨졌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민경이 방에 진입했을때도 그의 귀에는 여전히 이어폰이 걸려 있었다.

(2)유숙민


유숙민이 사교 법륜공에 빠진지도 이미 몇해째다. 그러나 법륜공와 사부 이홍지는 그를 보우해주지 못했다. 2005년 10월 4일 그는 기침과 오른쪽 가슴통증이 가중되고 숨쉬기가 가빠 산해관시 인민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중심성폐암 말기로 진단이 났고  우측 흉강에 대량의 액체가 고였다했다. 유숙민은 병원에 4일간만 입원해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병세의 잔혹한 시달림속에서 유숙민도 한때는 사교 법륜공에 동요가 생겨 더는 사부의 도움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그의 남편의 회억에 따르면 통증이 심할때마다 유숙민은 약으로 통증을 완화시켰다.

그러나 사교 법륜공은 이 지경까지 온 그마저도 가만놔두지 않았다. 그의 병상황을 안 예전의 공우었던 법륜공수련자 양철홍, 여홍연, 이계하 등은 단체연공의 방식으로 그의 병을 치료해주기로 계획을 짰다.

2006년 3월 초의 어느 하루, 양철홍 등 세명은 함께 유숙민의 집을 찾아와 유숙민에게 “아예 매장단지에 가서 우리와 함께 연공하자. 우리가 이끌어줄 수 도 있고 상층차도 하게 한다”고 제의했다. 양철홍 등의 말대로라면 “법은 일체 사악을 해제하므로 병을 볼 필요가 없었다”. 생에 대한 열망으로 유숙민은 또 한번 잘못을 선택했다.

유숙민은 그날 혼자서 걸어 올라갔고 올라간후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오찬후 오문금 등은 그에게 “전법륜”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유숙민은 침대에 누워 말도 할 수 없었다. 이튿날 그는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으며 손팔이 점점 굳어갔다. 삼일째되는 날은 얼굴색이 검었게 변해가고 배가 불어났으며 몸에서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고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그의 공우들은 오히려 유숙민이 “쇼크”를 일으켜 소업과 배독을 하는줄 알았다. 그들은 멈추지않고 여전히 계속해서 유에게 “전법륜”을 읽어주었다. “수련을 통해 형성된 기장이” “그를 도와 몸조리를 해준다”생각했다.

유숙민의 남편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아내가 나갈때 그는 집에 없었으므로 아내의 전화를 받고서야 아내의 행방을 알았다. 3월 7일 오후 그는 매장아파트단지에 아내를 보러갔다. 그러나 방에 들어선 그는 그만 낙담하고 말았다/…/…

(하북일보 기자, 2006-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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