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헌충, 남, 1982년 출생, 하남성 언릉현 장교향 신동촌 사람이다. 그에게는 원래 행복한 가정이 있었다. 목수일을 하는 아버지에, 성격이 부드럽고 상냥한 어머니, 세식구는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학헌충이 법륜공에 물들기 시작해서부터 이 가정은 고통의 심연에 빠졌고 1999년 4월에서 6월, 짧은 3개월사이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까지 연달아 세상를 떠났다.
1997년 가을, 아직 중학교 재학중인 학헌충은 “강신건체”를 위한다고 법륜공을 수련했다. 연공에 몰입하면서 학업에 흥미를 잃었고 공부성적도 형편없이 내려갔다. 선생님과 부모들이 공부에 전념하라 타일렀지만 귀밖으로 흘러보내고 여전히 가만히 연공에만 몰두했다. 나중에는 아예 학교를 중퇴했다. 그는 “연공만 열심히 하면 불처로 될 수 있다”고 부모들앞에서 말했다.
연공에 미쳐 공부마저 그만 둔 학헌충, 아들한테 큰 기대를 걸고있던 아버지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1999년 4월 16일 오후 아버지 학평안은 화김에 아들한테 손찌검을 했다. 얻어맞은 아들은 화를 내기는 커녕 아주 담담한 어조로 “참 잘 때렸어요. 내가 고생스레 반개월씩 연공하는것보다 더 효과적이어요. 톡톡히 감사를 드려야겠네요”라 했다. 이말에 아버지는 화가 터져 손에 잡히는대로 몽둥이를 들고 학헌충을 때렸다. 이웃집에서 달려나와 말리는 틈을 타서 그는 아버지의 손아귀를 벗어나 뺑소니를 쳤다. 저녁이 되자 아버지는 어쩔수 없이 집 나간 아들을 찾아 나섰다. 그날따라 큰 비바람이 몰아쳤다. 아버지는 부조심으로 땅에 닿아 있는 고압선을 건드려 당장에서 사망, 갑자기 들이닥친 참사에 식구들은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유독 학헌충만이 멍하니 서서 부친의 시신을 덤덤히 지켜보더니 “이것이 우리 아빠 전세의 조화다”라 했다.
학헌충의 모친는 아들이 연공때문에 학업을 포기해 속이 탄데다가 20년간 서로 의지하며 살아오던 장년의 남편까지 갑자기 잃고 가정을 지켜줄 기둥과 정신적 의탁을 잃은 채 상심끝에 죽고 싶은 생각밖게 없었다. 그는 아들의 손을 꼭잡고 계속 학교에 가 달라 애걸했다. 눈물이 앞을 가린 어머니 앞에서 학헌충은 또 가방을 멨다. 어머니는 이번에는 정말 말을 듣고 학교갔나 기뻐했다. 그러나 이웃들로부터 아들이 공우의 집에 가서 연공을 한다는 소식이 곧 들려왔다. 이 소식에 어머니는 더는 참지못하고 미친듯이 연공하는 사람들 속에 끼여있는 아들을 끌고 나와 잡아 흔들며 대성통곡을 했다. 엉뚱한 짓만 하고 다니는 아들과 돌연사를 당한 남편, 또 병으로 몸져 누운 년로한 시어머니를 생각하는 순간 절망에 빠진 시골여인은 눈앞이 캄캄해났다. 1999년 5월 12일 하늘에서 호우가 억수로 쏟아붓는 날, 이미 이틀째 아무것도 먹지않은 그녀는 칠흙같은 밤에 농약을 들이 마시고 고통속에서 이 세상과 고별했다. 그 시각 학헌충은 자기 방에서 정좌하고 앉아 연공을 하고 있었다.
학헌충의 할머니는 원래 몸이 허약하고 병을 앓고 있는데다 아들, 며느리를 선후로 앞세우고 보니 더는 지탱할 수 없었다. 1999년 6월 20일 아침 학헌충을 침대앞에 불러다 놓고 공부잘하라 타일렀다. 할머니의 간곡한 부탁임에도 학헌충은 “할머니 걱정마세요, 꼭 연공을 열심히 해서 최고경계에 이를때 까지 수련할게요”. 노인은 할말을 더 잇지못하고 두눈을 영영 감았다.
(Kaiwind.com, 2009-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