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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기원기자 사토 고우 사망, 법륜공은 장례식도 치르지 않았다

2009-09-28 기원 하 다:Kaiwind Auteur:허언

일본 대기원시보의 주필이며 일본 법륜공사이트 책임자인 사토 고우가 7월 20일 사망됐다는 소식이 근래에 인터넷에 전해지고 있다. 필자는 인터넷검색을 통해 이 소식이 사실임을 증명했다.

생로병사는 인생의 법칙으로 누구도 탓할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일만은 좀 특이하다.

첫째, 사토 고우는 독실한 법륜공수련자며 일본 법륜공의 핵심인원이다. 법륜공사이트를 검색하면 그의 이름을 바로 검색해낼 수 있다. 신분은 “대기원 기자”다. 2006년부터 2009년초에 그는 관련 기사들을 집중적으로 써냈다. 2006년 4월 23일 사토 고우는 일본의 “3퇴성원” 집회에 나타나 대기원이 날조한 “소가둔강제수용소” 요언을 전파했다. 그는 일본 전 지역을 쏘다니며 법륜공의 반중국집회 활동을 추적취재하고 신운공연의 신기한 매력을 선전했다. “업무”에 무척이나 애썼다. 이같은 법륜공 엘리트는 마땅히 복을 받아 “원만”하여 “불도신”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2009년 2월 15일 이후 그는 더는 대기원을 위해 기사를 쓰지 못했고 일본에서 진행되는 법륜공활동때에도 자취를 보이지 않았다. 중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법륜공에게 아주 특수한 날로 지정되어 있는 7월 20일에 사토 고우는 죽었다. 이홍지“대사”의 “법신”도 그를 보호해주지 못했고 신운만회의 “신기한 치료효과”도 그의 몸에서 완전히 효력을 잃었다.

일본 대기원 주필 사토 고우

둘째, 사토 고우의 부인 초신력(肖辛力) 역시 법륜공수련자로 1989년 남경대학 외국어과 졸업후 일본으로 유학, 일본 오차노미즈대학 발달 사회학 석사학위를 취득, 1999년말 귀국시 천안문광장에서 “홍법”을 위해 말썽을 일으켜 구금당했다. 일본으로 추방당한후 초신력은 “민운”과 법륜공조직을 드나들며 “전세계법륜공난민대책위원회” 일본대변인으로 반중국활동에 적극 종사했다. 법륜공의 창시자 이홍지는 “한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정이 덕을 본다”했다. 가령 사토 고우가 법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초신력는 이미 그 보다 훨씬 높은 층차에 올라있는 대법제자다. 그러나 초신력은 남편한테 복을 갖다주지 못했다. 소식에 따르면 초신력은 사토 고우가 중병을 앓아도 그를 병원에 보낼 생각도 안했다 한다. 지어 사토 고우 사망 당일에도 법륜공의 집회활동에 동참해 나섰다 한다. 그와 공우들은 또 “발정념”이란 괴이한 방식으로 사토 고우를 7일후 부활시키려 시도했다 한다.

일본 법륜공핵심인원 초신력

셋째, 사토 고우가 죽은후 법륜공은 공식 장례식도 치르지 않았다. 사토 고우는 “홍법”을 위해 지쳐죽었다. 하지만 그가 죽은후 일본법륜대법학회는 영결식도 없었고 일본법륜대법학회회장 츠루조노 마사부미와 대기원총부에서도 사람을 파견한 유족 문상도 없었다 한다. 법륜공 인터넷사이트를 뒤져봐도 그의 사망에 관한 아무런 보도도 찾아볼 수 없다.

더더욱 한심하기로 7월 17일부터 20일, 일본 법륜대법학회는 소위 “반박해 10주념” 기념행사를 위해 수련자들을 조직하여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주재 중국대사관앞에서 말썽을 부리고 소위 촛불추모집회를 조직하느라 바삐돌아쳤다. 이들은 언녕 그를 깡그리 잊어버렸다.

법륜공은 매일 “박해”를 입에 달고 있다. 도대체 누가 일본에 살고 있는 대법제자 사토 고우를 죽도록 박해했는지, 오직 사토 고우 혼자만이 알것이다.

(Kaiwind.com, 2009-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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