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륜공사이트는 당사 직원 장개신의 퇴당건을 들고나와 크게 떠듬과 동시에 그를 /‘심양시위원회 선전부 연락부장/’이라 칭했다. 이에 우리는 아래와 같이 성명을 발표한다.
사실 장개신은 발행회사의 일반 계약직원에 불과하며 소위 “시위 선전부 연락부장”이 절대 아니며 그 무슨 /‘고관/’도 아니다.
원래 심양시 홍달(宏达)경제무역회사 직원이었던 장개신은1995년부터 2002년까지 심양시뉴스센터에 임시직원으로 고용되었다.
뉴스센터는 인원이 4명밖에 안되는 수지균형을 자체로 해결하는 사업기관으로 산하에 소속부서도 없었다. 4명중 한명만이 정식간부고 장개신을 포함한 기타 3명은 모두 임시 고용직원이었다. 뉴스센터 근무기간 장개신은 아무런 직책도 맡지않았다.
2003년--2004년간 심양시 뉴스센터는 수지균형 자체해결로 부터 전액 재정지출금을 전달받는 사업기관으로 변경, 당시 장개신은 신분이 로동자로 되어있는 관계로 조동이 불가능했다. 당연히 그와의 고용관계는 자동 해제됐다. 2005년 그는 재차 뉴스센터에 임시 계약직으로 고용, 이 기간 장개신은 임시 뉴스출판사에 파견되어 일하게 됐다. 그는 줄곧 아무런 직책도 없는 임시 계약직원이었다.
2005년 말 뉴스센터와의 계약 만료후 자기가 계속 계약직으로 고용될지 자신이 없어 본인의 자원신청으로 심양일보신문업그룹 산하의 신문과간행물도서발행총회사에 가서 일하게 된것이며 조직에서 고의로 이렇게 배정한것이 아니다.
2006년 2월 장개신은 심양일보 신문과간행물도서발행총회사에서 일하게 됐고 경리보좌를 맡았다.
장개신이 발행회사에 건너간지 얼마되지 않아 회사는 중층간부 경쟁채용제를 실행, 관련규정에 의해 그는 어느 한 부서의 책임자로 겸직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그는 자기 부서를 선택하지않고 제 생각에 권력이 크다 인정되는 판공실 주임직을 선택, 임용경쟁 개시전 그는 당시 재임중인 판공실주임을 찾아가 “회사에서 이미 나를 사무실 주임으로 내정했으니 당신은 반드시 임용경쟁에서 물러나야 한다. 사서 고생을 하지 말라!”고 공공연히 공갈을 들이댔다. 하지만 경쟁결과 자기가 낙선되고 말았다.
2006년 8월, 그는 출장차 공금으로 길림송화호, 장백산천지와 대련 등지의 유람을 다녔고 또 공무접대명의로 접대비를 청구해 제주머니를 채웠다. 회사간판 제작시 제작비용을 시장가의 두배로 높혀 청구한것이 탄로나 회사상사들로부터 호된 교육을 받았다. 회사에서 평판이 나빠 직책 유지가 어려운줄 안 그는 2007년 7월 재차 다가오는 차기 간부 경쟁임용을 앞두고 병원에서 발급한 심장병진단서를 제시하고 병가신청을 냈다. 그후 병가를 이유로 회사를 그만뒀다.
우리는 자기자랑을 늘어놓고 허풍이 심하며 천박스럽고 허영에 물든 장개신을 가소롭게 생각한다.
심양일보사 신문과간행물도서발행총회사
2010년 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