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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법륜공의 내막
    
2017-09-20  Kaiwind  筆者:백야    

나의 이름은 백야(白野)이고 올해 32세로 장춘시 중의대학 본과 졸업생이며 장춘시 조양구 우광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사실 여러분들과 함께 교류하고저 이 글을 작성하기까지 나는 심한 내적 갈등을 거쳤다. 그러나 오해하시지 말기를 바란다. 이는 결코 법륜공에 대한 인식이 철저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다시는 법륜공이라는 그 액운과 얼버무리고 싶지않아서이다.

하기야 그 사교조직과 이홍지를 위해 이미 생명의 대가마저 지불한 사람들과 비하면 나는 얼마나 행운스러운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또 불행하기도 하다. 열일곱살 어린나이에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해서 부터 지금까지 이미 15년 허송세월을 보냈고 15년이라는 귀중한 구십춘광을 허비해 버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1993년 전국에 기공열풍이 일기 시작했다. 형형색색의 기공들이 진짜 가짜 분별할 수 없이 쏟아져나왔다. 열풍이 일기 초기여서 나 역시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분별과 선택도 없이 오로지 끓어 넘치는 열정과 충동으로 기공수련을 시작했다. 내가 수련을 시작한 목적은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허무맹랑한 부처가 되고 신선이 되기 위해서었다. 당시 여러 기공류들은 특이기능을 많이 선양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가 선택한것이 하필이면 사교—법륜공이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인생비극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수련 초기 법륜공과 기타 기공은 근본적인 구별이 없었다. 모든것이 흐리멍덩속에서 진전되었다. 1999년 4월 25일에 이르러 “중남해 포위공격”사건이 터질때까지 나는 여전히 열광적인 탐욕의 화염을 끄지 못했다.

나는 사교 법륜공에 몸을 맡긴채 계속해서 자신의 비극을 연출했다. 2001년에 이르러 나는 이미 사교 법륜공 불법조직의 중요성원으로 “북미법륜공총부”와 직접 연락을 취하고 업무지시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2001년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드물었다. 그때 당시 국내에 이 계급에 있는 인원수가 20명을 초과하지 않았다. 나는 점차 내부 극비문서들과 운영방식을 접촉할 수 있었다. 지어 일부 자금의 운영정황 마저도, 자신마저 믿기 어려웠던 일들이 실제적으로 코앞에서 벌어지군했다. 2001년 1월 23일 “천안문분신자살”사건이 나로 하여금 처음으로 법륜공수단의 정당여부와 그 사교 성질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의심은 내 주변환경과 자신의 욕심에 의해 금방 억제되고 가리워지고 말았다. 나는 자기절로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2004년 8월까지 계속 지속되었다. 나는 끝내 법륜공의 헛점, 법륜공현상과 회피할 수 없는 문제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사실 전향(转化)과정에서 그 누구든지 법륜공사교와 관련된 현상과 문제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직시만 한다면 전향이란 아주 쉬운일이다--이것이 가장 결정적인 것이다. 법륜공문제 직시 시작이 바로 나자신의 전향의 시작이었다. 모든것이 나 자신의 사고과정에서 천천히 변해갔다. 나 자신이 속속히 알고 있던 것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장편연설이 필요 없었다. 나 자신의 돌이킴속에서 지속적으로 대조하고 사교의 특징과 대조하고 불가가 사교특징을 구별하는 “능엄경”을 대조하며 나는 점점 법륜공은 조금도 의심할바없는 철두철미한 사교라는것을 더더욱 분명히 판단할 수 있었다. 나는 이런 사교을 위해 십여년간 목숨을 바쳐 일했고 귀중한 청춘과 전도를 망쳤던것이다!

지금 그 누구든 내 앞에서 법륜공과 이홍지의 말만 꺼낸다면 나는 크게 화를 내고 아주 불쾌해진다. 법륜공과 이홍지 생각만 해도 나는 불쾌하고 메스꺼울뿐만 아니라 더더욱 분노에 온몸을 떨군한다. 1996년에 언녕 미국에 이민했고 돈도 사기칠만큼 다 사기친 이홍지가 그만히 해 먹었으면 됐지 또 무엇때문에 돌아왔는데? 참 이해가 가지않는다. 우리의 돈을 착취하고나서 목숨마저 앗아가려고! 얼마나 악랄한 인간이고 음흉한 마음을 품고 있는 놈인가! 그래도 말끝마다 “진선인”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나는 내가 전에 직접 겪었던 몇가지 사건을 통해 법륜공의 소위 진선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테면 2001년 섣달그믐날 “천안문분신자살사건”이후 “법륜공북미불학회”의 한 대륙담당은 인터넷을 통해 나와 직접 이 사건을 토론한 적이 있다. 섣달그믐날 밤 12시전후었다. 우리는 다 법륜공인원이 저지른것이라 인정했다. 나중에 나는 나와 공범이며 그때 당시 국내 법륜공조직의 고위책임자었던 신강대학의 한 강사를 만났을때 (물론 나는 그의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누가 증거를 요청한다면 나는 개별적으로 그때 그 당시의 경과를 말해줄 수 있다)그는 나한테 전에 법륜공 명혜망의 파견으로 하남성 개봉(开封)시까지 가서 현지 법륜공사교조직 인원과 직접 접촉하면서 “분신자살사건”중의 7명의 신분이 법륜공인원이 확실한지 조사를 진행했다고 했다.

나중에 나는 북경에서 길림건공학원의 강사를 만났을때 당시 명혜망에서 여러사람을 개봉에 파견했을뿐만 아니라 그도 명혜망의 파견으로 캠코더를 메고 다른 한 장춘법륜공인원과 함께 별도로 개봉에 가서 법륜공에 유리한 사진자료들을 얻어내려고 시도했다 말했다. 그러나 현지 조사결과 그들 자신도 감히 믿기 어려웠다했다. “분신자살”의 7명의 주역이 다 법륜공인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결과를 명혜망과 “법륜공북미불학회”에 회보했다. 그러나 그들을 당황하게 만든것은 법륜공은 뉴스발포회를 열고 이 사실을 부인했다는 것이다! “진선인”을 버젓이 부르짖던 법륜공이 공공연히 전세계를 향해 거짓말을 한것이다. 그들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했다. 다들 이 사실을 감히 직시못했다. 사실을 회피하고 입을 다물수 밖게 없었다했다.

다른 하나의 실례로는 “북경통주 사체유기 사건”이다. 처음 이 비디오테이프를 볼때 나는 이것이 가짜라고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나의 한 동수와 만났을때 그는 자기가 당시 직접 참여했노라 했다. 지어 그 사체는 자기가 손수 싸서 묶었다 했다. 그는 나한테 그때 그들이 어떻게 생각했고 그들 여섯이서 무슨 차를 몰았고 등 상황을 자세히 말해주었다. 불행스럽게도 이 여섯명은 모두 내가 알고 있고 또 직접 만났던 사람들이고 더구나 그중에는 장춘사람 둘이나 있었다.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홍지와 그의 법륜공사교조직은 언녕부터 많은 경우 많은 장소에서 자기들이 선양하는 “진선인”을 공공연히 짓밟았다. 그러나 무엇때문에 그때 당시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언녕 그랬더라면 우리는 그 속임수에 이토록 크게 넘어가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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