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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신 믿은 남자 가족을 “마귀”로 간주
    
2017-04-24  개풍망  筆者:육우목    

올해 39살인 오응명(吴应明)은 아직도 수줍어 보이고 말도 느릿느릿한다. 그런데 겉으로 내색을 보이지 않지만 마음속 깊은 곳의 지울 수 없는 상처는 오직 그 자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2008년, 그는 우연한 기회에 전능신 사교를 접촉하고 사교 모임에 참가했다. 그 때부터 6년 동안 전능신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사교에 잘못 빠져 혈육을 “마귀”로 간주

1977년, 광서 래빈(来宾)시의 한 평범한 산간마을 교사 가정에서 태어난 오응명은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자랐다. 기술학교를 나온 후 공장에 취직하고 기술학교 때 만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고 그들 사이에 딸을 두고 화목하게 지냈다. 그런데 하늘에 예측할 수 없는 풍운이 있듯이 그가 공장에서 일할 때 폐결핵을 앓았다. 큰 병을 앓은 후 건강상태가 전에 비해 많이 나빠졌는데 직장 생활도 여의치 않아 그는 영혼의 기탁을 찾기 시작했다.

임대할 집을 찾는 과정에 오응명이 기독교를 접촉했는데 2008년 8월 제수의 소개로 교회의 “교도”의 인솔하에 전능신 집회에 참가했다. 전능신을 믿으면서 그는 점점 그 속에 빠져들어 갈수록 성격이 괴벽해지고 가족에 대해 무관심했다. 사교에 매두몰신하면서 출근도 마다하고 장기동안 사교조직에 빠져 외지에 선교 다니는 바람에 가족관계가 상당히 생소해지고 가족들은 일년 내내 그의 얼굴 몇 번을 보지 못했다.

이에 아내의 감회가 제일 깊다. 가정살림에 보태려고 아내가 집과 멀리 떨어진 슈퍼에 출근하는데 남편이 바래다 주지도 않고 마중도 없다. “일이 고달파서가 아니라 매번 폭풍우나 험한 날씨 때면 남들 남편은 다 마중오는데 나는 남편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니 괴로웠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

간혹 오응명이 집에 돌아오더라도 입에 전능신만 달고 있어 가족들의 반감을 샀다. 아빠 입에서 흘러나오는 전능신에 대해 딸의 거부감이 심했다. 그의 입에서 전능신 말만 나오면 딸이 몹시 싫어하며 아빠와 말 한마디 하기도 싫어하고 그가 딸에게 준 전단지 등을 즉각 쓰레기통에 버렸다.

전능신을 믿기 전의 오응명은 장모 장인의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 그러던 그가 사교에 심취되자 장인 장모는 아예 딸과 외손녀를 자신들 집에 데려가고 그의 영향을 받지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빨리 정신 차리고 수렁에 깊이 빠지지 말라고 거듭 권고했다. 하지만 오응명은 그들을 “마귀”로 여기고 자신의 교에 대한 믿음을 방해하는 모든 것이 “마귀”의 표현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장인 장모는 딸에게 이혼을 권할 수 밖에 없었다.

비굴한 인생, 교회의 벌을 받을까 조마조마

초기에 전능신이 아름다운 동경의 세계였는데 차츰 예전의 방향을 빗나갔다고 오응명이 지난 날을 추억했다. “위에 설교하는 사람”이 신도들에게 자신의 불행한 가족을 저주하라 시사하고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란 혐오감뿐이라고 극력 선양하고 “모든 불행한 사람은 다 마귀”라 하고 기독교 신화 체계를 의도적으로 왜곡해 사람들의 관념을 전환시키려 들었다. “처음부터 교회에 높은 신뢰감을 가졌기에 교회에서 관념 전환을 요구할 때 맹목적인 믿음과 추종을 선택할 뿐 분별이나 고증을 더 하지 않았다”고 오응명은 말했다.

전능신은 신도들을 미혹할 뿐만 아니라 신도들에게 도저히 완성할 수 없는 “임무"를 강요했다. “(전능신은) 복음을 전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겠다고 맹세하는데 그 수량도 비현실적이다. 한달 내에 유주(柳州)시 전 범위 내 설교를 끝내라고 요구해 (우리는) 매일 한 밤중에 나가 복음을 전하고 어떤 사람은 징 치고 북 두드리며 거리에 나가 선전하기도 하고 심지어 2012년에 지구 종말이 온다는(소식)을 유포하면서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고 오응명이 말했다.

위에서 정한 요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오응명과 기타 신도들은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복음 전하기”에 끌려 나가고 늘 2-3개월 건너 한 번씩 자리를 옮기며 선교했다. 그들은 조직에서 제공하는 비좁은 방에 거주하고 인신자유가 적었다. “우리는 매일 커텐을 가리우고 비좁은 공간에 들어박혀 먹고 자고 일하고 미행당할 까봐 아주 조심스럽게 출입했다. 들킬 까봐 자주 자리를 옮겼는데 자유란 아예 없고 교회가 우리에게 배정한 일들이 도둑질과 같이 면목 없어 비굴하게 살아가는 인생이 아주 우울했다. 이런 생활이 어떤 생활인지 당신은 모를 것이다”고 오응명이 털어놓았다.

숨 돌릴 새 없이 여기저기 숨어다니는 것 외에도 오응명은 교회 생활이 아주 두려웠다. 매일 교우과 교류한 후 동분서주하며 각자의 본분을 완성해야 하고 동시에 교회조직 내부의 이런저런 벌이 떨어질 까봐 조마조마해야 했다. 교회내의 벌이란 “상급”의 비판과 탄압 그리고 기타 교우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는 기자 앞에서 감히 과거 생활의 세부적인 것들을 거론하지 못한다.

이런 밤낮 없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말할 수 없는 심적인 고통을 겪어야 했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지만 감히 누구와 입밖에 말을 내지 못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이 그가 의기소침한 소식을 산포한다고 고발해 교회의 벌을 받을 까봐 걱정되고, 하나는 자신이 전능신의 “사람의 행위가 좋던 나쁘던, 말이 맞던 말던 관계 없이 그를 경배하지 않는 사람은 다 괴멸되고 만다”는 사설의 “저주”를 당할 까봐 걱정스러웠다.

거듭되는 반복에 오응명은 몸부림을 쳤다. 긴긴 몇 년 동안 압박을 당하면서 여기저기 숨어 사는 생활이 그를 당초 교회에서 전달받은 아름다움이란 전혀 볼 수 없고 하루하루가 단조롭고 지루하고 온 종일 두려움에 가슴을 조이면서도 발산할 수 없는 울적한 상태에 처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거짓 동영상 제작, 이탈을 결심

전능신 사교 내부에서 오응명은 대령을 맡고 주로 교회 관리를 책임졌다. 비록 처음에 전능신을 깊이 믿었지만 전능신이 선양한 종말론과 교를 믿는 사람에게 대피소를 제공한다는 요언이 파산된 후 교회에서 종래로 종말론을 선양한 적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자 오응명은 교의와 이론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숨막히는 공포의 나날에 오응명이 처음으로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2012년 말 사교조직을 따라 복음을 전하는 도중 집에 돌아와서 반년가량 머물렀다. 하지만 그 기간에 생각이 자꾸 바뀌고 자가당착의 고통에 빠졌다. 오응명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2013년 3월 전능신에서 또 사람을 보내 그를 찾았고 그를 동영상팀으로 배치했다. 그런데 동영상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는 차츰 이상한 기미를 눈치했다. 전능신 신도들이 받는 박해를 보여주는 동영상과 해외 소재가 전부 조작한 것이었다.

이런 동영상 자료에서 오응명은 몇 사람이 서로 다른 케릭터를 연기하고 장면을 꾸미는 사람이 있고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하라고 지도하는 사람이 있음을 발견했다. 예을 들어 신도가 경찰에 붙잡히고 취조당하는 과정, “붉은 용(大红龙)”이 잔혹하게 박해하는 동영상은 모두 교회에서 만든 자작극이다. “우리 주변 사람들이 모두 겪어보지 못했는데 이런 소재가 어디에서 왔는가? 왜서 번마다 북방에서 온 소재라고 하는가? 조작한 것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고 오응명이 말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오응명은 여전히 어떻게 전능신을 벗어나야 할지 몰랐다.

학습을 통해 전능신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얻다

2015년 7월, 그는 교회가 다시 이사하는 틈을 타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후 교육과 학습을 통해 사교와 결별했다. 그는 전능신에 잘못 들어 6년 동안 자신이 범한 착오를 인식하고 자신과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사회질서에 폐해를 끼친 행위을 후회하고 뉘우쳤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많이 완화되어 딸이 그와 교류하기 시작하고 일가족은 지금의 스스럼없는 상태에 만족했다. 그들은 돈이 적더라도 가정이 오붓이 모여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응명은 기자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저에게 기회 준 정부에 감사하고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저가 떠난 6년동안 아내 혼자서 이 가정을 지켰습니다”. 그 말에 아내가 덧붙였다. “그이가 돌아온 것만 해도 좋은 일입니다. 지금 남편의 생활이 정상 궤도에 들어서고 출근 길이 멀고 버스가 없어도 제가 전화만 하면 마중나옵니다.”

오늘 날 오응명은 완전히 사회에 융합되었다. 그가 거주하는 녹재현이 “농촌 토오보오(淘宝)”의 한 거점으로 되면서 올해 “농촌 토오보오” 동업을 신청했다. 마을에 서비스센터를 설립해 마을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에게 부탁해 구매하고 그도 마땅한 농산물을 찾아 대리 판매를 하려 한다. 동업신청은 자신이 관심 있는 전자상거래업이기도 하지만 진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주변 농민을 위해 복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정과 사회로 복귀된 오응명은 지금 인생 재 출발한 기분이고 아주 홀가분하고 자유롭고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의 아내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남편은 아주 착한 분입니다. 그때 사교에 잘못 들었지만 지금은 교육을 통해 완전히 개변되었습니다. 되돌아오기만 하면 좋은 일이지요”.

(책임편집: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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