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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두 두 여신도 “백일비승(白日飞升)” 투신 사망
    
2017-04-19  개풍망  筆者:왕위    

매번 밤 하늘에 빛나는 촘촘한 뭇 별을 바라볼 때면 나는 저도 모르게 한 사람을 그리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듣지 못한다. 부디 천국에서 편안하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1970년에 내몽고 포두(包头)시에서 출생했다. 1990년 내몽고대학에 입학하고, 군사훈련 때 우리 반의 유사원(刘思媛)에게 한눈에 반하고 긴 머리 휘날리고 수려한 그녀를 사랑했다. 끈질긴 구애 끝에 결국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대학 4년 동안 우리는 행복하게 후허호터시의 거리를 누비고, 소군묘(昭君墓), 대소소사(大小昭寺), 황하 나루터 등 곳곳에 우리의 발자취를 남겼다. 우리는 졸업 후 조속히 결혼하고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사원은 나와 같은 시 산하 토우기(土右旗) 구문(沟门)진 서만(西湾)촌에 살았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소시적부터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나는 꼭 열심히 노력해서 체면 있게 그녀를 맞아들여 멋있게 잘 살게 하겠다고 속다짐 했다.

1994년 대학 졸업 후, 우리는 사랑을 위해 함께 광주로 남하했고 나는 아름다운 신부를 맞아들이기 위한 자금 축적에 매달렸다. 우리는 매일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야 돌아오면서 힘들지만 서로가 있음으로 하여 너무 행복했다. 이렇게 어느 덧 3년이란 세월이 흘러 한창 결혼에 박차를 가하고 신혼 여행지까지 봐 두고 있을 때 갑작스런 변고가 생겨 우리의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우린 그때부터 천애지각에 떨어지고 결국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섰다.

1995년 토우기 고향에 계시는 사원의 부친이 의외로 에레베이터 승강구에 떨어져 심한 골절과 뇌손상을 입었다. 뜻밖의 소식에 사원이 날벼락 맞은듯 나의 품에 쓰러졌다.

우리는 결혼 준비 자금을 모두 사원 아버지 병치료에 투입했다. 하지만 사원 아버지는 두개 내의 어혈로 호전되지 않았다. 어느날 사원이 아버지를 구원하는 방법을 찾았다고 말하더니 한 마을(포두시 토우기 구문진 서만촌) 사람 왕춘화(王春花)를 따라 법륜공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왕춘화가 법륜대법을 수련하면 생사를 초월할 수 있고 원만해서 비승한다고 말했다. 그 당시 나는 사원이 아버지 병 때문에 급한 김에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싶어 별로 개의치 않고 의학을 믿으라고 다독이기만 했다. 휴가가 곧 끝나 나는 광주에 돌아가 출근을 하고 그녀는 고향에 남아 계속 아버지를 보살펴야 했다.

그런데 꿈에도 생각지 않게 그날 후부터 사원이 종일 공을 연마하고 가부좌하고 이홍지의 녹음을 듣고 녹화를 보고 “전법륜”을 읽었다. 사원은 이렇게 하면 아버지 건강이 회복될 줄 알았지만 병이 악회되어 1996년 5월에 영원히 그녀를 떠났다. 후사 처리를 끝낸 후 사원은 현지에 좀 더 남아 마음 추스르겠다며 나더러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별다른 생각없이 먼저 돌아갔다. 그런데 사원의 전화가 뜸해지고 내가 전화를 해도 별로 받지 않았다. 그래서 주말을 이용해 그녀를 광주로 데려오려고 갔더니 마음을 가다듬고 대법을 수련하겠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대법이 나까지 거절하는지 의심되어 나는 그녀의 말과 그녀 “동수”들의 말을 들어보았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어처구니 없고 사원이 나의 권유를 받아 들이지 않아 나는 혼자 광주로 돌아 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출근하면서 그녀가 어느 날 깨닫고 돌아와 나를 찾을거라고 생각했다.

1997년 말 사원이 나한테 줄게 있다며 가지러 오라고 전화를 하기에 그녀가 생각을 바꿔 자기를 데리러 오라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방문을 여는 순간 집안이 텅 비어있고 거실 탁상 위에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는데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예전에 내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아 아버지가 내 곁을 떠나게 만들었다. 지금 나는 곧 원만하게 된다. 당신을 보우할 것이다.” 나는 허겁지겁 여기저기를 찾아 헤매다 경찰에까지 신고했다. 12월 13일, 시신 확인을 오라는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다른 “공우” 왕춘화와 함께 “백일비승”의 원만의 경지에 달하려고 1997년 12월 13일, 토우기 구문진 서만촌에서 투신 자결로 “비승”을 택했던 것이다! 사원의 창백하고 수척해진 시신 앞에서 나는 금새 비오듯 눈물을 쏟았다.

잘 가거라 사원아!

실은 그녀가 어찌 알랴, 그녀 없는 나의 인생이 원만할 리 없다. 나는 그녀가 사무치게 보고 싶다. 지금 나는 내몽고로 돌아왔고 우리가 함께 지낸 후허호터시로 돌아왔다. 매번 눈 익은 거리를 스쳐 지날 때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우리가 함께 했던 때의 일들을 어제 일처럼 떠올린다.

사랑하는 사원아, 부디 천국에서 잘 보내거라!

(책임편집: 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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