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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신이 내 딸을 정신질환자로 만들었다

2017-08-04 기원 하 다:개풍망 Auteur:이운(구술) 문해(정리)

저의 딸 주망제(周望娣)는 향수(响水)현 장집(张集)에 사는데 1997년에 결혼하고 1999년 2월에 손녀 첨첨(甜甜)을 낳았습니다. 사위 진봉(秦峰)이 유선TV서비스회사에 근무하고 행복하고 단란한 생활에 손녀도 잘 자랐습니다. 2005년 첨첨이 소학교에 입학하자 진봉이 망제에게 일자리를 찾아줬는데 유선TV AS담당으로 현장 검수와 설치 등 일에 파견될 때도 있었습니다. 1년 후 그들이 현성에 아파트 사고 차도 마련하고 생활이 활기차고 아기자기했습니다. 좋은 사위 얻었다고 이웃들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그런데 호황도 잠깐, 2009년 구정 지나고 첫 출근 날인데 사위가 황급히 달려와서 말했습니다. “어머니, 망제가 핸드폰을 꺼놓고 하루 종일 보이지 않아요, 빨리 찾아야 돼요.”

그래서 온 가족이 친지들을 다 동원해 찾기 시작했는데 갈만한 곳은 다 전화하거나 찾아가 봐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아 파출소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래도 소식이 전무하고 시간이 하루하루 흘렀지만 망제는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진봉이 신문, TV, 인터넷에 사람 찾는 광고를 내고 파출소를 통해 아파트단지 입구, 직장 출입구, 출근노선 폐쇄회로 TV를 다 확인, 결국 낯선 남녀들 속에 끼어 있는 망제를 발견했습니다. 망제가 집을 나설 때 설에 입던 옷을 입었고 아파트단지를 나선 후 간판 없는 오토바이를 탄 남자 뒤에 탔는데 골목길로 접어들자 CCTV에서 사라졌습니다.

딸이 가출한 후 우리 부부가 거처를 딸 집으로 옮겨 진봉 부녀의 생활을 돌봤습니다. 어느덧 8년이란 시간이 흘러 첨첨이가 다 커 대학 입시를 앞둔 나이로 성장하고 8년 동안에 밝고 활달하던 첨첨이가 과묵해지고 소학교 때 어문 선생님이 “나의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작문을 써 오라면 첨첨이는 나의 아빠를 썼습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첨첨이가 버린 숙제 책에 깨알같이 쓴 “엄마 언제 돌아와요?”라는 글을 볼 때마다 저는 참지 못하고 실성통곡을 했습니다. 엄마를 그리는 마음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불쌍한 애가 벙어리 냉가슴 앓듯 괴로워도 말을 못했습니다.

또한 전들 어째 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날이면 날마다 눈물로 지새우고 손녀와 사위의 정신적인 안식처가 아니라면 진작에 딸 찾아 집을 나섰을 것입니다. 깊은 밤이면 딸이 악마에게 잡혀 꽁꽁 묶인 채 불에 타는 꿈을 자주 꿨습니다. 번마다 악몽에서 깨어나서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딸이 전화 오기를 바랬습니다. 딸이 집을 떠난 후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딸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 습관처럼 되었습니다. 비록 전화 그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영원히 “실례지만 거는 전화는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이지만 딸이 어느 날인가는 휴대전화를 다시 켜리라고 믿었습니다. 저는 잊지 않고 딸 휴대전화에 요금을 충전해 영원히 중지되지 않도록 만들고 딸이 떠난 후부터 저의 휴대전화는 한번도 꺼 본적이 없이 항상 대기 상태입니다. 전화 그 쪽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를 수시로 바라고 바랐습니다. 내 딸아, 너 지금 어디에 있는 거니? 어서 집에 돌아오거라, 엄마는 네가 보고 싶다!

딸이 가출한 후 사위 진봉의 정신 상태가 갈수록 황폐해지고 일하는 데 자주 실수가 생겨 직장 상사에게 인정을 받던 그가 2년 후 그나마 배려해 준 덕에 창고센터로 보내져 간단한 화물배송 일을 하게 됐습니다. 매번 연휴 때면 그는 차를 몰고 이불과 먹을 거리, 사람 찾는 광고를 많이 만들어 싣고 전국을 다니며 딸 망제를 찾았습니다. 사위의 차엔 언제나 망제를 찾는 광고와 사진이 붙어있습니다. 매번 그가 돌아올 때마다 행여나 딸을 데리고 올지 기대해 봤지만 풀이 죽은 사위의 기색을 보면 결과는 뻔했습니다. 말라가는 사위의 얼굴을 보며 법원에 가서 이혼 신고를 하고 망제를 기다리지 말고 마누라 다시 찾으라고 우리 부부가 계속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머리만 절레절레, 방에 갇혀 식음을 전폐하고 자학을 시도했습니다. 사위가 우리 보다 망제를 더 그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쭉 동창으로 지내다 사랑하는 사이로 됐으니깐요

2017년 2월 28일 오후,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소스라쳐 깨어났는데 딸인지를 확인하러 오라는 파출소 전화였습니다. 잠깐 멍해 있다가 급히 진봉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딸을 보는 순간 우리는 정녕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몰라보게 변한 지척의 딸, 흐리멍덩한 눈빛에 가무잡잡한 얼굴, 우리가 상상하는 상봉의 정경이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모녀, 부부가 만나 부둥켜안고 울고불고 오래 만에 만난 격동, 눈물이 바다를 이룰 것 같았는데 딸은 우리를 알아보지 못한 듯 그저 멍하니 앉아만 있었습니다.

딸의 정신이 좀 이상하고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한다고 파출소 경찰이 설명했습니다. 당초에 “전능신”이란 조직이 딸을 속여 회원으로 포섭해 “대령”이라는 두목이 망제를 데리고 하남, 안휘, 하북, 산동 등 곳곳을 다니며 “전능신”을 위해 있는 힘껏 일하다 그 두목이 공안기관에 붙잡힌 후 딸의 거처를 진술해 파출소에서 안휘에 가서 망제를 구조해내고 여기로 데리고 와 우리 가족을 찾아 알렸다는 경과를 말했습니다.

딸이 정신이 이상했으므로 경찰은 우리가 딸을 집에 데리고 가서 감시 관리하는데 동의했습니다. 수업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첨첨이가 엄마를 보는 순간 그리움을 억제하지 못하고 엄마를 끌어안고 엉엉 통곡하며 모든 괴로움과 그리움을 쏟아냈습니다. 진봉은 오래간만에 만난 연인을 대하듯 수건으로 망제의 입을 닦고 또 닦아주고 밥 그릇을 들고 조심스레 한 술 한 술 떠 먹여줬습니다. 저는 마음 쓰려 고개 돌리고 희비교체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딸이 돌아와 기쁘면서도 기다리던 딸이 바보가 되어 돌아오니 슬프기도 했습니다.

저녁에 우리는 딸을 깨끗이 목욕시키고 잠을 재웠습니다. 그리고 진봉이 우리 방에 들어와 말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제가 차를 팔아 망제를 데리고 상해 제일 좋은 병원을 찾아가 치료받고 하루빨리 건강이 회복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는 망제가 우리 곁을 떠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제가 평생 망제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진봉의 말에 우리 노부부는 눈물만 흘릴 뿐 감격에 차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영감이 진봉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너 생각대로 해라, 우린 언제나 너를 후원한다. 우리 가산을 다 팔아서라도 망제의 병을 고쳐 좋은 생활을 다시 누리게 해야지.”

딸이 바보가 되었지만 우리 일가에게 희망이 생기고 행복이 바로 지척에 보이는 듯 했습니다.

(책임편집: 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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