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 교육 수준인 쭤자오쥔이라고 하고 아내인 선싱펑 (申興鳳)는 문맹이다. 1999년에 다른 사람의 소개팅을 받아 우리 둘이 결혼하게 되었고 시샹현(西乡县) 사허진(沙河鎭) 융싱촌칠조 (永兴村七组)에 살고 있다. 나는 집과 멀리 있지 않은 시샹현 외곽에 있는 한 식용균 가공 공장에서 일하면서 아내는 집에서 돼지 몇 마리를 키우고 1묘의 경작지를 경영하며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아내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다. 2002년에 딸의 출생은 우리 가정에 무궁한 기쁨을 안겨 주었다. 나도 딸 덕분에 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어 자기의 손으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 다층 건물을 지고 딸을 성인으로 키우도록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전능신이 우리 집에 들어온 후 모든 장밋빛 기대가 다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이 일을 얘기하려면 처음부터 얘기해야 한다.
2003년 춘절 직후, 그 때 딸이 몇 달 안 되었는데, 원래 위장병을 앓던 아내는 산욕기 때문에 몸이 더 약해지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만 할 수 있었다. 농촌 사람들이 성실하고 너그럽다. 농사가 없을 때 이웃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날 옆 집의 라오장(老張)과 두 여자가 우리 집에 와서 한창 인사말을 주고받은 후, 라오장이 이렇게 말했다.
"싱펑, 니가 위장병을 앓고 오랫동안 치료 받아도 나아지지 않지? 사실은 이것은 병이라고 말할 수 없어. 나를 따라 /‘신/’을 믿으면 돈을 내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나아질 거야. 사람을 구조할 수 있는 거 이 신 밖에 없어. 또 이 신이 모든 병을 다 치료할 수 있어. 이 두 사람이 바로 증명해 줄 수 있어.” 그 다음에 두 여자가 각각 자기가 당뇨병과 고혈압을 앓고 나서 신을 믿게 된 후 돈 한푼 안 써도 병이 바로 나아졌다는 과정을 설명했다. 도리에 맞는 그녀들의 말을 듣고 나서 아내는 다소 진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또한 라오장이 아내에게 선동적인 말을 하기도 했다. “마음 속에서 믿으면 되지. 돈을 안 써도 병이 나아질 수 있는데 좋지 않아? 다들 너를 위해서야” 어렸을 때부터 미신 사상이 심각하던 아내는 자기의 부유하지 않는 집안을 생각하면서 해보자는 마음으로 승낙했다.
그후 아내가 하루가 멀다 하고 그들이 약속한 곳에 가서 행사에 참여했다. 바쁘게 모임에 뛰어다니기는 때문인가 심리 암시의 작용인가 며칠 지난 후 아내는 밥도 더 많이 먹게 되고 배도 그렇게 예전처럼 많이 아프지 않게 되었다. 아내는 이는 다 신을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그후 더 굳게 신을 믿게 되고 눈멀어졌다.
제때에 모임에 참여하고 /‘소감 교환/’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멤버를 찾기도 했다. 이때 한 여성은 아내한테 이 예수보다 더 좋은 /‘신/’의 이름은 전능신이라고 말했다. 아내의 병이 “나아진”것을 보고 나도 기뻐져서 어떤 이름이든 우리 집에 좋은 점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내 마음을 읽어보고 나한테 같이 /‘신/’을 믿으라고 권했다. 그후, 우리는 다른 집의 모임에 가고 영가를 부르고 춤을 추거나 내 집에서 모임을 하기도 했다. 그 때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약을 찾은 것 같았다. 어느 날 모임을 했을 때 몇 자매가 일부 자료를 내 집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아무튼 집에 빈 방이 있다고 생각해서 바로 서슴없이 승낙했다. 그후 내 집이 자료 창고가 되고 한밤중 그들이 오토바이나 삼륜차로 몇 마대의 물건을 실어 왔다. 그 중에 전능신 CD도 있고 <말이 육체에서 검증된다>, <동방에서 나타난 번개>, < 구세주가 이미 구름을 타고 간다>, <신이 전세계에 말했다> 및 <신의 집에서 심판 시작> 등 책도 있었다. 집의 한 구석에 꽉 차여 있었다.
2004년 7월 민중의 신고를 받아 경찰들이 내 집에서 전능신 선전물을 많이 찾아냈고 아내는 유기징여 1년의 판결을 받았다. 1년동안 내가 농사를 하면서도 딸을 돌봐야 하고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다 했기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아내는 형기가 다 차서 석방되고 집에 돌아온 후 여전히 예전의 사이비 종교 멤버와 연락을 하고 모임에 참가했다. 다만 우리 집에서는 하지 않는 것이다. 나도 아내를 설득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괜찮아, 중간에 포기하면 안돼, 나중에 조심하면 되지 뭐”라고 말했다. 나도 아내의 말이 도리에 맞다고 생각했다. 그후 우리의 행동이 더 조용해졌다.
2012년 12월에 “세계 종말” 소문이 한창이었다. 그 동안 아내가 모임에 갔을 때 초등학생 4학년 학생인 딸도 데리고 가고 어렸을 때부터 딸이 /‘신/’의 교육을 받도록 했다. 딸도 처음에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점차적으로 우리를 따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때로는 나에게 신이 자기가 공부 잘 할 수 있게 지켜주고 평생에 바라는 대로 얻을 수 있게 해줄 거라고 말했다. 우리 가족 모두 전능신의 가호에 희망을 맡겼다.
2년동안 딸이 자주 밤에 우리를 따라 놀러 나가는 바람에 공부할 시간도 없고 마음도 없어서 성적이 급격히 나빠졌다. 그래서 종종 반에서 꼴등을 했다. 모임을 했을 때 일부 자매는 “지금 학교에 다니는 거 소용 있냐, 신만 믿는다면 필요한 것이 다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학교 다니는 거 새로운 멤버를 찾는 것만 못해서, 더 많은 멤버를 찾는다면 신이 우리에게 복을 줄 거야” 라고 말했다. 이런 말을 듣고 나서 딸이 더 이상 학교에 다니는 생각이 없어졌다.
2015년 국경절 전에 중학교 1학년인 딸 아이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아내는 딸의 결정을 지지했다. 아내의 생각에는 일심으로 신을 믿는다면 필요한 것을 모두 갖출 수 있다. 나는 딸에게 최소한 중학교는 졸업해야 한다고 타일렀다. 하지만 딸은 학교를 가느니 농약을 먹겠다며 반항했다. 나는 사고가 날까 봐 걱정되어 딸이 하고 싶은 대로 학교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게 해줬다.
지금 반 사이비 종교 봉사자의 친절한 도움 덕분에 나는 전능신 사이비 종교의 사악한 본질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남의 집의 작은 양옥과 자기가 살고 있는 낮고 습한 토담집을 대조해 보고 또 원래 행복하게 살고 있었던 집은 지금 징벌을 받은 아내와 학교를 그만둔 딸 때문에 불행해 진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15살 미만 딸의 연약한 몸과 내가 산에 올라 때나물을 했을 때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생각하면서 내 마음이 더욱 아프고 눈물도 내리게 된다.
(피해자 쭤자오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