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페이지  >  媒体报道

법륜공 단속, 중국 정부의 현명하고 단호한 조치

2017-08-30 기원 하 다:개풍망 Auteur:단림

전 법륜공 성원이고 심각한 법륜공의 피해자인 저는 중국정부가 법적으로 법륜공 사교 조직을 금지한 데 대해 남다른 생각과 뼈에 와 닿는 소감이 있습니다. 오늘날 저는 위대한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 사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자부심 큰가를 더욱 깊이 느낍니다. 전 법륜공 성원들이 줄줄이 사교의 정신적 속박에서 벗어나 다시 새로운 삶을 얻고 찬란한 해빛과 따스한 행복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법륜공 사교 조직을 신속하게 단속, 통제하고 수련자들을 깊이 감화시키고 전력 구원한 중국 정부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1. 중국 정부가 신속하게 법륜공을 단속, 궁지에 몰린 많은 수련자 생명을 구원

저는 1995년말에 처음으로 법륜공을 접촉하고 후에 점점 매혹되고 심취되었습니다. 그때 연마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1998년에 접어들어 수련자 중 하던 장사를 그만 둔 사람, 공직을 버리고 집에서 연마하고 법을 학습하고 나가 “홍법”하는 데만 전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홍지가 “10년 8년은 내가 기다리지 않는다. 짧게 몇 년이면 수련에 성사한다”고 말했는데 법륜공이 전파되기 시작한 1992년부터 1999년까지 7년이니 “승천 원만” 시각이 곧 다가오므로 “속인” 들이 갖고 있는 “명리정(名利情)”을 모두 내려놓아야 되는데 계속 출근하든가 장사를 하면 “정진”과 “층차 제고”에 영향을 받는다 생각하고 “원만 승천”할 준비에 서두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장춘 이홍지가 살던 곳을 찾아가 “참배”하는 사람들이 있나 하면“원만”하려는 마음에 끌려 조급하고 불안하고 직장 일이나 생활에 안착하지 못하고 곳곳을 전전하며 모여서 교류하고 “하늘에 올라갈” 일을 검토하는 사람들도/…/…한동안 뒤죽박죽, 엉망진창, 요괴가 횡행했습니다.

당시 수련자들의 열광이 통제불능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법 학습” 때 “언제 원만하는가”가 가장 큰 관심거리고/…/… 그때 저는 그나마 약간은 이성적이었던지 “문화대혁명” 때 보다 더 열광적인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계속 이렇게 발전하다간 결국 어떻게 될까?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과연 승천하여 “원만”할 수 있을까? 만약에 “원만”하지 못하면 그들이 행여나/…/… 당시 저는 감히 더 생각을 잇지 못하고 이런 생각을“동수”들과 나눌 생각은 더더욱 엄두도 못 내고 망연 중에 그 영광적인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1999년 전에 저희 지역의 연공소에 적지 않은 일이 터졌습니다. 실례를 든다면 연공장에서 가부좌하다가 심장병이 도져 죽은 사람, 정신이상에 걸린 사람, 연마하다가 “정말로 미치는” 상태가 나타나고, 똥 먹고 오줌 마시는 사람이 있나 하면 병이 있으면서도 치료와 약을 거부해 죽는 사람이 늘어나고 환각이 생겨 자살하고 살인하는 경우도 날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1999년 7월 법륜공이 단속되기 전까지 법륜공으로 인해 죽은 사람이 1400명을 넘는 것으로 추계되었습니다.

총체적으로 당시 법륜공 내부가 무척 혼란스러웠는데 이홍지의 유혹에 넘어간 많은 수련자들이 곧 “원만”한다고 “터득”했습니다. “원만”의 형식이 “홍화(虹化, 분신자살)”일 수도 건물이나 강에 투신할 수도/…/…때문에 후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행이 중국정부의 현명한 결단으로 신속하게 법륜공을 금지했기에 말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법륜공 심취자들이 “원만”을 추구한다고 죽고, 얼마나 많은 수련자들이 또 이홍지의 거짓말을 믿고 병을 앓으면서 치료를 거부해 죽었겠는가?”

2. 많은 수련자 가정이 붕괴에 임박

법륜공을 수련한 후 특히 심취자들은 이홍지의 “명, 리, 정을 내려 놓으라”는 말에 현혹되어 혈육을 원수로 여기고 가정을 걸림돌로 삼아 정을 버리고 욕망을 버려 부부사이에 불화가 생기고 심지어 사이가 틀어져 원수간으로 변하기까지 했습니다. 1999년 전 이런 상황이 아주 심각했는데 연마 때문에 부부가 별거하고 이혼하는 경우, 아내가 “홍법”하느라 집안일이나 자녀에 무관심해 가정이 붕괴에 임박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북성 창주(沧州)의 호(胡)씨 여성 수련자가 매일 집에서 연마하고 “법 학습”을 하거나 나가 “홍법”하느라 결혼 나이가 다 된 아들을 두고도 무관심하고 딸이 학교를 그만둬도 자신과 상관이 없는듯 했습니다/…/…나중에 그녀가 외지에서 앓아 눕게 되자 옆에서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와서 데려가라고 했더니 딸이 “우리 집은 그녀가 필요 없다. 집에서 자기 책만 보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니, 품삯 팔아 돈 벌어 오빠 장가를 보내기도 바쁘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에서 법륜공을 금지한 덕분에 수련자들의 이런 미친 행위가 수렴되고 억제되여 붕괴에 임했던 가정들이 다시 안정적이고 단란한 생활로 돌아왔습니다.

3. 적시에 많은 미친 사건의 발생을 억제시키고 사회질서를 수호

1999년 초봄으로 기억되는데 이홍지가 27군 류계영(刘桂荣)의 석가장 거처에 왔는데 다들 급히 27군 대문 앞에 가서 사부를 “알현”하라는 전화 통지를 갑자기 받았습니다. 그날 많은 수련자들이 그곳에 몰려갔는데 당직 무장경찰이 권유해 되돌려 보냈습니다. 그 후에 다시 “4.25사건”이 벌어지고, 1999년 4월 24일 오후 저는 우리동네 수련자들을 데리고 밤 12시 전에 북경 북해공원에 집합하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통지하는 사람이 전화에서 “누가 이 일을 물으면 통지를 받았다 하지 말고 다들 자발적으로 갔다”고 말하라고 당부했습니다.

“4.25”사건 후 여러 지역 연공장에 전 국가지도자와 중국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의 정치성을 띤 반동 전단이 나타났습니다. 정말로 당금 폭풍우라도 쏟아질 것 같은 분위기고 화약냄새가 물씬 풍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법륜공 조직이 큰 정치적 음모를 기획하고 있다는 눈치를 챘습니다.

실은 “4.25” 법륜공이 중남해를 둘러싼 공격 사건이 일어난 후 전국 곳곳에서 정부청사나 언론사를 포위공격하는 불법집회가 300여차나 발생해 사회질서를 혼란케 했습니다. 이대로 나갔더라면 국가가 막대한 손해를 보고 법의 존엄성이 도전을 받게 되고 백성의 안정된 생활에 심각한 피해와 파괴가 불가피했을 것입니다.

1999년 7월 20일, 중국정부가 드디어 현명하고 단호한 결단을 내려 법에 의해 법륜공 사교 조직을 금지했습니다. 이로써 법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사회질서를 안정시켰으며 백성들이 안정된 생활을 되찾았습니다.

(책임편집:신목)

分享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