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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윤공의 속임성을 인식하게 된다

2015-01-22 기원 하 다:Kaiwind Auteur:왕진동

/‘1.23/’사건 발생 후 법륜공 미국 총부 장이평(尔平)대변인은 분신자살을 한 우리가 대법제자가 아니라 /‘대법/’을 파괴하는 /‘마귀/’라고 공개성명을 발표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도 저는 너무 태연했으며 사부가 우리를 시험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사실 이토록 하늘과 땅이 밝은 태평성세에 안거낙업(安居乐业)을 누리던 평범한 남녀노소 백성들이 이홍지 법륜공의 새빨간 거짓말에 매혹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천안문광장까지 와서 분신자살하면서 법을 위반할 수 있었겠습니까?   

CCTV /‘초점대담/’ 프로그램에 나오는 /‘1.23사건/’ 심층보도를 보고서야 미국 법륜공총부에서 정주 법륜공인원에게 우리 몇 사람을 조사하라는 지령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홍지가 우주주불(宇宙主佛)로 사칭했으면 응당 모르는 일이 없고 막히는 일이 없고 못하는 일이 없고 신통력이 무한해야 할 것 아닌가, 당신의 /‘법신/’이 없는 곳이 없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무엇때문에 사람을 개봉까지 보내 조사를 시키는가?     

2001 7 20, CCTV기자가 농담조로 오늘 인터뷰를 시작하기 앞서  먼저 좋은 소식부터 알리는데 당신들의 사부가 면밀한 조사를 통해 입증한 결과 분신에 참여한 당신들이 /‘대법/’제자가 틀림없긴 하지만 깨달음에 편차가 생겼다고 말했답니다고 전했습니다   

이홍지가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편차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지나친 편차적인 행위가 생기면 그의 /‘법신/’이 적시에 우리를 지적하고 그의 /‘법신/’과 /‘법륜/’이 보호하기에 법륜공을 수련하면 가장 안전하고 절대 위험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미 입증된 전국에서 법륜공 수련 때문에 생긴 치료와 약을 거부하고 동맥을 자르고 강에 투신하고 아파트에서 투신하는 등등 자살, 자해와 타살로 죽거나 장애자로 된 1700여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초기에 저는 이 모든 것이 진실이 아니고 정부에서 조작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량의 사실 앞에서 저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뻔한 사실 앞에서 양심을 속이고 이 모든 것을 부인할 수 없었고 지난날에 목숨을 바쳐 추구하던 것들이 도대체 정말로 맞는 것인지, 자신에 대해 책임져야 했습니다. 과거에 발생한 모든 일을 다시 뒤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함   

분신사건 후 오랫동안 심취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지만 천안문광장에서 단 불은 결국 저를 첨예한 갈등의 벼랑 끝으로 내몰았습니다. 사실상 저의 영혼이 재차 탈바꿈하게 되는 시작이자 신생으로 향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2001 1 30, 저는 북경시공안병원 병범과(病犯科)로 이송되었는데 침대 네 개인 병실에 저 혼자 들었습니다. 감염 방지를 위한 격리 치료라고 하는데 매일 2회 자외선 치료를 받고 가장 좋은 외과 의사를 배치 받았습니다.   

양말())의사는 친절하고 1.80m이상의 훤칠한 키에 허여멀쑥하고 행동거지도 대범한 30대였습니다. 병실에 들어설 때마다 항상 미소 짓는 얼굴로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번마다 저의 상처를 면밀히 검사하고 조심스레 처리하며 저의 기색을 살피며 제가 아파할까 봐 각별히 신경을 썼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매번 감사하다는 말을 할 때마다 그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고 말했습니다.   

양말 의사뿐만 아니라 병범과의 의사와 간호사들 모두가 이렇게 병범들을 대하고 있음을 저는 실감했습니다. 각 구치소에서 여기로 보내진 병범들은 별라별 죄수가 다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사, 간호사들에게는 모두가 환자였고 우리를 가족처럼 대했습니다. 병범에게 공급되는 하루 세끼 음식은 전부 영양을 고려하여 짠 세트인데 매달 식대가 400-500원 정도로 이렇게 좋은 식사는 병범들이 상상도 못했습니다. 병범이 밤중에 배고프다고 먹을 걸 요구하면 당직 간호사들이 자기 지갑을 열어 야시장에 가서 먹을 것을 사왔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정말로 믿기 어렵습니다. 그들의 의덕과 숭고한 직업정신은 저를 깊이 감동시켰습니다   

저에 대한 관심은 더 각별했습니다. 병실에 원래 난방이 있는데도 양말 의사는 추우면 상처 치유에 불리하다며 상급에 건의하여 전열기를 구입했고 저의 조속한 회복을 위해 특별히 회원()과일즙을 사들여 이루다 표현할 수 없도록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CCTV의 첫 취재가 적수담병원에서 진행되었는데 그날 저는 침묵으로 거절했습니다. 2001 2 2 CCTV 가 재차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그날 병원 영도가 저의 건강상태를 문의하고 제가 고맙다고 하자 인터뷰에 응할 수 있는가 물었습니다. 저는 쾌히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고 사실대로 부담 없이 이야기하라고 하기에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 어째서 천안문광장에서 집단 분신자살을 시도했습니까?   

: “대법이 정법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대법을 사교로 취급했습니다. 대법의 진정한 수련제자인 저는 대법을 생명보다 더 중하게 여겨 대법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생명도 아낌없이 희생할 수 있었습니다. 천안문광장에서 벌인 분신자살은 정부에 대한 항의행위며 수많은 동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천안문광장에 가서 호법한 것이고 분신자살이라는 정법의 최고 형식을 취했을 뿐입니다   

: “유사영이 겨우 열 두 살인데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을 안 해 봤습니까?   

저의 마음 가장 아픈 곳을 깊숙이 찌르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대법/’제자로서의 /‘고도/’의 인식으로 대답했습니다.   

: “유사영 모녀가 북경 오기 전에 제가 수차 애써 말렸고 기차에서 만날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리고 사부님이 말한 것처럼 이들 생명이 오기 전에 이렇게 안배된 것이니 제가 무슨 이유로 재삼 타인의 대법을 위한 헌신을 간섭할 수 있겠는가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 “유운방이 분신하지 않았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 “북경에 와서 이 일을 하는 것은 모두 자원입니다. 강요에 의해 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수련이 일정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만이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으므로 후회가 없습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뜻이 있는데 강요할 수 없고 어떻게 하는가는 자기가 결정할 일이므로 저는 아무런 평가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 “당신들은 자신의 원만에만 집착했는데 가족들에게 어떤 결과를 안겨 줄지 사전에 생각 해 보았습니까?   

: “사부는 설법에서 한 사람이 수련하는 과정이 속인의 집착심을 버리는 과정(인체에 대한 집착 포함)이고 원만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집착이다. 일체 유위법(之法)은 허무한 것이니 수련만 하라, 모든 것이 다 자연에 달린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목적을 가졌든 저는 분명 사부님의 설법에 따라 저의 수련을 지도했고 또 이렇게 했습니다/…/… 물론 저는 자신이 인간의 많은 정을 버리지 못했음을 승인합니다. 하지만 저는 애써 수련했습니다. 어떻게 가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그 모든 것을 이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상업으로 보고 거부했습니다. 예로부터 큰 일을 할 사람이 사소한 개인 감정에 얽매면 큰 일을 해낼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자신이 그 순간에 그렇게 태연하고 차분할 수 있음을 가슴 뿌듯하게 느꼈습니다.   

: “지금 후회합니까? 이렇게 화상을 입은 얼굴로 향후 어떻게 가족들과 세상 사람들을 만나겠습니까?”    

: “저는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오기 전에 저는 모든 것을 다 생각했고 분신 후 이어질 상황에 대해서도 충분히 예견했습니다. 이런 예견을 한 동수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소원대로 될 수도 (죽음) 있고 구조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광장의 안보가 겉으로는 느슨한 것 같지만 내부는 경계가 삼엄하고 사복 경찰이 곳곳에 있고 또 그들의 눈을 속이기 쉽지 않습니다. 경찰차에 소화기가 준비된 것은 뻔하구요. 저 자신이 차를 몰기에 잘 알고 있는데 자동차 관리법상 도로를 달리는 모든 자동차는 반드시 소화기를 준비해야 하는데 천안문광장에 경찰차량이 여러 대 있으니 두말할 것도 없지요. 만약에 구조된다면 불에 타 볼모양 없을 것은 뻔한 일이지요. 그렇지만 향후에 어떻게 가족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날지는 저에게 중요치 않았습니다. 저는 “태어나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란 사부의 말을 따랐고 대법을 위해 헌신을 했으니까요.”   

인터뷰를 끝낸 며칠 후 또 어느 TV기자가 찾아와서 취재를 했는데 우선 저의 건강에 대해 물었고 또 생활상 무슨 요구 사항이 없는지, 치료에 대해 의견이 없는지 등을 묻고 나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전에 있었던 내용 외에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면서 또 흥미 있는 한 가지 소식을 저에게 알렸습니다.   

: “/‘대법/’을 위해 헌신했고 당신이 이 지경까지 되었는데도 미국의 /‘법륜대법/’ 총부는 당신들이 /‘대법/’을 파괴한 마귀고 /‘대법/’ 제자가 아니라는 공개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대해 하실 말씀이 없습니까?   

: “저는 대법의 진수제자이며 일언일행 모두 대법의 지시대로 따라했습니다. 사부님이 제자들에게 나서서 진상을 알리고 호법을 하라고 거듭 말했고, 다만 제가 취한 형식이 최고 형식이었을 뿐입니다.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저는 그 누구의 승인을 받기 위해 수련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는 다 짐작하고 있습니다. 저에 대한 시련으로만 생각했을 뿐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모든 대법제자들이 한차례의 시련을 겪었을 뿐 대단할 것도 없습니다.” 끝으로 기자가 저의 건강이 조속히 회복되기를 기원했고 저는 깊은 사의를 표시했습니다.   

3월 하순에 이르러 저는 가족이 점점 그리웠습니다. 70세 고령의 어머니와 아내, , 그리고 정 깊은 동생들, 그들은 나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나, 어머니에게는 얼마나 큰 충격이고! 감당할 수 있을까? 어머니 건강은 어떤지? 동생들도 내 걱정을 퍼그나 했을 테고, 딸의 남자 친구와 그 가족들에게도 적잖은 폐를 끼치고 고통을 안겼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저는 죄책스럽고 상심했으며 이런 감정이 뼈속까지 스며들었습니다. 그러다가도 이 모든 것을 저에 대한 시련으로 받아들이며 억지로 자신을 진정시켰습니다.   

4 3, 하남 TV의 두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해 왔습니다. 친절하고 붙임성이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금방 하남성에서 저의 아내와 딸을 취재하고 오는 길이라며 저에게 그들의 근황을 전해왔습니다.   

: “지금 가족들이 보고 싶지요?   

: “너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궁금하구요.   

“당신 가족과 직장 동료들에 따르면 당신은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며 동생들에게 좋은 형이고 직장 동료들과 상사들도 당신이 나쁘다는 사람 없습니다. 그들은 또 1992 12 31일 당신이 철탑공원내 살얼음 잡힌 물에 뛰어들어 1 1녀와 네댓살 짜리 어린이 두 명을 구한 이야기도 들려줬습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고 정말로 너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기자의 어투에서 저에 대한 깊은 애석과 동정을 엿 볼 수 있었습니다   

: “어르신께 아무리 잘해 드린다 해도 자식 키워준 은덕에 보답하지 못하면 효자란 말을 들을 자격이 없습니다. 하물며 저는 노인네를 하루도 복 받게 해드리지 못했으니 부끄럽기만 합니다. 지금은 더더욱 미안하지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시고 어려운 생활에 부대끼다보니 동생들 결혼 때도 형편없었고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할수록 죄책스럽습니다. 직장 상사와 동료들 지금의 제 처지를 많이 동정하겠지요. 다들 저를 위해 좋은 말만 한 줄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직장 상사들과 동료들에게 감사합니다. 향후 더 좋은 사람으로 되기에 노력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만약 당신의 아내와 딸도 함께 광장에 분신하러 갔고 그 순간 그들이 불을 달 용기가 없어 당신의 도움을 요청했다면 당신은 어떻게 했겠습니까?   

: “이런 일은 일정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고는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은 누구도 강요할 수 없고 만약 그들이 용기가 없다면 이런 일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이런 도움을 주지 않았을 겁니다.   

기자는 정주에 있는 한 노동교양소에서 당신의 아내와 딸을 만났는데 그들이 당신을 많이 보고 싶어하고 당신의 건강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당신의 아내야말로 정말 좋은 분인데 당신이 나가면 그분께 잘해드려야겠습니다”라고 재삼 말했고 “당신 딸과 아내가 같은 방 상하 침대를 이용하고 있습니다”고 전했는데 그 말이 저에게 가장 큰 위로로 작용했습니다.   

이때 사진사가 온화한 어투로 “당신의 딸이 일어를 아주 잘하던데요. 그리고 지금도 독학하고 있고, 일어를 압니까?”고 물었고 제가 모른다고 하니 이어 “제가 당신의 딸보고 아빠한테 전해줄 테니 일어로 한마디 하라고 했더니 하고 싶은 말이 /‘아빠, 저는 아빠가 보고싶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또 당신이 그들 모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우리를 통해 전달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저는 부풀어 오르는 감정을 억제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 못해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러는 저를 재촉하지 않고 말없이 비디오 카메라만 돌렸습니다. 한참 후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실제 우리들의 마음은 이어져 있습니다”고 겨우 한마디 했습니다.   

두 기자는 온화한 어투로 말을 이었습니다. “급해 마시고 몇 마디 하십시오. 우리가 그들 모녀의 부탁을 받았고 또 당신의 녹음을 그들에게 부쳐 보내기로 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편리한 조건이 있습니다.   

진정어린 말이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저는 눈물 흘리며 몇 마디 남겼습니다. “하루 빨리 집에 돌아기기를 바란다. 내가 너들에게 미안하다.   

딸이 나온 후 곧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기자의 말에 기뻐서 다시 카메라에 대고 말을 남겼습니다. “너희들의 종신대사에도 아버지란 내가 곁에 있어주지 못하고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 우리집 조건이 좋지 않아 너무 부끄럽구나. 너희들이 나 때문에 잃은 모든 거 향후 아빠가 배로 노력해 보상해 주마, 너희들에게 축복을 보낸다. 내가 돌아간 후 우리 계속 같이 기공을 연습할거야.   

취재가 끝났습니다. 가족들의 소식을 가져온 두 기자분이 너무 고마웠고 마음속 위로가 크게 되어 그들의 관심과 열정에 깊은 진정어린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기자들이 나간 후 저의 마음은 바닷가 바위에 부딪혀 하얀 물보라를 일구는 파도처럼 용솟음쳐 올라 진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생사를 불구하고 죽음 앞에서도 물 같이 고요할 경계까지 수련한 저의 마음이 지금은 왜 이럴까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이때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를 불렀습니다. 과연 제가 잘못했단 말입니까?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사부의 경문들마다 제자들 더러 걸어 나오라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견정불이하게 걸어 나왔습니다. /‘정법/’하기 위해, /‘/’을 수호하기 위해 생사를 불구하는 최고 형식을 취했습니다.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시련입니다. 이때 /‘대법/’에 대한 저의 확고한 신념이 다시 솟구쳐 온 몸의 피가 끓어 넘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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