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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 탓에 전신마비로

2013-08-19 기원 하 다:Kaiwind Auteur:이덕용(구술)위영하(정리)

 

 이덕용 최근 모습

사천성 성도(成都)시 용천역(龙泉驿)구 십릉(十陵)가도 부용(芙蓉)단지에 살고 있는 이덕용(李德蓉, 올해 64세)입니다. 퇴직전 저는 성도 촉면방직공장에서 근무했습니다. 1995년 남편이 병으로 돌아가고 2년 후 이혼 남 장효명(张孝明)과 재혼했습니다. 무던한 장효명은 저와 아들을 극진히 관심했고 아들도 특별히 효도했으며 우리 일가는 화목하고 안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1998년 여름, 퇴직 후 한가해진 저는 늘 공장 옛 동료들과 함께 거주지 주변의 광명광장에 나가 근육강화 운동을 진행했습니다. 8월의 어느 하루, 한참 단련하고 잠깐 쉬고 있는데 같은 공장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인사과 과장 심씨를 만났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저의 건강상태를 알고 그는 법륜공을 추천하며 이 공법이 강신건체를 돕고 업을 제거하고 병을 없애준다고 했습니다. 호기심에 광장에서 그와 함께 한번 연공해 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남을 따라 연공 동작만 익혔는데 심씨가 /‘정진/’하려면 책을 많이 읽고 법을 공부해야 하며 공우들과 심득을 많이 교류해야 되므로 <전법륜>과 연공테이프를 사라고 권했습니다. 고혈압인 저는 거의 매일 강압약을 복용해야 했습니다. 연공 도중에 약을 복용하는 저를 보던 심씨가 “당신의 병은 몸에 업력이 너무 중하기 때문에 생긴 병이다. 열성껏 대법을 수련하는 제자는 연공으로 소업해야지 약에 의지해서는 아니 된다”고 말했고 저는 그의 말대로 약을 중지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경서를 열심히 읽고 공우들 심득 교류 모임에 열심히 드나들며 그들과 함께 가부좌 연공을 했습니다. 비록 약을 중단했지만 건강에 별 지장이 없고 불편이 없었으며 단련 후에는 온 몸이 더 거뜬해진 것 같았습니다. 이는 필연코 사부의 도움으로 /‘높은 층차/’로 수련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배울수록 힘이 났고 점점 심취상태에 이르게 됐습니다.

1999년 7월, 제가 한창 자신이 /‘혜근(慧根)/’ 있고 법 공부를 잘했다고 기뻐하고 있을 때 정부에서 법륜공을 단속했습니다. 하지만 심씨의 선동하에 연공에 더더욱 열심 했고 10여 년간 집에서 연공을 견지했습니다. 나중에 연공과정에 늘 가슴이 갑갑하고 어지럼증이 생겨 심씨에게 물었더니 “불편할수록 온 몸이 정화되고 있음을 설명한다고 사부님이 말씀했는데 그게 바로 수련이 일정한 층차에 달한 정상상태다. 더 노력하여 실수(实修)해야 한다”고 하기에 저는 어지럼증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2011년 12월 14일 9시경, 공우의 집에 신경문을 가지러가다 계단 절반도 채 내려오지 못해 발을 빗디디며 넘어졌고 그후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며칠간 혼미상태에 있다가 깨어나 보니 자신이 머리에 붕대를 감고 병원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었고 남편과 아들이 아주 피곤한 기색으로 옆을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대법제자인 내가 입원해서는 안된다. 나가야 된다”며 일어나 링거 주사를 뽑아버리려 했으나 좌 반신이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조급해난 저는 미친듯이 몸부림만 쳤습니다.

“당신의 병은 고혈압으로 인한 돌발성 뇌출혈인데, 그게 뇌신경을 압박했어, 다행이 경비가 제때에 알려서 120응급센터에 전화를 해서 목숨을 건졌다구. 금방 대두수술을 했는데 생명위험에서 벗어났다고 의사가 말하지만 좌 반신이 이미 마비됐소”라는 남편의 말에 저는 자신의 귀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슨 소린가? 난 수년간 열심히 수련을 견지한 대법제자다. 그런데 내가 마비되다니? 사부가 반드시 나를 구원하러 올 것이니 절대 의사가 나한테 링거 주사를 놓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남편과 아들이 환자의 오른 손을 누를테니 관계치 말라고 의사에게 말했습니다. 좌 반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저는 병상에 누워 의사의 치료를 받을 수밖게 없었습니다. 매번 치료 받을 때마다 주치의사는 평시에 검진을 받고 약을 복용했어야 한다고 나무라며 적극 치료에 협력하지 않으면 전신마비가 오게 된다 주의를 줬습니다.

사부님은 연공하면 병을 없애고 평안을 지킬 수 있다 하지 않았는가? 왜 내가 그렇게 열심히 법을 공부하고 연공했는데 병이 호전이 없을까? 왜 혼자 계단을 내리다 제 발에 걸려 쓰러졌는데 마비가 왔을까? 두 달이 되도록 평시에 나한테 그도톡 열정적이던 심씨와 공우들이 왜 병문안 한번 오지 않을까?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손자를 데리고 자주 찾아왔고 밥을 해 나르고 남편과 아들이 날마다 저를 부축해 화장실을 다니고 옷을 갈아 입히고 몸을 닦아주고 맛사지 해주고 저의 마음을 뜨겁게 덥혀줬습니다. 친지들과 지역 사회 사이비종교 반대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저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게 됐습니다. 고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는 커녕 저를 사망의 길로 내몰고 현모양처인 저를 냉혹한 여인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제가 보물처럼 여기던 공법이라는 것을 불현듯 깨닫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차츰 자진해서 치료를 받았고 가족들의 극진한 배려로 좌 반신이 약간 지각을 찾게 되고 몇 발자국씩 걸음을 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병폐된 자신의 건강과 흘러간 세월을 생각하고 주변의 사람들을 볼 때마다 회한의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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