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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을 위해 왕신국 아내 건물에서 투신(포토)

2013-07-02 기원 하 다:Kaiwind Auteur:양호

아직도 아내를 잃은 비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왕신국(王新国)의 꺼칠한 얼굴은 55세 실제 나이보다 많이 겉늙어보였다. 개풍망기자에게 차를 따라주고 나서 왕신국이 입을 열었다/…/…

저의 처 웅만국(熊万菊)은 호북 십언(十堰)시 인쇄공장에 근무했습니다. 1997년 가을, 공장에서 구조조정을 실시할 때 건강이 좋지 못하고 학력이 없어 첫 팀으로 실직하게 됐습니다. 그때 아들이 중학교 재학중이고 아내가 병으로 장기적으로 약을 복용해야 했으므로 빠듯한 살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생활은 안정적이었습니다.

어느덧 1998년 여름, 어느 날 저녁 아내가 법륜공이라는 공법을 연공하고 있는데 그 공법이 아주 신기해서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족이 득을 얻고/’ 법륜공을 연공하면 /‘약이나 주사가 아니더라도/’ 병이 치료되며 건강에 특효일뿐더러 /‘승천원만/’후 모든 소망을 다 이룰 수 있다며 신비롭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약이나 치료가 없이 병을 치유했다는 숱한 사례들을 늘어놓았습니다.

그후로부터 아내는 법륜공의 신기한 효과를 동경하여 날마다 책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연공과 /‘법 공부/’가 가장 우선 필수과목이 되어 잠 잘때마저 <전법륜>을 머리맡에 두고 잤습니다. 그리고 연공활동과 심득교류에 더없이 적극적이고 집에 돌아와서도 밤늦도록 연공을 견지했습니다. 차츰 /‘법 공부/’와 연공이 그의 생활의 유일한 영적 기탁으로 됐습니다. 하루빨리 /‘층차에 오르고/’ /‘승천 원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내는 날마다 새벽 3시면 일어나 가부좌 연공을 시작했습니다.

1999년 7월, 정부에서 법륜공을 단속한후 아내가 수련을 하네 마네 몇번 번복했지만 우리 일가는 그런대로 다시 평온한 생활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편한 나날은 결코 저의 바램과 같이 저희들을 오래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2005년 구정전의 어느날 저와 아내가 설맞이 장보러 시장에 나갔는데 어느새 한 중년 여성이 이홍지의 /‘신경문/’ 인쇄물을 아내의 가방에 넣어줬습니다. 그후로부터 아내는 넋 나간 사람같이 갖은 구실로 외출했고 법륜공심취자들 모임에 드나들며 /‘수련 원만/’의 길에 다시 올랐습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2010년 12월말이 다가왔고 아내는 늘 자신이 /‘사부의 진전제자(真传弟子)/’고 /‘사부와 일체로 융합됐다/’고 착각하며 밤마다 연공할 때면 사몽비몽으로 온 몸이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는 눈치였습니다. 며칠 동안 연속 날듯한 흥분에 빠져 자신의 수련이 이미 높은 층차에 올랐고 원만과 지척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011년 2월 20일 아침, 바깥 날씨가 아직 매섭게 추웠는데 눈을 뜨니 언제 일어났는지 아내가 벌써 가부좌 연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보자 흥분하며 요즈음 자기 몸이 훨씬 가벼워져 훨훨 날 것 같은데 몽롱중에 사부가 창밖의 공중에서 자기를 내려다보며 끊임없이 부르고 있어 곧 비승원만하게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몸을 일으켜 창밖으로 향하기에 제가 와락 잡아 거실에 내려놓고 한바탕 훈계했습니다. 저의 고함소리에 제정신이 들었던지 아내는 고개를 떨구고 안방에 들어가 잠을 잤습니다. 뜻밖의 일이 발생될가봐 걱정된 저는 82세의 노모에게 아내의 동정을 유심히 살피라 부탁하고 출근했습니다.

점심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저의 아파트 앞에 숱한 사람이 모여 있기에 호기심에 가까이 갔는데 등골이 서늘해 났습니다. 아내가 피를 흘리고 숨져있었습니다. 제가 출근한 후 아내는 여전히 /‘원만승천/’의 꿈을 실시하기로 하고 노모가 말렸는데도 가부좌하고 앉았다가 보지 않는 틈에 갑자기 “사부님 제가 왔습니다!”를 외치며 창문 밖으로 몸을 날렸던 것입니다/…/…

 당장에서 숨진 웅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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