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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습니다(포토)

2013-04-16 기원 하 다:Kaiwind Auteur:이애평(구술)고림(정리)

 

홀로 문앞에 앉아 삼삼오오 떼을 지어 학교로 오가는 애들을 볼 때마다 저의 가슴은 이루다 형용할 수 없이 아픕니다. 아들이 아직 살아 있다면 올해 16세, 그들과 같은 사춘기 한창 좋을 나이인데, 그러나 아들은 지금 홀로 천당에 가 있습니다/…/…

저는 이애평(李爱萍, 47세)이라고 부르며 하남성 복양(濮阳)현 성관(城关)진 서가(西街)에 살고 있습니다. 1996년 10월, 사랑하는 아들이 세상에 태여났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출생이 저에게 별다른 기쁨을 안겨주지 못했습니다. 체질이 약한 저는 산후종합증을 앓았고 여러 가지 보약들을 많이 썼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친척 한분이 저의 집에 왔다가 저에게 법륜공을 소개했습니다. 연공하면 강신건체뿐만 아니라 병을 앓아도 약을 복용할 필요가 없고 온 가정의 평안을 지켜주며 최종 /‘불도신(佛道神)/’으로 원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연공을 하면 돈을 쓰지 않고도 병을 치료할 수 있고 좋은 점이 많고 나쁜 점이 없다고 믿어  법륜공을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간의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식미가 당기고 허약하던 몸이 빨리 회복되고 허리 쑤시고 다리 아프던 불편이 없어져 온 몸에 힘이 솟구치고 에너지가 넘쳐나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 연공덕이라 생각한 저는 점차적으로 이홍지의 수렁에 빠져들었고 사부야말로 현세의 /‘불(佛)/’이며 사부의 법신이 곳곳에 있다고 깊이 믿고 층차 제고와 원만을 자신이 추구할 삶의 목표로 간주했습니다.

사부에 대한 자신의 경건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저는 넉넉치 못한 가정수입에서 아들 분유 살 돈 1000원으로 연공장 담당자한테서 연공복, 연공방석, 녹음기 그리고 이홍지의 초상화, 설법 녹음테이프와 CD등을 사고 몸과 마음을 바쳐 연공과 법 공부에 전념했으며 법륜공을 저의 생명으로 삼고 이홍지를 더더욱 우러러 추앙했습니다.

애가 배가 고파 울음을 터뜨려도 저는 종일 연공에만 전념하고 집안일과 애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가슴 아픈 남편이 할 수 없이 장사를 그만 두고 집에 돌아와 농사와 집안일과 애를 돌봤습니다.

1999년 7월, 정부에서 법륜공을 단속한 후 주변의 다수 연공자들이 법륜공을 그만두고 정상생활을 회복했고 저도 다시는 연공하지 말라는 남편 경고에 할 수 없이 승낙했습니다. 그 말을 믿은 남편이 다시 장사에 나섰고 저는 남편이 집에 없는 틈을 타서 법륜공을 다시 연공하기 시작했으며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중도에서 그만 두면 아니된다 고집하며 계속해서 집에 숨어 연공하고 사처에 전단지를 배포하고 홍법, 정법활동에 참여했습니다.

2000년 10월의 어느 날, 세 살짜리 아들이 저의 옷깃을 틀어쥐고 울음을 그치지 않는데 수련에 방해될 가봐 마음을 모질게 먹은 저는 아들애 혼자를 집에 가둬두고 애가 아무리 울어도 못들은 척, 동수네 집에 가서 함께 연공을 했습니다. 돌아와 보니 아들이 소파에 누워 자고 있었는데 얼굴이 벌개 가끔 기침을 하기에 손으로 이마를 짚어보니 열이 났습니다. 이홍지 소업설의 영향으로 저는 병원에 가지 않고 해열제도 먹이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열이 39도로 올랐고 기침이 심해지며 경련을 일으켰으나 연공하면 애한테 소업을 해주고 병을 치료해주며 사부의 법신이 필히 애가 무사하도록 지켜줄 것이라고 깊이 믿고 침대 곁에 앉아 애한테 발공을 하고 이홍지의 초상화를 향해 경건한 마음으로 번마다 반시간 넘게, 10회 이상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렇게 하면 애의 업력을 제거할 수 있고 사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3일 후 아들의 병은 아무런 호전도 없이 오히려 점점 심해졌습니다. 혹시 저의 공력이 모자라고 사부에 대한 마음이 경건하지 못해서인가 싶어 기타 공우들을 불러와 함께 아들을 향해 발공하고 병을 치료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아들은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이웃이 보다 못해 “이러다간 애를 죽이겠다”며 안고 병원에 가려 했지만 저는 마(魔)한테 홀린 사람같이 애를 병원에 가지 못하게 기를 쓰고 막았습니다.

속수무책인 이웃에서 외지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남편은 그날 밤으로 집에 돌아와 애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들은 이미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얼굴색이 변해 있었습니다. 검사를 마친 의사는 심한 폐렴인데 생명이 위중하다고 했습니다. 전력 응급처치를 했지만 너무 늦게 병원에 이송해 최적의 치료시간를 놓친 탓으로 아들의 병은 폐렴 합병 심기염으로 발전되어 의사도 살릴 묘책이 없었습니다. 이튿날 어린 아들은 인간세상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누리지도 못한채 이 세상을 총망히 떠났습니다.

아들의 죽음이 수렁에 빠져있는 저에게 심한 타격을 줬고 잔혹한 현실은 저를 번쩍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회한의 눈물도 아들의 생명을 다시 살려낼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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