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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원만(포토)

2012-08-20 기원 하 다:Kaiwind Auteur:왕원빈(구술)하조림(정리)

 


요립화 생전

호북성 십언시(十堰市)에 살고 있는 왕원빈(汪远斌, 63세,고졸)입니다. 전에 저희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귀여운 아들딸에 부부가 서로 아끼고 화목했으며 함께 제2자동차 공장에 출근했고 높은 월급과 후생복지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아내 요립화(姚立华)의 위병이 늘 시원치 않았습니다. 1997년 4월 병원검사에서 천표성 위염으로 확진됐으며 중한 편이어서 위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사의 말에 아내는 치료에 애썼습니다. 그해 5월 어느날 처형이 우리집에 놀러왔다가 그에게 법륜공을 소개했습니다. 약이나 주사가 아니더라도 건강을 지킬 수 있고 백병을 치료할 수 있으며 또 원만승천까지 할 수 있다며 법륜공 테이프와 서적을 전해줬습니다. 이렇게 아내는 건강회복을 바라는 조급한 마음에서 법륜공수련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초기 아내는 <전법륜>을 읽고 가부좌를 할뿐이었는데도 위병 재발시 아파 뒹굴며 식은 땀 줄줄 흘리면서도 진통제 한알 먹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가자하면 <전법륜>을 신 모시듯이 하며 “사부님이 병이 생기는 것은 업력때문이고 약을 먹지 않고 주사를 맞지 않는 것은 소업을 하는 것이며 소업 한번을 하면 한 층차 더 올라가게 되는 것이니 방해하지 말아달라” 했습니다.

1999년 4월, 아내는 처음 저와 거짓말을 하고 공우들을 따라 북경으로 떠났습니다. 도중에 뜻밖의 사고로 다리를 상했는데 장단지를 너무 크게 다쳐 할 수 없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바지가랭이에 묻은 말라버린 피덩어리를 보며 가슴 아파 바지를 벗기고 상처에 약을 발라주려 했지만 그는 절대 안된다며 매일 잠을 잘때도 피 묻은 바지를 입고 잤으며 상처 아픔을 참으며 겨우겨우 가부좌하고 앉았습니다. 사부님이 그 끝없는 공력으로 자기 다리 상처를 치료해 줄것이라 깊이 믿었던 것입니다. 젊고 회복기능이 좋은 덕에 보름이 지나 그의 상처는 저절로 딱지가 앉기 시작했습니다. 그후부터 그는 법륜공을 더더욱 깊이 믿게 됐습니다. 이홍지의 법신이 발공으로 자기 다리를 치료해 줬다 믿었고 사부님의 도움으로 자신이 한층차 더 올랐고 원만과 한걸음 더 가까와졌다 믿었습니다.

아내는 매일 사부과 진,선,인을 입에 달고 다녔고 가족들은 념두에도 없었습니다. 명심코 매일 오전 9시와 밤 1시에 일어나 가부좌하고 그때가 마음이 제일 진정될때라 사부님과 제대로 교류를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이라 했습니다. 매일 <전법륜>을 읽고 또 다섯번씩이나 다시 베꼈습니다. 읽고 베낄 때는 식구들이 옆에서 불러도 듣지 못했고 대답 한마디 없이 들은 척도 안했습니다. 또한 점점 안하무인으로 변해 자신이 불(佛)이고 신이고 우리는 다 속인들이며 부모, 자식  걱정은 전혀 하지 않고 집안일도 하기 싫어했습니다. 왜 사람이 이렇게 매몰차게 변했나 제가 소리지르면 그는 “모든 정이 다 마(魔)다. 정을 내려놓지 않고는 아무것도 수련할 수 없는데 어떻게 /‘원만/’할 수 있겠는가!”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원만을 이루기 위해 목숨까지 잃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는 1999년 섣달 25일을 영원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날 아내가 또 공우들과 함께 북경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멀리까지 따라갔으나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2000년 정월 14일, 저는 아내와 함께 연공하던 십언시 금정(金鼎)방직공장 퇴직인원 요강(姚江)한테서 그 자초지종을 듣게 됐습니다. 12월 25일 아내가 그를 찾아가 함께 북경에 /‘호법/’하러 가자 제의했고 둘은 백림진(柏林镇) 진장촌(陈庄村)에 들려 공우 포륭헌(鲍隆宪)도 데리고 함께 떠나려 했지만 포는 농사일이 바쁘다는 구실로 그들과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외딴 십언시 포협진(鲍峡镇) 호가영(胡家营)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려던 중 기차가 다가올 무렵 아내가 환각이 생겼는지 갑자기 흥분하며 “법륜대법이 좋다”를 외치며 선로로 뛰어들려다 쏜살같이 다려오는 기차에 치여 십여미터 밖으로 뿌려쳐졌고 당장에서 숨졌으며 사망현장은 아주 비참했답니다. 그때만 해도 요강은 요립화는 사부님의 말대로 원만승천했을 것이라며 그의 용기에 탄복했습니다. 보름후 요강은 지원자들의 도움으로 법륜공의 악해를 인식하게 됐고 그제야 상기 경과를 저한테 말해줬던 것입니다. 제가 부랴부랴 호가영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는 가족들과 연락을 취할 길 없는 기차역측에서 아내의 시신을 묻은 후었습니다.
 
아내가 떠난후 오랫동안 저는 아내 무덤앞으로 가기 싫어졌습니다. 왜 법륜공을 수련했는지, 우리가정에 큰 비통을 안겨준 아내가 밉고 아내한테 화가 났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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