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 누워 있는 한흥신
저는 한수송(韩秀松, 44세)이라 부르며 부친 성함은 한흥신(韩兴信), 하북성 청용(青龙)현 팔도하(八道河)진 사하(沙河)촌에 살고 있는 농민입니다.
1996년 6월 부친은 강신건체(强身健体)의 좋은 생각으로 법륜공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얼마간 수련 후 부친은 심신이 많이 좋아졌다 느껴져 기뻐하셨고 점차 법륜공의 터무니없는 역설에 심취됐습니다.
1999년 7월 정부에서 법륜공을 취체한후 다들 옆에서 많이 권유했지만 고집불통인 부친을 설득시키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뜨신후 부친은 혼자 살았습니다. 부친 몫으로 책임농지와 과수원이 있어 해마다 우리 형제들이 농사일을 돕고 과수원에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과수나무 가지를 쳐주는 등 일을 도왔으며 년 말이면 밤과 사과 판 돈3000여원을 전부 부친께 드렸습니다. 생필품과 용돈은 자식들한테서 받아 쓰시고 해마다 7000원 남짓한 수입이 있었지만 석탄 1톤, 쌀, 밀가루 등을 사고 남은 돈을 전부 이른바 /‘진상자료/’를 제작하고 나가 배포하고 /‘진상을 알리는/’데 써버렸습니다.
10여년 동안 우리 형제들이 법륜공을 믿지 말라 그렇게 권해도 부친은 자신이 원만을 이루면 온 가족이 그를 따라 복을 받는다 했습니다.
2011년 2월 17일, 부친은 청용진 초방장(草房庄)촌에서 열리는 법륜공조직 모임에 같이 간다 한 대법제자 오토바이 뒤에 탔는데 도중에 차 사고가 생겨 왼쪽 복사뼈 골절, 뇌 손상, 오른 손바닥 찰상을 입었습니다.
2월 18일 새벽, 법륜공인원들은 부친을 병원으로 모시지 않고 우리집으로 모셔왔습니다. 차사고 경과를 물었으나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료비 부담은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우리 네 형제가 돈을 모아 부친을 현 병원에 입원시켰고 치료비 만원 넘게 쓰고 고비를 넘겼으나 말을 할 수 없고 반신불수로 오른쪽 반신을 움직일 수 없어 장기적으로 누워계셔야만 했고 대소변마저 받아내야 했습니다.
부친이 병원에서 퇴원한 후 가깝게 지내던 공우 몇이 집단발공으로 부친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치료해준다 왔었는데 저는 “발공으로 병을 치료할 수만 있다면 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당장 당신들을 따라 대법을 수련하러 가겠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러번 발공을 했으나 아무 효과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또 부친의 업력이 너무 크고 성의가 부족해서라 했고 그후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몇 년간 자녀들이 돌아가며 병 간호를 해야 됐고 불을 때고 밥을 나르고 빨래를 해 드려야만 했습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으므로 전기장판을 사용하지 못하고 솜 요를 깔아드렸는데 거의 매일 이부자리를 세탁해서 널어야 했고 바빠 제때에 갈아드리지 못하는 날엔 오줌에 푹 젖은 이부자리를 그대로 깔고 누워계셔야만 됩니다. 정말 고생입니다.차 사고 전 저는 외지에 나가 1년에 몇 만원씩 벌었는데 지금은 집에서 부친 병간호만 하고 있습니다. 들어오는 수입은 없고 애 학비, 생활비용 모두가 전에 벌어놓은 돈으로 해결해야 되므로 생활이 궁핍한 편입니다. 몇 년간 일편단심으로 모든 저축 다 법륜공에 바친 부친이 /‘홍법/’ 도중에 차 사고를 당해 반신불수로 됐습니다. 이홍지, 당신은 당신의 /‘법신/’이 없는 곳 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이토록 독실한 대법제자 한 명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한단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