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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어떻게 저 세상으로?

2012-06-01 기원 하 다:Kaiwind Auteur:서취화(구술)란우(정리)

 

지금 서취화는 장애인 아들과 서로 의지하며 생활하고 있다

 


 남편의 죽음을 생각할때마다 뼈저리게 뉘우쳐 마지 않는 서취화

강소(江苏)성 남경(南京)시 서하(栖霞)구 팔괘주(八卦洲)에 살고 있는 서취화(徐翠华,75세)입니다. 남편의 이름은 요지충(姚志忠), 결혼후 아들을 낳았지만 소아마비로 장애인 신세를 면치못했고 경도의 정신분열증을 앓았습니다. 우울한 나날속에서 저는 법륜공을 수련하게 됐고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정이 득을 얻는다/’ 알았는데 생각밖으로 악몽의 시작이었습니다.

1997년 4월의 어느날, 시민광장을 지나다가 많은 사람들이 모였기에 살펴보니 한 사람이 득의만만 한창 설교를 늘어놓고 있었고 숱한 선남선녀들이 정신을 가다듬고 그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그들은 법륜공을 수련하는 사람들이고 법륜공이란 몸을 건강히 하고 병을 없애고 재앙을 면하며 약을 먹지 않고도 병을 치유하는 공이라 했습니다. 현장에서 한 젊은이가 저에게 먼저 읽어보라며 <전법륜> 한권을 줬고 이런 공을 연공하면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히 할뿐만 아니라 /‘백일비승/’ 할 수 있다 했습니다. 아는 글자 몇개 없어 제대로 읽을 수 없을 것이라니 젊은이는 글을 몰라도 상관없고 매일 연공장에 나와 연공만 하면 된다 했습니다. 그 말에 퍼뜩 정신이 든 저는 대은인을 만났다 싶었고 정말로 법륜공에서 말하는것 처럼 자신의 몸 건강뿐만 아니라 연공으로 /‘가족들에게 복을 가져다 준다/’면 아들의 병도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연공 행렬에 동참했고 차츰 법륜공에 심취됐습니다.
 
저는 전심전력으로 연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집에서 아는듯 모르는듯한 <전법륜>을 읽고 새벽 1시에 일어나 가부좌 연공하고 날이 밝으면 광장에 나가 공우들을 만났습니다. 남편과 아들은 그러는 저를 두고 속을 태웠고 연공을 그만두라 한두번 충고한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수개월간의 수련을 통해 저는 이미 깊이 심취돼 버렸고 그들의 충고가 귀에 거슬리기만 했습니다.

1998년 초, 남편이 갑자기 저열, 원기 부진에 기침, 그리고 각혈 증상까지 있어 병원 검사를 받았더니 폐결핵이라 했고 입원치료를 받아야 된다 했습니다. 아들이 안후 불안해하며 아빠를 병원에 입원시키려 서둘렀습니다. 그러나 저는 반대했고 자신의 업력이 너무 중한 탓에 얻은 병이므로 나와 함께 연공으로 소업하면 사부님이 지켜줄 것이고 오직 이래야만 병을 치료할 수 있다 권했습니다. 저의 고집에 병치료에 급한 남편은 할 수 없이 저를 따라 법륜공을 연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공 초기 남편은 저의 눈을 피해 폐결핵 치료약들을 두루 복용했습니다. 그 눈치를 채고 대노한 저는 아들이 사준 몇 백원의 약을 다 버리고 영원히 다시는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는 다짐을 남편한테 강요하고 사부의 말대로 연공소업만 하면 병이 꼭 치유될 수 있다 했습니다. 제가 끝까지 고집하는 바람에 남편은 약을 중지했습니다.
 
얼마간 연공을 한후 남편의 원기가 회복된것 같아 기뻤고 이때부터 남편은 법륜공의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히 한다/’는 /‘치료효과/’를 깊이 믿고 종일 연공에 주력했으며 이홍지의 책을 읽고 CD를 봤습니다. 원기가 회복된 남편을 보며 저는 마음속으로 법륜공이 고마웠습니다.
 
방관자가 당사자보다 사물을 더 바르게 보는 법이라 남편의 건강이 하루하루 좋아지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남편의 체중과 식량이 하루하루 줄고 있다는 눈치를 채면서도 저는 방심하고 남편의 건강이 좋아졌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돈 천냥을 주고도 늙었을 때 여위는 것을 사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친지들이 이러는 저를 인간성 없이 남편의 생사마저 관심하지 않는다 손가락질 했지만 저는 추호의 동요도 없이 속인들은 다 폐물이고 저와 한 층차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며 그들은 대법을 모르는 사람들이라 그들과는 의사소통이 안되며 그들이 남편을 연공하지 말라함은 남편을 해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이렇게 남편은 계속 연공했고 치료를 거부했습니다.


1999년 7월 나라에게 법륜공을 취체, 당시 저는 그 결정이 전혀 달통되지 않았고 반발심이 생겨 법륜공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법륜공을 수련하면 남편과 아들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 깊이 믿고 법륜대법을 저의 생명의 일부분으로 여겼습니다. 이렇게 저와 남편은 계속해서 남몰래 연공하고 법을 공부하고 비밀리에 공우들과 연락을 취했습니다.

1999년 겨울, 남편의 기침은 하루 하루 심해갔고 자주 명치가 아프다 소리질렀고 사흘이 멀다하게 저열이 나고 가래도 날이 갈수록 많아졌으며 또 혈사까지 섞어 토했습니다. 그때 여전히 심취돼 있던 저는 이것이 바로 소업이므로 이런 흑색물질을 배출하고 나면 업력이 없어지면서 건강이 좋아질 것이라 믿었습니다.
 
2000년 4월 5일 밤, 의자에 가부좌하고 앉아 연공하고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쓰러지며 피를 토하기 시작했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당황해난 저는 남편을 끌어안고 울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남편은 사부의 말과 같이 소업, 원만한것이 아니라 영원히 저 세상으로 멀리멀리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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