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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하면 복보가 따르는가(포토)

2012-05-21 기원 하 다:Kaiwind Auteur:장군(구술)운재(정리)


 딸 생전 사진

 

저는 장군(张军)이라 부르며 1930년 출생, 빈곤한 산간 마을에서 출생, 8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10세에 어머니까지 세상을 떴으며 16세에 군대에 입대하고 지방에 전근된후 이직 휴양, 산동(山东)성 제남(济南)시 홍성(宏盛)단지 2호동에 거주, 효도하는 아들딸과 함께 여유있고 행복한 생활을 누렸습니다.

1996년은 저에게 있어서 참 다사다난한 한 해였습니다. 구정전 마누라가 갑자기 세상떴고 4월에 아들이 공금 횡령으로 형벌을 받았습니다. 뜻밖의 충격으로 현실이 너무나 두렵고 잔혹하고 무정타 느껴지며 그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그해 추석에 옛 부하가 저한테 법륜공을 추천했습니다. 솔직히 처음 저는 법륜공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법륜공이 /‘진선인/’을 추구하고 /‘좋은 사람 되기/’를 추구한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반신반의로 강좌를 듣고 공원에 나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연공을 구경했습니다.

그후 저는 <중국법륜공>, <전법륜>을 사서 한자도 빠짐없이 읽으면서 책에서 말하는 원만,층차, 법륜세계 등에 매혹됐습니다. 그후부터 저는 아침 4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녹음을 듣고 비디오를 보고 늦은 밤에 심득을 써내려 갔습니다. 차츰 마음이 후련해지고 기분도 한결 좋아졌으며 마음가짐이 평화로와졌고 창백하던 얼굴에 피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대법을 수련한 복보라 생각습니다.

법공부에 정진하고 깨달음이 빠르고 체험이 깊으며 또한 이직 휴양간부라 위신이 높고 영향이 크고 능력이 있다는 평가속에서 얼마후 저는 지역 보도원으로 임명됐고 이 지역 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이웃에 사는 사람을 법공부에 동원시키기 위해 지팡이를 짚고 연속 일주일씩 그의 집을 찾아가 설득시켰고 딸과 우리집에서 일하는 가정부, 그리고 옛 부하들까지 50여명을 법륜공에 끌어 들였습니다.

딸 아혜는 제가 금지옥엽으로 키운 애라 어려서부터 참하고 착하고 부지런했으며 결혼후 애를 낳고 기르면서도 여전히 매일 저의 생활을 돌봐줘 이웃들 칭찬이 자자하던 애입니다. 제가 보도원으로 된후 70여명의 법공부를 책임지면서 아혜가 옆에서 연락업무와 경문을 베끼고 심득교류회 등을 도와줬고 집안일과 법공부과 홍법 등에 매일 퍼그나 바삐 보냈습니다. 시초부터 아혜의 연공을 반대하는 사위와 외손자가 여러번 막는 바람에 아혜
법공부에 영향을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마음을 집중하지 않고 진정으로 공부하고 수련하지 않는다 호되게 비평하며 그를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내심으로 딸과 사위의 동거를 역겨워했고 온몸이 다 더럽다 생각했습니다. 차츰 아혜는 드물게 자기집으로 돌아갔고 사위의 불만이 컸으며 부부싸움이 잦아졌습니다.

1996년 섣달, 한달 가까이 집에 돌아가지 않던 아혜가 갑자기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39.7도 고열을 앓던 외손자가 “엄마는 법륜공만 중요하고 나는 싫은가?” 울며 따졌습니다. 그 말에 아혜는 울었습니다. 마침 이튿날 회공(会功)활동이 있었으므로 저는 어서 집에 돌아가 심득을 쓰라 아혜를 독촉했습니다. “애가 이토록 앓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연공하러 가고 매일 좋은 일을 하고 좋은 사람이 된다는 사람이 어떻게 친아들을 버리고 연공하러 갈 수 있어? 그래도 사람인가?”며 사위가 야단을 쳤고 애도 울며 “엄마 가지말아, 나 옆에 있어줘!” 붙잡고 애걸하며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홍법은 전 우주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육친의 정은 수련의 금기며 대법이 가지(加持)하므로 애가 열이 나도 반드시 무사하다”며 엄마 붙잡고 놓지 않는 애 손을 떼버리고 사위를 밀치고 아혜를 데리고 병실을 나왔습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가슴을 찢어주는 손자의 울음소리도 마다하고, 아혜의 행동을 용서할 수 없는 사위는 얼마후 더는 참을 수 없다며 이혼을 제출했습니다.

이혼후 아혜는 혼자 저의 집에 들어와 살았고 출근도 직장일도 포기하고 한마음 다 바쳐 대법을 수련했습니다. 아혜의 새로운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1997년 구정 저는 아혜의 이름을 /‘명혜/’라 바꿨습니다.

한번은 명혜가 화장실에 숨어 몰래 애한테 전화하다 저한테 들켰습니다. 저는 화장실문을 걷어차고 들어가 무작정 핸드폰을 빼앗아 내동댕이치며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명리정을 내려놓지 못한다 명혜한테 야단을 쳤습니다. 그후부터 명혜는 다시는 애 말을 꺼내지 않았고 차츰 수척해갔으며 풀이 죽어 흐리멍덩해 있고 주의력를 집중하지 못하고 엉뚱한 말을 하거나 엉뚱한 일을 했으며 멍하니 밖을 내다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뭐라해도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1997년 5월, 명혜의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몸이 하루하루 약화돼 아예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어 누워서 법공부를 할 수 밖게 없었습니다. 아혜의 건강을 두고 은근히 걱정하던 중 가정부에게 10여명의 정진한 공우들을 불러 함께 <홍음>을 읽고 사악한 마(魔)를 쫓아내자 했습니다. 연속 6일 밤낮 아침부터 저녁까지 백번이고 천번이고 경문을 외우며 사부법신의 가지(加持)를 얻어 명혜가 평안하기를 바랬습니다. 다들 힘들어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명혜의 병은 아무런 호전도 없었습니다. 1997년 5월 13일 새벽 5시, 명혜가 갑자기 일어나 앉았습니다. 저는 대법이 지켜준 덕에 나타난 기적이라 명혜의 손을 잡고 흥분해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명혜는 저한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전 엄마 따라 갑니다”란 말 한마디만 남겼습니다. 맑은 눈물이 그의 눈굽을 타고 흘러내리더니 영원히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비통속에서 저는 사부님이여, 당신은 당신이 우주의 가장 큰 신이고 법력이 무한정하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신이 사람을 구원해주지 못한다 말입니까? 당신은 법륜공을 수련하면 복보가 따른다 했는데 그래 명혜의 죽음이 저한테 복보란 말입니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지역사회 지원자들이 상황을 알고 저를 찾아줬고 투철한 분석을 통해 저는 끝내 꿈속에서 정신차리게 됐습니다. 그러나 저는 딸을 영영 잃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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